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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Aug 09. 2020

어쩌다 사랑하게 된 런던

오래된 멋과 여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진짜 자유여행의 시작은 런던쯤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동유럽 국가에선 연말 연초라 빨리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포르투갈, 모로코에서는 생각보단 오래 머물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큰 그림은 가지고 움직였는데 런던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근 한 달 살이를 하게 된 곳.

별다른 기대 없이 오게 된 이곳에서 오래 머무는 사이 자연스럽게 이곳을 사랑하게 되었고 기대 이상의 좋은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대도시의 분주한 길거리. 많은 사람들과 커다란 전광판, 감각이 돋보이는 상점들로 둘러싸인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운 분위기. 그 속에서 들려오는 영국 특유의 근사한 영어 발음을 듣고 있자면 괜스레 나까지 멋있어지는 느낌마저 들었고 길거리에 스탠딩 하며 마시던 술 한 잔, 축구의 나라답게 스포츠 펍에서 다 함께 즐기는 축구관람에 늦은 밤까지도 행복했다. 



물가 비싸다던 런던에서 나는 값싸고 위치 좋은 호스텔 도미토리를 내 집 마냥 드나들었고 늘 마트의 3 meal(샌드위치, 샐러드, 스낵, 음료 중 3가지 3파운드)을 즐기며 이곳의 마트마저 나에겐 맛집으로 둔갑해버렸다.  



엔틱 한 건물은 물론이고 곳곳의 빨간 우체통과 빨간 이층 버스 사이로 영국만의 고유의 감성에 빠져 들어갔고 나름 문화생활을 즐기는 나에게 런던의 뮤지컬 공연은 값진 보물과도 같았다.


‘우울한 도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도시인 런던이지만 비 내리는 울적한 런던 대신 환하고 따뜻한 런던의 겨울을 만났고 그 속에서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따뜻한 문화와 생활을 즐겼다.


런던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1. 달달한 오후의 여유, 에프터눈 티


영국스러운 아름다움과 함께 하는 에프터눈 티는 런던에 오면 가질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에프터눈 티는 오후 2~4시경에 마시는 차로 184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티타임. 이 영국 정통의 티타임을 즐기다 보면 그 여유와 느림의 미학에 나도 조금씩 스며든다.



정통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와 갓 구운 스콘을 반으로 갈라 클로티드 크림과 과일잼을 발라 함께 먹으면 이보다 완벽할 순 없다. 한국에서 먹던 퍽퍽한 스콘과는 달리 속이 부들부들한 스콘에 크리미 한 크림과 달달한 쨈의 조화를 경험하고 나면 여태껏 몰랐던 스콘의 참맛에 빠져든다.


하루에 수많은 국적의 여행자가 모이는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에프터눈 티를 즐기는 사이 달달한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며 바쁨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즐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런던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2. 런던의 랜드마크, 런던아이 


빅벤, 런던 아이, 버킹검 궁, 엘리자베스 여왕 등 런던 하면 떠오르는 것이 참 많다.

하지만 나에게 런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런던아이’였다.

과거 파리의 에펠탑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듯, 런던의 런던아이는 지금까지도 나의 기억 속에서 나를 설레게 만든다.



해 질 녘 런던아이를 찾은 나와 친구는 말했다.


이게 대체 뭐라고,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란 관람차에 불과할 뿐인데, 
이렇게나 전 세계 사람들이 이걸 보러 오는 것일까?


하지만 그 고작 동그란 관람차 뒤로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그 흔하디 흔한 관람차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강 위에 떠있는 런던아이 뒤로 물들어가는 로맨틱한 하늘과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검게 변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별처럼 빛나는 런던아이가 만들어내는 그 환상적인 그림을 놓칠 새라 카메라 셔터를 쉴 틈 없이 눌러댈 수밖에 없었다.



런던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3. 자연과의 만남, 세븐 시스터즈


런던 근교에는 갈만한 곳이 참 많다.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곳은 바로 세븐 시스터즈.

3명 이상이어야 열차 비용이 싸다기에 난생처음 동행을 직접 구하고 그렇게 총 7명이 모여 이곳을 향했다.



반나절 만에 도착한 이곳은 마치 제주도와 같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청량하고 맑은 하늘에 드리워진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

싱그러운 초록 잔디로 가득한 언덕과 푸른 바다,

그 푸른 바다 위 일곱 개의 하얀색 절벽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 일곱 개의 절벽은 마치 나에게 일곱 가지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만 같다.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잔디를 계속해서 걸어본다. 언덕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름이 여기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그 푸르른 초원 위를 노니는 동물들을 보고 있으니 뭔가 모를 마음의 편안함까지 다가온다. 이 편안하고 드넓은 잔디를 계속 마주하고 있자니 그냥 걱정 없이 벌렁 드러누워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어 행복했던 곳, 

같이 간 사람들도 좋아서 더 추억이 많은 곳, 세븐 시스터즈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꿈틀대고 있다.




우리 동네처럼 편안했던, 런던만의 그 특유의 감성이 가득했던 근 한 달의 시간. 

런던에서만 느껴지는 오래된 멋과 여유 덕분에 그렇게 난 런던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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