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을 썼지만 해준 건 없음
(이미지: gpt)
최근에 감기에 지독하게 걸렸었다. 회사에서 마무리할 게 있어서 꾸역꾸역 나가려고 하는 나를 남편이 말렸다. 몸이 불덩이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벽에 열이 올라서 아파서 깼다. 주섬주섬 타이레놀을 먹고 다시 잤다. 그 때 열을 재보니 38도 정도가 되었었다.
미국에 온지 거의 10개월 정도가 되어가는데 아직 병원 진료를 제대로 봐본 적이 없었다. 보험이야 내 회사에서도 있고, 남편 회사에서도 있어서 가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가봤자 돈만 내고 별로 해주는 게 없다는 에피소드를 몇 개나 들어봐서 그런지 굳이 돈 쓰고 시간 쓰고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한국에서 사 온 상비약과 미국에서 산 상비약으로 충분히 지나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꽤나 아팠고 타이레놀도 초반에는 잘 안 들었기 때문에 (심하게 아파서 그랬던 거 같다) 병원에 가야되나 싶었다.
회사에는 부랴부랴 병가를 내고, 남편이 병원을 몇 개 알아봐 줬다. 내과를 알아봤지만 당일 예약은 당연히 안 되었다. urgent care라고 해서 가정의학과 같은 느낌의 병원은 2개 알아봐 줬는데, 그 중 좀 더 평이 좋은 곳으로 방문했다.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병원을 들어간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2시간이 걸렸지만, 처방약을 주지는 않았다. 나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아침에는 약을 안 먹고 방문했는데, 열을 재보니까 화씨 99.9도(섭씨 37.7도)였다. 의사는 이 정도 열은 괜찮다고 그랬다.
영어 단어를 덕분에 하나 배우게 되었는데 "low-grade fever"였다. 우리로 따지면 미열로 37~38도 사이다. 38도가 넘어가야 진짜 열로 취급을 해주는 것이다.
A low-grade fever is generally defined as a body temperature between 98.6°F (37°C) and 100.4°F (38°C). It's often a sign that your body is fighting off an infection, such as a cold or the flu. While it can be uncomfortable, low-grade fevers are usually not a cause for serious concern and can often be managed with rest and hydration.
한국어로도 열이 나는 기준을 찾아봤는데,
"일반적으로 체온이 36.0~37.3°C가 정상, 37.4~37.9℃가 미열, 38~39.9°C는 발열, 40℃ 이상이면 고열로 정의한다"라고 나왔다.
37.7도였지만 난 정말 아팠다. 의사한테 나 진짜 아픈데 약은 처방 안 해주냐고 하니, 괜찮다고 아프다고 느끼면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사 먹으라고 했다.
(목도 살펴보고 청진기도 해보고 나름 이것저것 해보긴 했다)
의사는 친절했고 (직원은 별로 안 친절했다) 처음으로 미국 병원을 경험해볼 수 있었지만, 2시간 낭비하고 돈 낭비한 거 같았다.
남편 회사의 보험을 적용해서 코페이*로 35불 냈는데 (내 회사 보험이 적용되는 곳인지는 확인을 안 해봤는데, 만약 내 회사꺼가 적용되었으면 15불이면 되었을거다, 그 때는 아파서 열심히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만약 보험이 없었다면 150불부터 시작한다고 써있었다. 나중에 온라인으로 청구 내역을 보니 보험회사에는 160불이 청구되어 있었다.
(참고: 코페이 (Copay)는 의료 보험에서 환자가 의료 서비스 이용 시 지불해야 하는 본인 부담금의 일부를 의미합니다. 즉, 병원 진료나 약 처방 등을 받을 때마다 정해진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이 좋다고 생각되는 포인트들이 여러 개 있는데 (반대로 한국에 있지 않고 외국에 살아서 좋다는 포인트도 여러 개 있다), 병원은 정말 한국이 좋구나 싶었다.
어쨌든 그 뒤로 일주일 정도 골골 거리고, 2주 정도 지나니 거의 싹 다 나았다. 결국 내 면역력이 열심히 일해서 낫기는 나았는데 이게 미국식 치유법인가 싶었다.
미국인들이 열실히 운동하는 건 아파서 병원을 가면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뒤로 트래킹을 빡세게 한 뒤에 발바닥이 굉장히 아팠지만 병원은 알아보기만 하고 결국 그냥 안 가고 집에서 마사지와 파스로 해결했다. 그리고 결국 1-2주 시간이 지나니까 나았다. 이렇게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