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넘기며
섬에서 근근이 한 달을 넘겼다.
어쩌다 보니 절로 흘러간 시간도 있다.
주로 본가에 다녀온 주말이 그랬다.
감기로 꽤 고생을 했고 이제는 비염 증세로 남아있다.
그 사이 예고 없는 거센 바람과 하루 걸러 찾아오는 먹구름이 익숙해졌다.
출근길이 쭉 오르막인 것을 자전거를 일주일이나 타고 나서야 깨달았다.
퇴근길은 어쩐지 다리가 아프지 않더라니, 당연히 출근길에 비해 마음이 고되지 않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 사실을 안 후부터는 자전거 대신 도보로 출퇴근을 한다.
시간은 두 배 정도 걸리지만,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고작 몇 분 차이다.
비가 연일 오기도 해서 자전거는 계속 비상구 빈 공간에 세워뒀다.
가장 큰 사건을 말하자면, 새 직장에 들어온 후 첫 촬영을 나갔다.
가기 전 우여곡절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첫 협업이면서 아직 배우는 단계에서 맡은 첫 업무이니
당연히 내가 적응하고 사람들이 내게 적응할 조율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면서 아이템도 상부 보고했을 때 통과될 만큼은 좋아야 하니,
시간이 넉넉한 것 같지만 다시 더 좋은 아이템을 찾아야 할 때를 대비해 서둘러 일을 진행해야 했다.
같이 일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물론 있었고,
현실적으로 섭외가 안 되거나 이야기 구성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나하나 개인 과외받듯 사수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아이템 선정, 인물 섭외, 촬영 구성, 촬영, 편집 구성을 해갔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래도 사수에게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다.
월급 받으면서 이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촬영 나가기 며칠 전부터는 긴장 상태가 지속돼서 잠을 얕게 자거나 짧게 자고 깨기를 반복했고
촬영 전날 밤엔 마음이 편치 않아 고민 고민하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에게 일 얘기라니,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아는데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난 이제 이런 거 말할 사람이 없잖아, 하면서 운을 뗐는데
내 긴 하소연 탓에 아빠는 덩달아 마음이 편치 못해
잠을 설치는 바람에 다음날 몸무게를 재보니 1.5㎏가 빠져있더란다.
그날 밤 정작 나는 다 쏟아낸 덕일까, 4시간 정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촬영날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당연히 잠이 모자라 피곤했고 부담이 감당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그냥 시간에 쫓기면서
준비물을 다시 한번 단단히 챙기고, 김밥집에 가 예약해뒀던 스태프 아침 식사도 찾아오고
여유 있는 척 스태프들과 승합차에서 일상 대화를 하면서 촬영 장소로 향했다.
현장은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선배 PD들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촬영은 아니지만 취재 목적으로 현장에 간 것은 수백 회가 된다.
그래서 어렴풋이 그럴 것 같다는 짐작은 됐다.
그럴수록 나는 더 세세하게 준비를 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볼 구성안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짰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틀어지더라도 필요한 것은 건져올 수 있도록 내 구성안을 보고 또 봤다.
다행히 수월했다.
내가 섭외한 인물이 방송에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었고
적극적이고 기분 좋은 사람이어서 연출을 하면 그만큼 나오는 게 있었다.
다녀와서는 홀가분했다.
물론 촬영이 다가 아니라 편집이라는 산이 또 남았지만
큰 탈 없이 계획한 대로 일을 마무리했고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주 방영을 앞두고 있는데 이 또한 내 손으로 마무리를 잘해보고 싶어
주말 출근을 마다하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온라인으로 장을 봐 늦은 저녁에 배달 오게 했더니
즉석 밥이나 김치, 달걀, 식용유 같은 것들을 낑낑대며 들고 올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한 번 사면 오래 먹는 것들이라 당분간은 곳간이 비지 않을 법하다.
김치 하나 생겼다고 집밥 먹는 기분이 났다.
김치볶음밥이며 김치부침개도 해 먹을 수 있게 되니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언젠가 20년 된 가스레인지를 하이라이트로 바꾸던 때,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3구짜리였는데, 자주 쓰는 한 구만 계속 쓰지 않고 골고루 돌아가면서 써야 집 안에 기운도 도는 거라고.
그리 심오하고 알쏭달쏭한 말을 진지하게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공간에 들어온 후 한 달이 훌쩍 지나 처음 인덕션을 켜 요리를 했는데
집 안 공기가 많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런 걸 집 안에 도는 사람 사는 기운이라고 하는 것 같다.
북 페어 이야기를 한 주나 미루다 이제 와 해보자면,
독립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힘을 뺀 듯한 자신만의 확고한 멋이 있고
씩씩하고 고집스러우면서도 깨어있는 사람 같은, 나의 선입견이 있다.
실로 전국에서 모인 그들을 한 데서 봤더니 대체로 그랬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려나?
받아온 북 페어 포스터는 그날 부로 돌돌 말아 상자에 담아두고
책들도 제목이 보이게 세워서 상자에 보관하고 있다.
그렇듯, 제대로 읽지도 않을 거였으면서 어떤 작가들이 어떤 활동을 해왔고 글로 기록했는지,
직접 만나 대화도 해보면서
책을 고르고 사는 나의 결정과, 책을 건네주며 그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들로
오랜 시간 독서를 게을리하며 생겼던 머리와 마음속 구멍을 채운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대리만족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해 만난 회사 동료도 회사가 아닌 바깥에서 처음 만난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반가웠고,
또 아침 일찍 출근하면 종종 인사 나누던 구성작가가
한 부스를 차지하고 혼자 씩씩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습을 보며 한편 자극도 됐다.
또 정작 현장에서는 못 봤다가 나중에 SNS에서 보고 관심이 생겨 그때 직접 볼 걸, 싶었던 외국 작가도 있고
몇 년 전 관심 있게 지켜봤던 지역 활동가도 있었다.
그들이 만드는 계간지를 구독하는 방법도 알아볼 만큼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팀이었다.
뜻밖에 그들을 마주쳐 반가웠고 인사 나누며 꼭 한 번 들르겠노라고 영혼을 실어 전했다.
또 현장 접수를 잽싸게 해 직장인으로서 창작 활동을 하는 법에 관한 강연도 들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작가에게 오랜 물음도 던졌다.
내 글이, 혹은 내 취향이 담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고수해야 할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바꿔야 할지.
작가는 내게 여러 시도를 해보라고 권해줬다.
진지한 글만 써왔는데 언젠가 웃기게 글을 썼더니 의외의 호응이 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제주에 살면서 정보를 얻는 방법에 관한 실용서, 한 편의 영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전국에 있는 퀴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집,
5·18 민주화운동 당시를 배경으로 대학가요제에 나간 이들의 이야기, 직장에서 잘린 이야기 등
소설이나 에세이를 포함해 장르 구분 없이 책을 사다 보니 일곱 권이나 사오게 됐다.
요즘은 책을 내고 싶으면 직접 원하는 종이 재질과 디자인으로 책을 만들어 출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선보일 기회도 있고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그럴싸한 포트폴리오가 된다.
어릴 때부터 언젠가는 내 책 한 권을 내는 게 꿈이었지만, 마치 그것이 지금의 '힙한' 유행에 편승하는 것 같아
당장 지금은 책을 낼 마음이 있냐고 하면 '아니오'다.
서울에서 즐겨 가던 카페가 있다.
원두도 썩 좋은 편이고 센스가 돋보이는 디자인이나 상품이 내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카페가 제주에도 생길 예정이라고 했다.
팝업 스토어가 제주에 열린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갔다가 알게 된 정보다.
좁은 바 자리에 짐을 내린 후 20분짜리 다큐 한 편을 켜놓고 보면서 스토리보드처럼 장면별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일사불란하게 커피를 내리는 한 직원에게 물었다.
"모두 서울 매장에서 오신 직원 분들이에요?"
그렇다는 직원에게, 서울 매장에 자주 갔던 이야기며 지난달 제주에 내려온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는데 나답지 않게 주절거렸다.
앞으로 제주살이를 앞두고 있다는 직원 이야기도 들었다.
배가 고파 아무 백반집에 들어갔다.
정식은 2인부터인데 나 혼자 왔다고 하니 주인은 안 되는 거 해주는 거라고 하며 한 상을 내줬다.
나 말고 다른 세 테이블은 오후 세 시에 늘어놓은 소주병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과 이야기하는 혼자 온 단골 아저씨,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서 바로 온 국제 커플,
소주 타 마시려고 편의점에서 대용량 얼음컵 사온 아주머니 둘이 바로 그 손님이었다.
생선과 삼겹이라니, 반찬도 합격.
다 비우고 만 원짜리 한 장 내고 나오니
이 아가씨는 설거지를 하고 갔네, 하는 주인 아주머니 말이 어렴풋이 등 뒤로 들렸다.
이런 백반집이라면 장부 달아놓고 매일 가서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정도 맛집이면 혼자 가도 충분히 소주를 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촬영이 끝나고는 한시름 강제로 놓고 싶어서 자축 의미로 '홈술'을 했다.
잠이 모자라서인지 가볍게 마시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주말 근무를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도심 속 작디작은 산책로이지만 풀내음 들이마시며 흙을 밟는 게 잠시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남은 맥주를 들고 나와 홀짝이면서 걸어서인지 숨이 찼다.
해가 진 지 오래라 나무숲이 우거진 길은 어두컴컴했고 잔나비의 음악을 들으며 걸으니 또 마음이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는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한 것 빼고는 말을 한마디도 뱉지 않았다.
이러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무인도에 떨어져 십 년은 살아야 할 법한 고민을 해봤다.
월요일에는 또 읽지도 않을 거면서 걸어서 40분 거리인 도서관까지 간 게 아까워 책을 세 권 빌려왔다.
한 주가 지났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일주일 후 반납해야 하는데 연장이 된다면 반납 기한을 늦춰야겠다.
당분간은 본가에 가지 않는 주에는 회사에 나가 잔업을 하게 될 듯싶다.
섬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운동도 아직 시작하지 못했는데
대신 아쉬운 딴에 지금은 간간이 자기 전 스쾃 정도만 한다.
아마 일이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5월까지도 시작하기 어려울 거다.
이렇게 한 달을 보냈으니,
두 달, 세 달은 조금 더 익숙하게 지나갈 것이다.
지금으로선 일의 비중이 삶의 대부분이고
그럴수록 하나하나 도와주는 사수이자 선배 PD에게 고맙고
내 일상을 생각해보자면 그냥 일에 치여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게 나을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