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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my Jul 12. 2023

엄마가 된지 120 여일째

육아, 그 달콤하고도 맵고도 텁텁하고도 심심한 행위에 대하여

임신을 했을때만해도 출산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육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 한 명이 '낳으면 끝이 아니라, 시작이잖아! 어떻게 키울건데? 너 회사 다니면 누가 키울건데!'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는 커녕 그 질문이 귓바퀴로 새어나가기 바빴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임신의 서막을 알렸고,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출산을 하였다. 그러고보니 임신은 약 9개월, 출산은 길어야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이나 육아는 최소 20년 간 지속되는 일이 아닌가. 이 사실을 병원 입원 5일, 조리원 2주를 보낸 후 집에 온 첫 날 깨달았다. 정말이지 나란 사람은 이런 중대한 일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하고 본다'라는 단점이 있다. 물론 육아기 20년을 쪼개면 더 다양한 단계로 구분되겠지만, 당장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겨야 할 생명체를 앞에 두고서는 이러한 행위가 20년 간 계속 될거 같다는 불안감과 공포심이 앞섰다.


아기와 함께 집에 온 첫날밤... '첫날밤'이란 단어가 신혼여행 때만 쓰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2시간 마다 수유를 하고 그 작은 몸을 물에 담궈 씻기고. 사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미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하루 였고, 오로지 충격과 공포라는 감정만이 나를 지배하였다.


잠재우기 위해 사용했던 수많은 수면 아이템


아기가 우는 순간엔 나의 영혼은 빠져나가기 시작하였고, 울음 소리에 담긴 정체모를 감정만이 나를 압도하였다. 정말이지 50일까지는 언제 어떻게 울지 모르는 아기가 너무 무서웠고 주말엔 남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다. 집에 오고 2주동안은 정부지원을 통해 관리사님이 집으로 오셔서 낮동안 아기를 봐주셨다. 아침 9시가 되면 아기를 관리사님한테 물건 건내듯 건내고, 난 그대로 침대로 다이빙하여 밀린 잠을 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질러났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이 나를 움직였던 거 같다. 생명체를 잘 보살펴 생존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매우 컸다. 그래서 아기를 '나의 일거리, Job, 과제, Task'라고 생각하고 마치 프로젝트의 PM이 된 마냥, '이 과제를 잘 수행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엄마는 해본적 없어도 프로젝트 PM은 해본 적이 많으니깐. 그러나 실제 프로젝트와 다르게 아기는 요구사항을 말로, 언어로 정리해주지 않았고, 프로젝트 팀원들 없이 PM인 나 혼자 그것을 해석하고 풀어내야 했다. 또한 아기는 PM이 계획한 일정표에 따라가지 않았고 항상 돌발변수를 던져주곤 하였다. 아기를 '문제'라고 정의하고 해결하고 풀어내려고 했으니, 될리 만무하다.


그렇게 20년의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납기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멘붕 속에서 지내다 보니 어느 덧 50일, 100일, 그리고 120일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아기는 어느 새 루틴에 따라 움직여주었고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쳐다보며 방긋 웃어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기가 날 보며 처음 웃어주었을때, 진정한 의미의 '심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집 밖에 못나가고, 집 안에서 자연인으로 살던 나의 적나라한 모습과 노력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던 거 같다.


아, 이제 내가 정말 이 아기의 엄마이구나


아기의 눈맞춤과 미소, 웃음을 통해 나는 마치 아기에게 엄마로 인정받는 느낌이었고, 아바타의 나비족이 꼬리로 교감하듯 아기와 연결된 기분이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육아의 무게감이 좀 더 가벼워졌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전보다는 덜 무서워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120일이 걸린 것이다. 물론 지금도 육아에 지쳐있긴 하다. 갑자기 새벽에 깨거나 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잠투정만 할 뿐 잠을 자지 않거나 품에서 재운 후 내려놓으면 눈을 반짝 떠버려 놀라게 하곤 한다. 그렇지만 처음만큼 감정적으로 무너지진 않는다. '도대체 왜 안자는거야!'라고 화가 나기 보다는 '우리 아기 크느라 힘든가보구나, 성장통이라 많이 아픈가보다'로 말못하는 아기를 이해하려고 한다. '나'라는 삶에서 '아기'의 삶으로 관점이 이동하기 까지 수일이 걸렸다. 이것이 어쩌면 모성애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120일이 7,300일(20년)이 되기까지 수많은 난관과 갈등이 있겠지만 '육아'라는 인생의 또다른 페이지를 달콤하고도 맵고, 텁텁하고 심심한 맛을 가득 채워보련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특히 우리 엄마,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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