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과 싸우는 이 밤
어제 또 그저께처럼 괴로운 오늘 밤에는
정신없는 하루를 마치고 내 공간에 들어오면
현관문을 기점으로 경계가 나뉘어 여유로운 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지만,
난 바깥세상의 정신없음이 쭉 이어져서 동시에 두세 가지씩 집안일을 해.
옷가지를 벽에 걸어놓고 세탁기에 넣을 빨래는 따로 두고
아침에 안 한 설거지를 하거나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가글을 하면서 화장실 청소나 방바닥 청소를 하기도 해.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다음날 회사에 들고 갈 티백이나 원두를 챙겨놓기도.
로션을 온몸에 바른 뒤에는
휴대폰과 안경, 스마트워치를 닦고 충전기를 꺼내와.
참, 나 지금 다니는 회사 합격하고 큰맘 먹고 스마트워치 샀어.
샤오미 시계는 화면이 고장났는데 서비스센터 전화하니
1년 내 새 제품 교환을 해줄 뿐 AS는 안 해준대.
휴대폰도 새로 샀는데 원래 쓰던 것도 지니고 다녀.
뒤도 안 돌아보고 정시 퇴근을 하는 날도
집안일을 하고 나면 여덟 시가 훌쩍 넘어.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고도 이 작은 원룸이 텅텅 비게 느껴져서
유튜브로 아침에 듣다 만 라디오를 켜서 들어.
영어로 된 소설도 매일 조금씩 읽으려는데
처음 의지와 달리 눈에 잘 안 들어와.
퇴근하고 나면 머리 쓰기가 싫은가 봐.
그러고도 고요 속에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서
원래는 이 시간에 뭘 했더라 떠올리면서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또 깨달아.
우리가 통화하던 많은 순간이 이젠 아련하게 남아있어.
언제쯤이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봐.
뭘 어떻게 해야 그날 내가 냈던 짜증을 주워 담고
일 땜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욱해서 미안하다고
멋쩍게 손 내밀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어넘기고
같이 노래 부르며 걸을 수 있을까 싶어.
내 장난스러운 화음이 틀렸다고 역정 내면서
노래를 멈추고 다시 제대로 불러보라고 해줘.
옛날 노래 좋아하는 나도 잘 모르는 90년대 노래를 가르쳐 줘.
괜찮지 않지,
괜찮을 수가 없지.
난 괜찮아질 수가 없다고.
괜찮아지지 않을 예정이야.
어디엔가 숨어서 내 앞날을 위해 기도해준다 한들
나는 살아있는 한 이대로 지낼 참이야.
괜찮아지려고 하는 게 모순이잖아.
그래도 지금 회사 다니면서 많이 밝게 행동하고
웃기도 자주 소리 내서 웃고
역겹다고 생각했던 음악 감상도 종종 하려 해.
난 왜 그렇게 복잡한 점심시간에
직장인 틈을 비집고 닭갈비를 먹으러 갔을까,
왜 곧 그만둘 거면서 바쁨을 자처했을까,
남은 휴가도 있었는데 왜 굳이 일을 하러 나갔을까,
간절했던 전화를 그따위로 받고 짜증만 잔뜩 냈을까.
왜 그 애처로운 손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붙잡아주기는커녕 등 떠밀어 보냈을까.
마스크를 내리고 웃는 입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그거 알아?
지겹던 팬데믹이 끝났고 이제 마스크 안 써도 된다.
이제 마스크 없이 웃고 이야기하면서 지하철 타자.
언제쯤이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봐.
통화하고 싶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 걱정, 고민 다 털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