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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Nov 26. 2022

연인

연인(戀人)



"욕(欲) 아닐까요?"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다는 그녀가 차에 타자마자 '연인이 무엇이냐'라는 난제를 들이밀었다.


그녀는 내 뜻을 잘못 알아듣고는


"아, 욕(辱)하는 관계라."라고 말했다.


그때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그녀 나름의 기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진지한 표정으로 인해 나는 웃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어떤 의미에서 그녀가 잘못 받아들인 두 번째 뜻이 내가 내린 결론과 더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이 누구나는 질문에 대한 내 처음 대답은 바라는 마음이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관계가 아니겠느냐고. 맡고자 하는 마음, 알고자 하는 마음, 보고자 하는 마음, 만지고자 하는 마음. 그 모든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바라고 가지고자 하는 마음 없이 시작될 수 없는 관계,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질문은 다시 이어졌다.


"당신에게 있어 연인은 누구죠?"


'연인은 누구죠'와 '당신에게 있어 연인은 누구죠'라는 두 물음은 서로 다른 것을 뜻했다. 마치, '사람들이 정의하는 연인은 무엇이죠.'와 '당신의 남편은 여전히 당신에게 연인인가요.' 정도의 완전히 다른 물음이었다.


망설임 없이 나는 '남편이죠.'라고 대답했다. 예상은 했으나 진부한 내 대답이 너무 재미없고 미덥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몸짓을 해가며 적어도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연인으로서의 남편과 아내를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삶이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두 번째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내게 이기(利己)를 운운했던 남편의 품이 떠올랐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조화의 단편을 꺼내 이야기하였을 때 그녀는 놀라는 눈치였다. 내게 있어 연인에 대한 정의는 설렘이나 달콤함, 또는 어떤 끈적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아이러니를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왼팔로 팔베개를 만들고 다른 팔로 크게 안아 마주 보는 눈 빛에는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너는 따뜻한 사람이지. 그런데 이기적인 사람이야."


( 내게 꼭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내 엄마인데, '착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계집애'라는 말을 엄마는 종종 하곤 했었다. 내게 이기를 운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오직 두 명이라면, 그들이 내게 살 공간이 되어 주기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던 적이 있다. )


이어졌던 내 물음이 있었다. 어쩌면 투정일지도 모를 던짐과 같은 말이었는데, 그럼 '왜 나랑 같이 사느냐'는 질문에 그 대답은 너무 단순했다.


"사랑하니깐."


그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하'라고 크게 실소하였는데 그 웃음 때문에 나는 이 대답이 절절하게 느껴진 밤이었다.


 나는 흠이 많은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흠이라 하면 몸 위에 여럿 받은 수술 자국이 서너 군데 있고, 새벽잠을 깊이 잘 수 없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연인 사이에서 감출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흠'은 이런 게 아니다. 마주하고 부둥켜안으면 곧 드러날 이런 상한 부분들은 흠이라 일컬어지기엔 그만큼의 생각할 값이 되어주지 못한다.


'내 연인'을 물었을 때에, 욕(欲)이 아닌 흠(欠)을 떠올렸던 이유가 무엇일까. 흠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결핍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의 길이가 길어지고 서로의 세상에 파이는 새김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절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얼마나 상한 곳이 많으며 어떤 이기의 끝을 보일 수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내야만 했다. 나의 경우는 꼭 그러하였다.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잘 포장하여 그에게 보이기보다는 진창에 있는 나를 보여주므로 그가 버티고 결국엔 나를 지킬 수 있을지가 궁금했고 불안했다. 버림받은 적 없으면서 버림받기를 두려워하며 살았던 삶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 '연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 결핍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므로 내게 연인이란, 내 결핍과 마주한 사람이여만 했다. 내 흠을 다 보여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나를 바라는 사람이길 다시 바랐다.



"그러니깐, 서로 막 욕하고 그래도 되는 관계. 그런 모습까지 다 보이는 관계 말이죠."


그녀가 두 번째 뱉은 말이 진심인지 위트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내 소양의 부족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연인이라는 서사에 부끄러움과 못남, 상처라는 욕(辱)의 이야기가 없다면 내가 그를 '그리며 사랑할 일' 따위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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