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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J Aug 07. 2023

홀로 섬살이 [21주 차]

'공개'라는 온라인 영역에서

큰일이다.

행동이 더뎌서.

잡생각이 많은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대신

여러 가지 핑계로 SNS 활동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는다.


핑계라고 볼 수도 없겠다.

종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직업 특성상 새로운 사람들을 다양하게 발굴해내야 하고, 그것도 매주!

그것이 단지 작가의 영역이라고만 볼 수는 없기에 나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섬에 들어와 살면서 일하는 데만 온통 시간을 쏟았다고 합리화를 해보겠다.

5개월이 다 돼가는데 사회 활동이 전무후무했다 보니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가긴커녕 인맥의 물꼬조차 터지지 않았다.

일 년을 멈췄던 SNS에 다시 손을 댔다.


아무래도 휑한 식당보다는 굴뚝에 매일 연기 나는 집에 밥 먹으러 들어가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일상을 공유하고 생각을 정리해 남기는 게 새로운 인물들에게 다가가는 데도 나을 듯싶어서

폭풍같이 업로드를 하고 있는데, 팔자에 없는 '공개'라는 영역이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몰랐던 정보와 사람들도 하나씩 알게 되는 것 같고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이 닿은 사람들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일은 어쨌든 진도가 안 나가니 답답하고 더디다.

주말엔 몇 시간 쪼개 일을 하러 나가더라도 어쨌든 바람을 쐬고 싶었다.

암암리에 급벙개하는 걸 좋아하는 메이트를 섭외해 급히 드라이브에 나섰다.

섬에서 하는 첫 운전, 갈라지는 길이 많지 않아서 운전하긴 편하다.

무수히 많은 하, 허, 호 번호판의 렌터카를 보는 건 왠지 피로하다.


저녁에 잠시 시간을 내서 급하게 다녀온 나들이였지만 콧바람을 쐬니 그래도 기분 전환이 됐다.

SNS에도 공유를 했는데, 이번주는 그 글을 아래 풀어보려 한다.




5년 짝사랑의 정점을 찍다.

지난 유월 문을 연 네 번째 프릳츠, 제주성산점 방문.


4월 제주시, 5월 서귀포시 부영농장 팝업스토어도 다 가놓고 정작 오픈한 진짜 매장에 발걸음 하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그것도 성산점에서만 살 수 있다는 티셔츠가 있다는 걸 알고 조바심이 나고서야 급히 결정한 여정이고.


때는 2018년, 대전과 진주를 오가며 지내다 가을 무렵 직장을 따라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바깥에 나다니는 일을 해서 그런지, 남녘에 있다가 오랜만에 상경을 해서 그런지 겨울이 유독 추웠던 해로 기억한다.

하루 한 개 꼭 핫팩을 주머니 속에 지니고 다녔고 눈도 많이 맞아 발이 시렸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기자실을 별로 안 좋아했다. 기업마다 마련해놓은 기자실에는 널찍한 컴퓨터 책상이 있고 어떤 곳은 차도 마실 수 있었는데도 난 굳이 내 돈 들여가며 카페를 찾았다.

출입처 중에 양재에 있는 한 기관은 오며 가며 들르기 좋아 비교적 자주 찾았는데, 그때 취재를 마치고 노트북 펼 곳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곳이 바로 프릳츠 양재점이다.


외관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게 생겼다. 오래되고 고상한 빌라 같은데, 들어서면 할머니댁에 있을 법한 자개 장과 거울, 세상 힙한 멋진 직원들, 눈이 즐거운 핸드드립 테이블, 이미 그때부터 디저트 카페 방불케 하는 빵에 진심인 디스플레이, 한 층을 올라가면 제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큰 유리창,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프릳츠 마스코트 물개까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뽐냄이 내 영감을 간지럽히기에 충분했다.


화룡점정으로 내가 직원 한 분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기대 이상의 친절, 상냥, 호의의 고객 감동을 실천해주셔서, 그 이후로 나는 프릳츠가 점점 규모가 커지는 게 보였음에도 무한 충성충성충성하고 있다.



프릳츠가 좋은 이유는, 보장된 커피 맛과 세상 힙한 사내 문화가 물론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흔치 않은 음악을 매장에 틀어주는데 그 선곡 리스트를 공개한다거나, 바리스타 한 명 한 명을 직원이기 이전에 소중한 사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포스트를 올린다거나, 빵에 쓰이는 밀가루와 버터 등 재료에 관한 고찰을 다루기도 해서, 그 무엇도 허투루 할 것 같지 않은 이미지를 줬던 게 내 마음을 사로잡는 데 한 몫했다.


이후 프로봇짐러답게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도 서울 출장 중에 가까운 매장이 있으면 일부러 들르고 그새 어떤 새로운 문화가 생겼는지 엿보는 게 즐거웠다. 블루보틀을 국내에 처음 들여올 때도 프릳츠 대표님이 그 과정에 참여하는 걸 보며 흥미롭기도 했다.


올해 입도한 후엔 더더욱 프릳츠를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촬영 중 들른 어느 바닷가 카페에서 물개 간판을 계산대 앞에 걸어놓은 걸 보고 '여기 프릳츠 원두를 쓰는가 보다!'하고 무척 반가웠다.



그렇게 프릳츠를 그리워하던 찰나, 마침 팝업스토어 소식이 있어 방문하게 되면서 서울서 자원해 내려오신 직원 분들과 스몰 토크를 통해 누구보다 빨리(?) 제주성산점 개업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굿즈야 온오프라인으로 항상 봐오던 것들이라 빠르게 스캔한 후, 방문 주목적이었던 성산점 티셔츠를 집어 들고, 오랜만의 매장 방문이니 새로 나온 라이트한 원두 <신커피>도 홀빈으로 구매, 또 그냥 가긴 아쉬우니까 테이크아웃으로 '아우로라 자바 워시드'라는 니카라과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쥐고,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성산일출봉을 맨눈으로 잠깐 감상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한 브랜드에 이렇게 오래도록 열성이라니. 입는 옷도 아니고 쓰는 전자기기도 아니고, 어디서든 마시면 그만인 것이 커피인데 이렇게 애정하는 브랜드가 있다니.


그동안 잠재워뒀던 내 미적 감각이나 문화 향유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이 브랜드가 내가 있는 곳에 와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한테는 참 의미 있게 느껴진다.


넉 달 전 스몰 토크를 나눴던 직원 한 분은 퇴근하는 모습을 스치며 봤고 또 한 분은 근무일이 아닌지 보지 못했다.

맨 처음 내게 고객 감동을 선사해 준 그 직원 분도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언젠가 또 매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원두 이름처럼 '잘 되어가시나' 하고 안부를 물으며.



티셔츠는 곧 개시 예정.


오늘의 곡,

Yuuri - BETELGEUSE(베텔게우스)

https://www.youtube.com/watch?v=hrfnpTGUf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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