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그 직후의 이야기
결혼한 지 정확히 1년째 되던 달에 기다리던 임신을 하였다. 무슨 일을 하든 일단 지르고 보는 성향으로, 임신 역시 '일단 하고' 보았던 것 같다. 임신이라는 게 어떤 행위이고 어떤 의미 인지, 그리고 그 이후엔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 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엔 임신 그 자체가 좋았다. 뭔가 해낸 느낌이랄까. 적지 않은, 아니, 많은 나이에 임신을 해내야 했고, '인생 한번 살면서 임신도 해봐야지 않겠어?'라는 단순한 생각에 정한 목표였기에,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는 순간 기쁨과 함께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도 올라왔다.
그렇게 난생 처음 겪는 일들을 감당해가며 약 9개월의 임신기를 거쳐 출산을 하였다. 출산의 고귀함을 느낄새도 없이 갑자기 결정된 제왕절개 수술로 인해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놓쳤다. 눈을 떴을 땐 병원 어딘가의 침대 위에서 '아프다.. 아프다..'를 입 밖으로 소리내고 있었고, 간호사가 진통제를 더 투약해주고, 또 정신없이 병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임신은 내 의지로 해냈지만 출산하는 과정에서는 '내 의지와 제정신'이 없었던 느낌이라 조금 아쉬웠다.
병원에서의 5박 6일이 시작되었고, 출산의 고통이 아닌 출산 후의 고통을 감당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나 역시 유튜브에서만 봐왔던 제왕절개 산모가 되어 병원 복도를 힘겹게 거닐며 운동 아닌 운동을 하였다. 그와중에 신생아실 창문 너머의 아기는 너무 작고 신기했다. 6일동안 단 한번도 눈뜬 모습을 보지 못하여 그저 신생아는 눈뜨는데 한참 걸리나 보다 했다. 그정도로 볼때마다 가만히 자고 있었고, 매우 작은 인형 같았다. 인간이 저렇게 작게 시작하는 구나.
드디어 그 작은 인형같은 인간을 내 품에 안고 조리원으로 향했다. 30분동안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기를 보고 있으니 그제서야 '내가 아기를 낳았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정말로 둘이 왔다 셋이 되어 가는 길이었다.
출산 전부터 산후조리원에서의 삶은 매우 기대되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재밌게 보았던 터라 조동(조리원 동기)을 만들 생각에, 그리고 이제 좀 몸을 회복하면서 움직일 수 있겠구나란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가 이 모든 걸 없애버렸다. 조리원 옆방에는 누가 있는지, 누가 있긴 한건지 알 수 없었고 하루 두번 정해진 모자동실 시간에 방으로 배달오는 아기만이 유일한 나의 말상대였다. 아마 이때부터 산후우울증의 싹이 자라났을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조리원에서의 삶은 엄마가 되는 과정을 예습하는 기간이었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이 모유수유 활동이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1시간 30분의 마사지 시간이었다. 모유수유라는 것도 처음해보는 행위이다보니 아기와 나는 같이 헤맸고, 수유를 제대로 한건지 혹은 된건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끝나있었고, 그렇게 우리 둘다 모두 땀범벅이 되었다.
회사에서 약 10시간을 꽉 채워 동료들과 북적이면서 보내다가 갑자기 24시간이라는 세상 아래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처음엔 여유롭고 좋았지만 바쁘게 살던 습관 탓인지 그 좋던 여유가 무료함으로 다가왔다. 난생 처음 맘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그곳에서 온라인 동지들을 찾고 댓글을 달며 적적함을 달래보았다.
출산 직후에 내가 익숙해져야 할 것은 바로 '적적함'이었다. 평소에 혼자 있을때도 항상 TV를 켜놓고 있던 만큼 '조용함'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성향인데, 조리원 방에 혼자 있거나 설령 아기랑 같이 있을 때도 조용함을 넘은 적적함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기랑 둘이 낑낑대며 모유 수유를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뭔가 의식의 흐름을 느낄새도 없이 눈물샘이 폭파하였고 영문도 모른 채 난 아기를 안은 채로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그때 처음 단어를 떠올렸다. '이게 산후우울증인가?'
그 이후로 몇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그렇게 우울감과 설렘, 걱정과 기대라는 오묘한 감정의 조합들을 끌어 안은채 아기와 함께 집으로 입성하였다.
집 도착한 바로 다음날부터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2주동안 방문하셨다. 따지고보면 출산 직후 5주동안은 내 손보다 남의 손에 아기를 키웠다. 그동안 나는 '적적함'에 익숙해져야 했다. 이모님과 아기 그리고 나 3명이 있는 낮시간에는 적막함이 넘쳤고 집에 와서도 하루종일 잠만 자는 아기를 위해 더 조용히 해야 했다. 낮시간동안에는 이모님이 아기를 봐주셔서 몸은 편했지만 마음을 채우고 있는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이 시기에 남편과 그 전보다 더 많이 싸웠던 거 같다. 내가 던진 감정의 화살을 남편은 막아내기 바빴고, 그 화살은 다시 나에게 돌아오며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우리 둘다 이유를 명확히 모른 채 내가 만든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아기를 안고 수유하고 있는 채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데(이때는 이유없이 그냥 눈물이 나왔다), 잘 먹고 있던 아기가 갑자기 울상이 되며 날 쳐다보면서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감정을 오감을 통해 느낀다는 말이 생각이 나면서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감정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 산후우울증의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1. 처음 겪어보는 상황들
매번 계획적이고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들과 일들을 겪어내다가 한치 앞도 모르겠는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간만에 '멘붕'이 온거다. 유튜브 콘텐츠들과 육아 도서들로 아무리 공부를 해도 말못하는 아기의 울음을 단번에 해석하여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은 어려울 뿐이다. '공부해도 모르겠는' 영역이 등장한 것이다.
2. 끝이 없는 육아
육아란 끝이 없는 것이었다. 학교나 회사에서 하던 과제, 프로젝트들은 명확히 '끝'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끝을 생각하며 버티는 것이고, 끝나고 난 이후의 성취감이 좋아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런데 육아는 말그대로 '끝'이 없는, 매번 새로운 '시작'만 있는 새로운 범주의 일이다. 사춘기 넘어가면 내 품 밖의 자식이라지만 혈연인 이상 평생 봐야할, 토닥여야 할 나의 자녀. 끝이 없고, 평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다시 멘붕에 빠진 것이다.
3. 나 혼자 이겨내야 하는 상황들
평일에는 현실적으로 남편의 육아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서 더이상 상대방에게 무언가 기대하고 의존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회사 일도 사람들과 같이 해나가는 재미에 열심히 해왔건만, 육아는 오로지 나 혼자, 내 힘만으로 이겨내야 하는 상황들에 멘붕이 왔다.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던 이유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니 그래도 좀 더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내용들을 남편과도 공유하고 서로 공감하면서 감정이 조금씩 치유되었다.
원인을 파악했다면 해결책을 강구하는게 맞겠지만, 사실 원인을 파악하기 전부터 이미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존버정신,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버텨내는 수 밖에,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에 내가 좀 더 성숙해진 엄마가 되어 있을 수 밖에.
그렇게 아기 탄생 60일이 훌쩍 넘은 지금, 어느 날은 전쟁을 치르다가도, 어느 날은 평화가 찾아오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물론 전쟁 중이더라도 아기의 미소 한 번에 갑자기 평화가 한 10초 동안 올때도 있다. 평생을 '파워J'로 살아온 내가 계획대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 속에 아기의 미소를 보고 옹알이를 들으며 살아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엔 여전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차피 안지켜질거 알면서도.
100일을 향해 또 한번 버텨보자. 하루하루가 힘들어도 다시 없을 오늘이고, 다시 없을 오늘의 아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