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포비아의 부끄러운 고백과 그리 대단치 않은 목표 설정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내 인생과는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어리석고 경솔하게도 아직 그 습관이 남아있다.
"에이, 모양 빠지잖아."
어린 나는 10만큼의 안간힘을 쓸 수 있어도
6~7 즈음 설렁설렁 힘 조절을 하는 게 진정한 멋이라 생각했다.
그게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갓 데뷔한 신인이 다섯 번 경기에 출전해
운 좋게 4승 1무 0패 했다 치자.
기세등등했겠지.
한 번의 무승부는 내 판단 미스였다는 핑계와 함께.
너그럽게 쳐주면 승률이 90%나 되기에
실패라는 게 무슨 맛인지 아직 모를 때였다.
노력에 비해 학창 시절 성적이나 소위 평판이랄까, 내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으므로.
중견 선수가 된 지금,
돌아보면 경기에 출전한 전력은 쉰 번,
18승 11무 21패쯤 되는 기분이다.
학년이 올라가고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명절에 친척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할 만한 훌륭한 자식이 되지도,
학과에서나 소속 팀에서나 리더가 될 만큼 눈에 띄지도 않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지냈다.
이때부턴 승률을 따지지 않게 된다.
스스로에게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만 내린다.
열여덟 번이나 성과를 거뒀다고.
자신에게 후한 평을 주는 것도 나쁘진 않지.
물론 반대로 과소평가나 반성, 자기 비하만 하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도전했냐는 것이고 그중에서 나는 무얼 얻었냐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게 몇 번이나 되는가.
하물며 1000조각짜리 퍼즐을 한 자리에서 끈덕지게 맞춰본 적이 있기를 한지,
원하는 기업을 목표로 준비하며 기본적인 어학이나 자격시험에서 원하는 점수를 받기를 했는지.
아마 노력의 정도로 매긴다면 0승 0무 50패일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모양 빠지는 게 무서운, 못난 완벽주의를 가져서일까.
초라하고 같잖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전패(全敗)하는 삶을 줄곧 살아와
꼭 한 해를 새 마음으로 시작해야 되는 때가 되면 마음이 무거운 것 같다.
특별히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올해도 제자리걸음일 거야, 내가 그렇지 뭐."
지난해 말 채사장 작가의 인문학 강연을 들은 이후
또 얼마 후에 강연을 들을 기회가 운 좋게 생겼는데
개그맨 서경석 씨의 강연이었다.
"작은 변화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큰 주제는 이렇다.
작은 변화를 이끄는 네 가지 방법,
1) 경청, 2) 건강, 3) 경험, 그리고 4) 창의에 대해 본인의 일화를 풀어내며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관객과 소통하며 재미있고 쉽게 설명을 이어갔다.
1) 경청
그냥 듣는 것은 쉽지만 '제대로' 듣는 것은 어렵다.
1, 2, 3 법칙: 한 번 들으면 두 번 반응하고 세 번 끄덕여라.
2) 건강
나만의 운동 한 가지를 할 것.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면 좋지만 그러기엔 일상은 바쁘다.
운동을 일상에 끼워 넣자. (eg. 샤워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스쾃 100개씩)
쌓이면 어마어마하다!
3) 경험
힘든 경험을 두려워 말라. (eg. <진짜사나이> 촬영 21개월)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른 방송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극한의 고통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딛고 일어나라.
4) 창의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
시작이 잘 되지 않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에
전형(틀에 박힌 것)을 분석해 보고
PMI(PLUS하고 MINUS하라. 그리고 INTERESTING한 것을 넣어라.)하라.
조금이라도 이전과 다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eg. 내 결혼식 축가로 누구를 부르지? 남자 연예인? 너무 뻔한데?
주변 가수들, 축구단 동료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작사한 곡을 불러주자!
*<도둑놈>이라는 곡이다.*)
창의적 사고와 행동의 치명적 단점은 결과가 반드시 좋으리란 법은 없다는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엔도르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창의적 사고와 행동의 최고 가치이다.
조금씩 다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생생한 삶이다.
어쩌면 살면서 최고의 관심사라고 할 만한 내용이어서 귀를 쫑긋, 벅찬 마음으로 강연을 들었다.
강연 그 자체로도 좋았는데 운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강연을 마친 후 Q&A 시간에 내가 미리 적어뒀던 질문이 뽑혀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문장으로 질문을 남겼지만 다행히 의미 전달은 잘 된 듯했다.
- 내 질문:
평생 한 가지 꿈만 좇으며 살았는데 꿈을 내려놓은 후 회의감이 듭니다. 제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앞으로 새로운 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서경석 씨 대답:
잘하는 일을 좋아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해보세요.
손톱만큼의 차이,
특별한 한 가지 생각,
서경석 씨가 이 강연에서 보여주기 위해 발표 자료에 추가한 이 강연만을 위한 특별한 한 쪽,
새로운 시도,
한 번의 용기…
이것이 차곡차곡 쌓이고 모여
미래에는 변화를 만들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얻었다.
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삶을 경험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그것에 노력을 더하면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된다.
언제부터 이걸 잊고 살았지?
창의적으로, 도전적으로 살기에
내 일터는 너무나 팍팍했던 거라고 합리화를 해보면서,
다시금 창의력 대장이 돼보려고 한다.
1)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은 버리고 더욱 경청하자.
2) 지금처럼 꾸준히 체육관에 가자. -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결과에 연연하지 말 것. 몸은 정직하다. -
3) 항상 그랬듯이 경험을 즐기자.
4) 창의력을 되찾자. 쉽게 시도하고 노력을 더하자.
+) 좋아하는 일을 간추려 보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전문가가 되자.
또 나만의 다짐을 하자면,
올해의 목표는 강박적인 완벽주의를 버리는 것.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해 시작조차 꺼리지는 말 것.
시도 그 자체로 만족할 것.
서경석 씨, 귀한 강연 고맙습니다!
올해 저의 구루(Guru)이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