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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말씀하셨지, 항상 누구도 믿지 말라고......
(중략) 그렇게 평생 살아남는데 급급한데 어떻게 성공하라는 건지 몰랐었지. 나에게는 말 등이 집(home)이었다.
- 영화 콘크리트 카우보이 중.
나도 일과 일에서 전전긍긍하며 살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커리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20년 락다운이 일어나고 난 후, 영국 남자 친구집에서 갇혀있던 나는, 드디어 나에게도 나 자신에게 딱 맞는 '느리게 가는' 시간이 생겼다고 안도했다.
여러 타인에게는 엄청나게 끔찍했던 '코비드 에라(Covid era)'는 나에게 드디어 나를 속속들이 빨아드리려 하는 진흙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구원의 시간이었다.
나만의 시간이 생긴 나는, 미래의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우주와도 같은 넓은 아량으로, 공짜로 책상에 앉아 미친 듯이 수험생 때처럼 공부할 수 있었다. 혼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먹고, 자고, 요가하고 이렇게 직장인 때보다 훨씬 힘들게 9-6을 반복했다.
1년 반 정도 지나, 드디어 2개의 인터뷰가 잡혔다. 나에게도 내 포트폴리오에서만 뽐(?) 내던 실력을 풀타임 돈 받으며 선보일 수 있겠다 싶어 너무 신이 났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신이 난다는, 즐겁다는 느낌이 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생소하고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더 좋은 오퍼를 준 회사를 선택해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흥이 난다 흥이나 하며 방방 뛰는 나도 잠시, 역시나 여전히 풀리지 않던 '사람'이라는 숙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금요일이 제일 좋은 날! 에서 일요일이 제일 무서운 날, 월요일은 '내가 죽는 날'로 변해갔다.
우리네 가장 큰 편견 중 하나가, '복지국가라고 해서, 직장인들의 노동시장도 복지국 간에 걸맞은 시스템일 것 같다는 것, 직장인으로서 일하는 것도 보장받으며, 대우받으며 일할 것 같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오해가 있을까.
영국은 맛있는 게 없다는 오해가 아니다.
하지만, 영국 또한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한국시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오해가 더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약 5년간 일하며 몸소 느껴본 결과, 결국 자본주의 시장에 먼지 한 줌 혹은, 돌아가는 톱날바퀴에서 톱날에 가까운 대체가능한 자원으로서, 회사라는 건 결국 다 똑같은 곳이다.
마지막으로 써 내린 일기는 울분이 가득했던 바로 전장과는 달리,
타인에게 향하던 미움과 증오가 나에게 향해있었다.
아이폰 메모장을 정리하다 일전에 부푼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며, 기대에 차 시작했던 직장인 일기가 그곳에 있었다. 아예 지우기 전, 다시 꺼내보아 읽어보았다.
심지어 그때의 나는, 누군가 이걸 보게 될까 무서웠나 본지, 잠금설정도 해놓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으로 쓰고자 마음먹었던, 직장인 일기. 그곳에 처음과는 다른 시선들의 사람들, 사람마다 대하는 게 다른 두 얼굴의 직장동료, 돈은 없으면서 사람은 부리고 싶은 회사 체계등이 상당히 날것의 단어와 함께 적혀있었다.
주제는 역시나, 일은 너무 재밌고 좋다, 하드스킬(Hardskill)은 퍼펙트하지만, 소프트스킬(Softskill) 사람 다루는 스킬은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매니저의 리뷰 등이었다.
너무나도 힘겨운 단어 '사람', '관계', '소셜라이프'.
나에게만 유독이 힘겨운 사람들, 화살로 나를 푹푹 찌르는 듯 한 사람들의 시선,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깨달아버린 나의 쿵 떨어진 심장,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라도 챈 듯, 나한테만 유독 이상하게 대우하는 동료, 앞에서는 하하 호호 뒤에서는 나를 개껌처럼 싶은 동료, 그리고 질투에 사로잡힌 내 선배라는 사람 등... 그다지 이것저것에 대한 기대가 높지는 않았으나, 물 건너 바다 건너, 시간도 다른 이곳에서까지, 이토록 사람이라는 건 똑같을 줄은 정말 몰랐던 것 같다.
분명, 하루에 어떤 걸 했고, 어떤 성취를 했으며, 다음엔 어떻게 해야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쓰려고 했던 일기였는데, 나의 성공을 위해서, 나의 건강한 직장인생활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 일기였는데, 노트 첫 줄부터 막줄까지, 탄내만 진동하는 나의 불타는(?) 울화만이 가득가득 이었다.
그 일기장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써 내린 일기는 울분이 가득했던 바로 전장과는 달리, 타인에게 향하던 미움과 증오가 나에게 향해있었다.
'이따위로밖에 살지 못하는 데에는, 너...라서이겠지,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살더라.'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이 한 줄을 남기고, 나의 포부 넘치던 직장인 일기는 그렇게 끝이었다.
나는 너무 내가 싫었다.
지금도 이 생각이 있냐 없냐 하면, 잘 모르겠다. 어쩔 때는 있고 어쩔 때는 없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 3년 전만에 도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벌려놓은 일 때문에 살아야 하는 그런 자괴감 투성이의 모자란 인간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 '콘크리트 카우보이'.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말에 대한 이야기와 문제투성이 십 대의 성장 스토리인 것 같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챙겨보았다.
순식간에 지나갔던 90분의 시간 안에서 가장 크게 내 안에 들어와 소리쳤던 스크립트 중 하나는, 아버지 역할의 이드리스 알바 (Idris Elba)가 자신의 비행청소년 아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할 때였다.
엄마가 항상 나에게 말했지, 항상 주위를 살피며 살아라, 누구도 믿지 말아라...
나의 엄마는, 어릴 적부터 있는 그대로 믿고, 듣고, 행동하는 나 때문에,
'항상 문장과 문장사이의 의도를 읽어내, 사람들이 하는 말의 뒤에 뭐가 있는지 봐!'
를 입에 달고 사셨다. 10대의 나는, 신문을 읽어도, 글과 글 행간사이의 의도를 읽어내야 한다고 배웠고,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건 아버지라는 사람으로 인해 알게 되었고, 돈과 명예가 찍어 눌러 내릴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그게 겉으로 번지르르한 얼굴의 기름처럼 겉으로 뻔히 드러남에도, 신경 쓰지 않고 알랑거리는 꼬리를 절대 내려놓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생겨났다.
나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도 미움의 한 부분이지만, 제일 크나 큰 구멍은 역시, 이렇게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공포스러워하는 나에 대한 증오였다. 구멍이 시간이 지나며, 발한 쪽만 빠지고 마나 했더니, 이미 내 목 끝까지 올라와있었다.
미움이 증오가 되고 증오가 더 큰 혐오로 진화하니, 그때부터는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즐거움이나, 만족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각들이 무뎌지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큰 '만족감'으로 다가왔다.
의학계의 의사, 정신과 스페셜리스트, 테라피스트 등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한결같이 말한 건, 콤플렉스 트라우마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였다.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행복한 것 아닐까,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 굳이 살이유가 있을까에 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즈음, 류시화 작가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다.
축복 blessing’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 blesser’와 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페르시아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그의 시에서, 신에게, 삶에게 "왜 나에게는 이것밖에 주지 않는 건가?"라고 물으면, "이것만이 너를 네가 원하는 것에게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 글귀가 베스트셀러가 내보인 이 한 글의 '정답'이 내 인생의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핸드폰의 독서 앱을 끼고 살며, 열심히 답을 구하기 위해서 다독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고 추구하고 있는 인간상은, 수도자, 스님, 수행자들이다. 그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고, 느끼고, 그러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 이다.
어떻게든 삶을 바꿔보려 애를 쓰고, 더 나은, 더 높은, 더 넓은 그 무언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상처 주는 이 모든 삶의 '치열함'이 내가 나를 불태워 없애 버리는 것이라면, 그와는 반대로, 이들과 같이 그저, 공백에 흰 종이를 바라보며, 그곳에 생기는 모든 현상들을 그저 손대지 않고 바라봐보기로 했다.
나를 제외한 상대에게 향한 자잘했던 미움과 증오가 나를 한 번에 깨물어 집어삼킬 정도의 혐오가 된 이 모든 상황만이 나에게 내가 원하는 곳으로의 길을 보이는 과정이라는 것, 이것이 위대한 철학가, 작가, 학자들이 발견한 대답이라면, 그것 또한,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질문 ; '왜 나는 이러한가'에 대답을 내리지 못했던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며 '어쩔 수 없이' 살았던 순간처럼,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없어지는 연기의 소산물, 떠나보낼 때가 되면, 떠나보내고, 받아들여야 할 때는 받아들여야 한다.
- 김사업,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내가 이렇게 나를 혐오하는 것은, 내가 마지못해 살게 만든 세상이 나에게 준 상처 탓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어떠한 소산물이다. 내가 이렇게 이 자리에 있는 (I am) 있는 이 상황도 결혼한 남녀가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나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기에 일어난 상황의 소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조건이 다한다면, 다 함께 소멸해 버릴 수 있는 우주의 보잘것없는 '것'의 하나라는 의미, 이 모든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緣起論)"이라고 한다.
나를 영원히 스스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고정된 존재로 취급했던, 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떤 것에 대한 미움과, 증오 및 혐오 등의 생각은 있다가 사라져 버리지만, 그걸 끝내 붙잡고 스스로의 손에서 놓지 못하고 상처 주는 나는 항상 이곳에 있다. 그렇게 내가, 몇십 년의 시간 동안 이 모든 것을 나의 에고(Ego)로 만들어버렸다.
다른 모든 불필요한 메모장을 정리하며, 나는 무려 12000 여자 정도 되는 기나긴 '증오의 직장인일기'를 삭제해 버렸다. 어딘가에는 존재했을 것이지만, 결국, 이처럼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이, 연이 다했으니, 나에게서 떠나가라며, 그렇게 보내버렸다.
앞으로는 이렇게 어차피 버려져 버릴 직장인 일기, 누군가를 흠보는 일기를 절대 쓰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안 한다. 어차피 인생에 절대란 없으며 (엄마왈), 결국 나는 조건이 되는 상황에서 다시 누군가를 증오까지는 아니어도, 미워할 것이고, 힘들어할 것이다. 그게 나인걸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미움과 힘듦도 결국, 언제일지는 모르나, 나의 시스템에서 떠날 것이고, 나는 또 평안 해질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다.
딱 한순간만 소유했던 나의 모든 것들
All my possessions for a moment of time.”,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쓰는 글, 내가 현재 느끼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우울감, 내가 느끼는 현 상황에서의 불안감, 그리고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모든 것은 결국 내손에서 한순간만 있다 사라질 모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모든 것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집착하지 않으면, 통제하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여유롭다. 여유롭게 관대해진다. 그렇게 나에게 괜찮다고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관대한 마음과, 남에게도 나에게 하는 것만큼의 관대함을 보이면, 크나큰 힘듦 없이 이 기나긴 혹은 짧은 100세 시대를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마음이 오래갈 것이라는 것도 집착이니, 그것 또한 기대감으로 묶어놓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