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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Dec 14. 2021

어른

아이를 품고 존재하는 이,

"선생님, 왜 이렇게 찡찡거려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대비를 하지 못하고 옷을 얇게 있고 나왔더랬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참지를 못하고 몸을 잔뜩 웅크려 애들아, 애들아, 너무 추워. 하며 소란을 피웠더니 아이가 하는 소리다.


나는 미소를 띠며 지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은 찡찡거리면 안 되는 거야?"

"어른이잖아요."


'아이들에게 어른이란 찡찡거리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어른이 누구일까?'하고, 아무도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사막에 불시착한 어떤 조종사는 어른에 대해 꽤나 부정적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린이들은 그들에게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 해서 피곤하다고.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양을 보는 방법을 잊은 존재라고.


 그러나 내게 있어 어른은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존재다. 언젠가는 되어야만 하는 존재.



"어제 왜 조퇴했어?"


수업 도중에 아이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6시 조금 넘으면 밖으로 보내 달라고, 갈 곳이 있다고.


"엄마랑 동생이랑 고기 먹었어요."

"이야, 정말 좋았겠다. 좋은 날이었구나?"


고기 먹는 날은 응당 그래야 하는 날이니깐.

 

"엄마가 하루에 7만 원 버는 회사에서 10만 원 버는 회사로 옮기셨거든요. 그래서 고기 먹자고 하셨어요."


아이의 엄마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비가 내리는 토요일은 언제고 특별한 날이 되니깐.


아이와 동생과 엄마는 물이 떨어지는 우산을 나란히 또 모자를 나란히 쓰고 들어왔다.


"왼손잡이시네요?"


나를 보며 엄마가 건네 온 말이다. 내 눈은 엄마의 오른쪽 엄지손가락 붕대로 향하였다. 아이의 엄마가 아픈 손가락으로 입학원서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제가 대신 써드릴까요? 글씨가 예쁘진 않지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른은 무언가에 책임을 진다. 아픔을 이기고 견디고 사랑하는 것을 책임진다. 붕대 감은 손을 하고 있어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 나아간다.


지켜야 할 어떤 존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는 걸까.


사실, 어린 왕자도 그랬다. 뱀의 독을 참으면서 그렇게. 장미에게 돌아갔다. 이 세상 한 송이 있는 연약한 자신의 장미를 지키려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차가운 독을 이겨 장미에게 돌아갔다.


이제야 알았다.

어린 왕자는 아이였고, 어른이었다는 걸.



"엄마, 잠깐만."


부쩍 말을 잘하게  아이가 급하게 멈추었다. 새로운 재밋거리가 생겼는데, 노란색 보도블록을 따라 걷는 것이다.


"돌이야."

"우와, 돌이야?"라고 피곤해서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야. 얘는 돌이 아니고, 작은 돌이야."


집에 가져가자고, 여기도 돌이고  여기도 돌이고, 그런데 아이의 작은 손위에 있는 돌만 작은 돌이다.


아이들은 보통의 것들을 고유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어른들은 없는 그런 . 백만 송이의 장미들  자신의 장미 하나를 그리워할  있는 .


자신의 장미 하나만을 사랑할  있는 힘이 아이들에게는 있다.


이처럼 아이들에게는 주어지는 수백의 날들이, 반복되는 매일이 특별한 하루가 되는 수도 있다.


아이는 아침마다 내게 묻는다.


"엄마, 오늘은 어디 가는 거야?"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모르니깐. 아침에 눈을 뜨면 해가   보이고, 밤이 되면 달이   보인다. 그뿐이니깐. 오늘이 며칠인지는 궁금하지 않고 무슨 요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오늘 나와 함께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가 궁금하고 그게 중요하다.


주어지는 보통의 날들을,

반복되는 매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고유한 하루로 만들어 살아갈  아는 지혜.


나는 아이로 존재하고 싶다.




그런데, 분명 이 세상에 어린 왕자는 없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어른을 품은 사람은. 어른이란 분명 아이를 지나온 존재여야 할 테니깐. 또한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사라졌으니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의 모습으로 아이의 시절을 지나왔을 테니깐.


그렇다면 무어라 할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음에 아이를 품고 자라 온 그대, 어른이 되어가라고.

 

소년도 있고 소녀도 있어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품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라고. 지나 온 시절의 풍경과 냄새와 소리들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그것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또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려 애쓰며 삶 속에 담아내는 사람으로 남아있으라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어느 때는 아이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도 있고


그러면 또 어느 때는 어른의 모습으로도 존재할 수 있으니깐


얼마나 좋으려고.


사랑하는 것들을 책임지고 길들인 것들을 버리지 않을 줄 아는 자세를 가진 어른으로

보통의 것들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순수함을 지닌 존재로


그런 존재 방식의 한 형태로 있다면 나는 그대가 얼마나 더 좋아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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