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바로 설 때

유리멘털의 핑계

by 한아르미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서

‘실패했을 때의 패배감은 옆으로 밀어 두고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면

그 잔해 속에는 반짝이는 것들이 섞여 있다’는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납득할 수 있는 실패에 도달하라“는 문장과 함께.

‘실패’라는 단어가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걸 보면

아마도 나는 나를 실패한 상태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돌아보면

패배감을 옆으로 밀어둘 만큼

단단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상황을 차분히 살펴보지도 못했으며,

결국 그 안에 섞인 반짝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쩌면 실패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 크게 놀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시 도전할 만큼

단단해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조심스럽다.

다만 유리멘털이라는 것도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조심하고 신중해지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은 멀었다는 느낌도 든다.


밤엔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셨다.

어제 마신 맥주와 오늘 마신 맥주의 맛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며

맥주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괜히 뿌듯해졌다.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 두고

나는 밤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몇 가지를

결국 모두 미룬 채 다시 누웠다.

몸이 먼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마음이 지치면 몸도 따라온다며

지금은 쉬는 쪽이 맞다고 정리했다.

조금은 게으른 선택 같았지만

오늘은 애써 눈감아 보기로 했다.


결정을 하나 내렸고

내 마음은 이미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는데

현실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절차라는 이름의 기다림 앞에서

마음만 먼저 도착해 있는 기분이다.

시스템이 모두 완료되면

이 마음도 함께 정리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는

생각이 깊어지지 않게

그저 정신없이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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