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겪어 본 사람은 절대 모르는 것
나와 여드름의 지긋지긋한 악연은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겨울에 너무 추워서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볼을 막 부볐는데, 그 뒤로부터 여드름이 났다. (물론 그거 때문에 난 것은 아니고 그냥 청소년기의 호르몬 영향이 컸을 것이다. 친오빠도 굉장한 여드름 피부였기에 그냥 유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뒤로 거의 20년 정도 지긋지긋하게 여드름과 싸우고 있다. 10대와 20대 초반에는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다. 예쁜 이목구비도 아닌데 피부까지 지저분하니 정말 싫었다. 고2와 고3때에는 대입에 집중한다고 피부과를 별로 다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중학생 때에는 정말 여드름 피부가 너무 싫었다.
20대가 된다고 피부가 좋아지지 않았다. 어른들이 중고등학생에게 대학가면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지고 남자친구도 생간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살은 빼야지 빠지고, 피부도 관리해야 좋아지고, 남자친구도 노력해야 생기는 것이다. 피부과를 열심히 다녔지만 다닐 때에만 잠깐 좋아지는 것 같고,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웃긴 건 30이 된다고 여드름이 안 나는 게 아니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피지 분비가 줄어드는 건 있다. 지성 피부인 내가 수부지가 되고, 건조함도 느끼게 되었다. 원래부터 중성이나 건성이었던 사람들에 비해 확실히 주름도 없는 것 같긴 했다. (주름이 없는 대신에 모공이 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말하는 결혼하면 여드름 없어진다 이런 것도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냥 나이 들면서 조금 나아지는 것이지 결혼이랑 전혀 상관 없다. 결혼 후에도 여드름은 계속 났다. 물론 여드름의 양상은 달라졌다. 10대와 20대 초반에는 화농성 여드름이었다면, 지금 나는 여드름은 좁쌀 여드름에 가깝다.
20년 동안 피부과에 쓴 돈을 생각하면 한 2천만원은 되지 않을까 싶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가계부 어플에 내가 쓴 피부과 비용만 쳐도 1300만원은 나온다. 10대와 20대 초까지 부모님이 지원해준 피부과 비용이 못해도 700만원은 되지 않을까 싶다. 항상 피부 관리를 한 건 아니고, 한창 다닐 때에 돈을 좀 몰아서 썼다고 볼 수 있다.
20년 넘게 여드름 피부로 살아오고 돈고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한 사람으로서 여드름은 불치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마치 아토피나 비염과 같이 그냥 평생 같이 가는 친구랄까) 물론 관리에 따라서 결과물은 꽤 다르다. 이걸 느낀 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친오빠도 굉장한 여드름 피부였는데, 오빠는 남자이기도 하고 별로 피부에 관심이 없는 건지 꾸준히 관리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 비해 꽤나 열심히 관리를 했고, 지금 딱 보면 내 피부가 훨씬 낫다. 그래서 새언니도 나는 피부가 좋은데 왜 오빠는 안 좋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난 "저도 피부 엄청 안 좋아요... 지금도 안 좋고, 전에도 안 좋았어요... 저는 오빠보다 돈과 시간을 더 많이 들여서 차이가 나는게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여드름 관리는 크게 (1) 압출과 (2) 약 두 가지가 있다. (그 외에 뭐 레이저나 화학적으로 하는 것 등도 있긴 한데, 잘 모르겠다...)
압출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아프다. 더 슬픈 사실은 그렇게 아픈 압출을 한다고 여드름이 안 나는 게 아니다. 이미 난 여드름을 관리하는 것이다. 10대 때에는 압출을 할 때, 너무 아파서 울기도 했다. 관리사 언니들 (피부과에서도 의사가 짜주는 게 아니라 관리는 관리사 언니가 해준다. 레이저나 뭐 중요한 것만 의사가 와서 해준다)이 눈물 닦아주고 그랬다. 사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억울함 때문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태어나서 여기 누워서 돈 쓰고 시간 쓰고 아픔까지 참고 있어야 되는지. 그리고 이걸 받는다고 피부가 엄청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계속 받아야 현상 유지라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다.
어쨌든 여드름 압출은 정말 많이 받았고, 그 덕분에 난 피부 관리를 할 때 MTS나 주사를 맞는 것처럼 바늘을 이용한 시술은 비교적 잘 참는다 (화학적인 시술도 참을 만 하다). 내가 왜 얼굴에 주사를 잘 참는지 몰랐는데 아무래도 압출로 단련이 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대신에 레이저는 절대 못 참는다. 레이저로 뭐 피지선을 다 끊어버리는 피부과를 들었는데 (내가 직접 다닌 것도 아니라서 상호명은 말하지 않겠다. 지인 두 명 정도가 다녔다) 아마 난 너무 아파서 시술을 못 받았을 것이다...
약은 먹는 약이랑 바르는 약이 있는데, 솔직히 바르는 약은 그 당시에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고 먹는 약은 효과가 있었다.
(**요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애크논 크림은 꽤나 좋다. 내 10대와 20대에는 이 크림이 없었다. 요즘도 뭔가 피부에 올라올 떄, 애크논 크림을 바르면 확실히 잘 가라 앉는 느낌이다),
아예 피지를 날리는 약이었는데 (이름 잘 모름, 아마 여드름 약 먹어본 사람들은 다 알 건데...) 입술이랑 손등도 엄청 건조해졌다. 이게 기형아 유발할 수 있는 약이고, 연골에 뭐가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그래서 솔직히 안 먹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10대랑 20대 때 진짜 잠깐 먹었었다. 다 합치면 뭐 6개월도 안 먹었을 것 같다. 이 약을 먹으면 확실히 진짜 피지가 안 나와서 여드름이 없어진다... 어떻게 보면 근본적인 해결일 수도 있지만, 부작용이 있다 보니 그냥 차라리 여드름이 있는 채로 사는 게 안전할 수도 있다. 이건 사람마다 중요도에 따라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30대 중반인 지금도 그다지 좋은 피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6학년 이후의 피부 중에서는 꽤나 좋은 상태의 피부라고 생각한다. 30대에 피부에 들인 돈은 40대에 나타나고 40대에 피부에 들인 돈은 50대에 나타난다는 말도 있다. 인생은 길고 노화는 지속될 것이다.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좋은 피부로 타고 나서 별 관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피부가 좋은 사람들을 보면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뭐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다보니 인생이 불공평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면서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돈을 벌어서 피부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나날이 좋아지는 피부 관리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