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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Jul 02. 2020

흙먼지와 매연 사이, 페스

미로도시, 페스에서 맞이한 온기




쉐프샤우엔의 푸른 세상을 뒤로한 채 천년의 세월을 품었다는 이 곳, 시간이 멈춘 미로 도시, 페스(페즈)로 넘어왔다.



이곳을 도착하여 처음 맞이하게 된 곳, 블루게이트.

페스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와 같은 이 대문의 아름답고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눈길을 끈다. 모로코 그 특유의 문양과 색감이 이 블루게이트에 다 묻어나 있다. 안쪽은 고대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록색, 바깥쪽은 신문화를 상징하는 짙은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문 위로 새무리 떼가 날아오르면 이건 또 한 폭의 그림이다.



이 문을 지나면 페스의 미로인 메디나 거리가 펼쳐진다.

세계 최대의 미로로 알려진 페스의 구시가지 메디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그 중세 모습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나체의 닭들과 돼지머리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는 이곳은 무려 9,600여 개에 이르는 협소한 골목들이 실타래처럼 엮여져 있다.

‘미로’라는 표현에 맞게 여기저기 뻗었다 구부러진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막힌 골목을 만날 때도, 새로운 넓은 길을 맞이할 때도,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큼의 좁디좁은 골목을 만날 때도 있다. 골목골목이 너무 많아서 나처럼 길치인 사람들은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죽제품, 수공예품, 생필품 가게들과 작은 카페, 레스토랑이 늘어져 있는 그 좁고 복잡한 골목들을 걷다 보면 어느새 중세로 시간 여행이나 하듯, 여러 순간이 담긴 이 골목의 미로 속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 메디나 거리를 지나다니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치나? 재팬? 꼬레아?”


특히나 페스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늘 ‘치나’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온다는 사실이 조금 그렇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이런 거엔 크게 예민하지 않고 무딘 나여서인지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이 정도야 어딜 가나 있지 않은가?


나를 정말 괴롭힐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런 것 또한 내가 즐기기 나름 아닐까. 이러한 그들을 나쁘게만 바라보면 한도 끝도 없이 나쁘게만 받아들여질 테니 난 그냥 그들의 이런 모습까지 함께 즐기기로 했다.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면 ‘살람’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지나쳤고 그러면 그들 또한 미소로 답해주며 그 이상의 것은 요구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들을 뒤로한 채 페스의 가장 유명한 명소인 가죽 염색공장, 테너리를 방문했다.


입구로 들어오니 나의 코를 달래 줄 민트 잎 하나를 건네준다.

건네받은 민트 잎을 코 밑에 장착하고 위로 올라가니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그 특유의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형형색색 물감이 든 염색 통에는 긴 장화를 신은 인부들이 들어가 가죽을 염색하고 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이 가죽 염색 공정 장면을 보고 있자니 그 장면 자체가 그림이라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장면을 만들어내는, 저 아래에서 이 지독한 악취를 견디며 일하고 있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걸 관광이랍시고 사진만 찍어대는 것이 미안한 마음마져 들었다.

이렇게 천년을 이어오고 있는 이 모로코인들의 가죽 천연염색에는, 이를 통해 탄생한 다양한 색깔의 명품 가죽에는 그들의 고단한 삶과 노고가 스며들어 있었다.



블루게이트를 지나 도로를 쭉 따라 걸어 올라오면 페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 나오는 데 그곳에서 본 페스의 풍경 또한 길거리의 매연을 잊어버릴 만큼 꽤나 아름다웠다. 그 탁 트인 뷰를 배경으로 맥주 한잔, 칵테일 한잔 마시며 그 분위기에 취해갔다.



페스에서 며칠간 머무는 동안 함께 한 숙소는 리아드 호텔식 숙소였다.

아랍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모로코 전통 숙소인 이곳의 분위기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건 이 숙소의 주인아저씨.

원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을 좋아하던 숙소 아저씨는 나와 친구에게 부인이 손수 만든 질레바를 선물해 주었다. 활짝 웃으며 질레바를 건네는 그 손길겨울의 페스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되었다.




사실 페스 또한 그다지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도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또 그런 도시에서 남들보다 더 오래 죽치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된 무렵 즈음이라 육체적으로 조금 쉴 타이밍이기도 했지만

미로를 닮은 메디나 골목을 누비다 보면 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느긋하게 페스의 골목을 누빈 후 모로코 커피인 누스누스 한 잔과 모로코 전통 음식인 타진과 빠스떼야로 허기를 달래다보면 하루가 다 가버리곤 했다.

흙먼지가 매연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그 골목들이 안겨주는 풍경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몇날 몇일 느긋하게 둘러보자 페스의 매력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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