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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Apr 09. 2023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하염없이 도는 지구처럼 그리움도 끝이 없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뼈에 사무치게 보고 싶은 위기가 종종 찾아온다.

아직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

방을 서성이다가 목젖까지 먹먹함이 차올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정신이 들어 동병상련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휴대폰을 켜 영상으로 심리상담사가 전하는 위로의 말을 듣거나 나와 비슷한 사례의 글을 찾아 읽는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두 권 사놓고 용기가 없어 표지를 넘기지 못하다가

어느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큰맘 먹고 3분의 1 가량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은 나머지 숱한 밤에는 홀로 술을 마셨다.

그러니까 더 울음만 나왔다.


TV는 정신 어지럽고 음악을 틀어보자니 듣고 싶은 노래를 찾는 내가 가증스러울 정도로 사치로 느껴진다.

결국 정적 속에서 방을 서성인다.

보고 싶은 그 사람과 매일 두 시간씩 전화 통화하던 그때처럼 작은 공간을 동그라미 모양으로 돌면서. 


발 밑에 먼지가 느껴져 불쾌함이 짜증으로 변했다.

청소포를 최대한 이성적인 척하며 뽑아다가 바닥 청소를 급히 한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밖에서 문득 생각이 날 때도 많다.

그 사람이 내게 불러주던 노래가 숨이 차게 달려 가까스로 올라탄 버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때나,

회식 때 회사 선배가 들려주는 옛 연애 이야기가 꼭 그 사람과 내 이야기 같아서 아무 리액션도 할 수 없을 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감은 눈앞에 펼쳐진 검은 공간이 잠깐은 세상을 차단해 준다.



이번주 첫 야외 촬영을 앞두고 있어 일요일 해가 기울어갈수록 마음이 편치 못했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머리론 알면서도 몸이 잘 안 따라줬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 빨래를 돌려놓고, 새로 사 온 비누 받침을 바꾸고, 샤워를 했다.


머리 밑을 다 말리기도 전에 30분만 눈 붙이자 싶어 알람을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원래 낮잠을 자버릇하지 않아서 쉽게 잠들지는 않았지만 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노곤해졌다.

까무룩 잠이 얕게 들었는지 알람이 울리고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감았다 뜨니 해는 기울어있고 방은 어둑해졌다.

공허와 정적은 눈을 떠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징그러운 세상.

문득 또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원래라면 그 사람과 통화하고 있었을 텐데.


아이러니하다.

이 크지도 않은 방은 텅 빈 공기로 가득한데

내 숨은 조여 오는 것 같다.

어쩌면 이 공간이 비워지고 또 비워지다 진공 상태 같이 변해서

내가 숨이 가쁜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말투와 몸짓이 생생했는데,

걱정이 앞설 때,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초조해하는 나에게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해줬었는지 이제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일 출근하기 전 촬영과 관련해 아직 연구할 게 남았는데 집중력이 흐려져 진도가 더디다.

늘 우리가 그랬듯이, 당장 만나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여느 때처럼 길게 통화를 하고 싶다.

이런저런 주제 없는 아무 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나도 모르는 새 긴장이 풀렸으면 좋겠다.


안경에 작은 눈물방울들이 튀어 안경닦이를 가지러 가는데

그 사람이 항상 안경집에 네 등분으로 접어 다니던 안경닦이로 내 안경을 닦아줬던 게 생각이 나

마음이 또 아렸다.

깨끗해져 가는 안경알에만 집중한 시선이 좋아서

직접 닦으라던 그 사람의 퉁명스러움을 무시하고 괜히 닦아달라고 더 졸랐더랬다.


그 사이 난 다른 사람들과 웃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 틈에 업 돼서 말이 많아지기도 하고,

머리를 두 번 자르러 갔고, 새 옷을 사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기도 했다.

여러 회사에 지원서를 내고 지역 곳곳을 다니며 시험과 면접도 봤다.

그렇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덮어놓고 지낸다.


내 앞에 남은 생이 어떨지 모르겠다.

먼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장 다가올 내일이 하기 싫은 숙제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하기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많아 시뮬레이션이라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편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생에 그딴 시뮬레이션이 무슨 소용인지.

 

절망과 슬픔이 체념으로, 또 자신을 향한 분노로, 그다음엔 삐딱한 비관적 시선으로 바뀌고

그 전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지구가 도는 한 계절이 쉼 없이 바뀌듯, 나도 생이 남은 한 이 과정을 반복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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