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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Dec 20. 2021

무지개

학원 여기저기에 무지개가 보인다.


" 다 모이세요."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라도 되는 듯이, 글 선생의 한 마디에 1학년 아이들이 쪼르르 하고 순한 양 떼처럼 모여든다.

"거짓말은 안 통해요. 알죠? 자, 다들 책 읽기 숙제 해왔죠? 책 이름 말해보세요."

"호랑이요."

"거짓말은 안 통한다고 선생님이 말했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그럼 책 내용이 무엇이에요?"

"호랑이가 나와요."

글 선생의 얼굴에 웃을까 말까 잠시 고민의 시간이 머물다 사라진다. 아이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하여 책 속 호랑이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똑똑.

노크소리에 쳐다보니 아무도 없다.

똑똑.

다시 쳐다보니 또 아무도 없다.

똑똑.

무시해야지, 아이들이 장난치는구나 하려는데

손하트가 창 너머로 나타난다.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담으려고,

"너 그러고 잠시 있어!" 소리 치니,

"네!" 하고 또 얌전히 있는다.

보답으로 나도 손하트를 날려 보내주니 쉬는 시간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온다.

오늘은 문득 교실에 들어와서는

"선생님, 손 좀 줘보세요."라고 한다.

손을 이리 주었더니 주머니에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올려놓았다. 내가 하하 웃으며

"왜 자꾸 해, 그렇게 좋아 이게?" 물으니,

"선생님이 좋아하니까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도 집에 갈 때도

"선생님, 사랑해요."를 잊지 않는다.

그러면 나도

"나도 사랑해."라고 크게 외쳐준다.

그뿐이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좋아서 그렇다는데 그럼 더 좋아해 주면 될 뿐이다.

"선생님, 여기요! 여기 또 나왔다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아이들의 화법을 나는 자주 따라 하길 즐겨한다.

무지개는 시간이 되면 약속과 같이 계단 위로 모습을 드리운다. 창을 통해 비추어 온다.

보이지 않는 공기와 빛과 물이 만나서 아름다운 것으로 비추어 온다.

이 빛은 순란한 모습으로 다시 비추어 온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아이들의 마음이 생각이 난다. 아직은 어려서 그 감정의 헤아림이 단순하다. 무지개의 일곱 빛깔 정도로 나타낼 수 있을까.


기쁨의 빨강

부끄러움의 주황

뿌듯함의 노랑

신이 난 초록

당황한 파랑

짜증 난 남색

슬픔의 보라


색깔의 이름은 아이들마다 다를 수 있겠다.

그럼 가르쳐주어야겠다.

마음의 색깔이 있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어느 날은 남색이고 어느 날은 파랑이고 어느 날은 초록인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마음의 색깔이 계단 위로,

너희들 마음 위로 비추어 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아이들이기에 그 마음의 색이 얼굴 위로 나타난다. 무지개가 여기에 저기에 비추어 오듯이.

그 어여쁜 모습을 숨길 수 없듯이.


그러니 그 어여쁜 모습에게 울지 말라하지 마오.

그러니 그 어여쁜 모습에게 화내지 말라 하지 마오.


아이도 마음을 비추어야 해서 그렇다.

그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어야 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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