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시케 May 19. 2021

우울과자살 사이; 낙하 아닌 착지를 위해

자살 금지= 지금 살자


버티기 너무 힘들면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상담이 끝났는데, 이대로 끝내기는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왠지 이대로 보내면 다음 주에 이 분을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그럴 때 나는 어떤 말의 모서리 끝에 간신히 매달리는 심정으로 강조하곤 했다.



"오늘 상담이 끝나기 전에 약속할 게 있어요. 죽고 싶은 마음은 계속 얘기했었지만 오늘은 더 크게 들렸었어요. 그래서 이대로 마칠 수가 없어요. 약속하고 가요,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에요.


상담을 받는 동안에는, 죽으면 안돼요.

상담을 받는 동안이 아니라도, 죽으면 안돼요.

이번 주를 버티기 너무 힘들면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제가 연락을 놓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연락하세요. 문자라도 남기세요. "



그리고는 그날도 똑같은 말을 하며 문을 닫았다. 이 말보다 더 나은 말을 찾지 못해서, 잘 보낼 수 없을 일주일이 예상되더라도 항상 저 말로 상담을 마치곤 했다.



"일주일 잘 보내다 와요."





자살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 , 억제제이자 안정제



자살사고와 관련해서는 작고 사소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세밀하게 질문을 한다.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시도해본 적 있는지? 어떻게 시도를 했는지? 언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와 함께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 그 생각과 감정의 브레이크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브레이크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리고 약속을 받아낸다. 자살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런 충동이 올라온다면 바로 전화를 하기로. 이런 대화를 하는 도중에 브레이크가 더 확실히 단단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물리적인 계약서로도 명시해두었다. 날짜를 적고 사인을 받았고 내 연락처를 주었다.


이 계약서는 누군가의 자유를 구속하는 억제제인 동시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자유롭게 하는 안정제가 될 것이었다. 때로는 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와중에 이런 약속이, 이런 계약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효과가 있다. 계약서는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이런 계약서까지 내미는 마음에 그 계약을 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사소하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



지금까지 두 명의 내담자에게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중 한 명은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은 초단위로 잊을 수 없는 순간들로 구성된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마라는 것을 해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두고 막 그 커피잔을 입에 가져가려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끊기고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는데, 온 사방이 시끄러운데 가운데, 절실함이나 다급함도 없이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왔다고 태연히 이야기를 하는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에 나는 너무 놀라 튀어 오를 듯이 조용한 곳을 찾아갔다. 그렇게 간 곳이 역시 나도 옥상이었다.


커피숍 옥상에 올라가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의 물살이 급류가 되는 지점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뭔가 가장 필요한 말을 골라야 하는 순간, 그 순간 내 머리와 마음속에는 한 번에 여러 가능성들이 동시에 떠오르며 온갖 계획들이 세워졌다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겨우 통화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 꼭 전화하라고 내 연락처를 상기시켜주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누군가의 마음에 길게 남을 수도 있고 정말 어떤 중요한 순간에 내 번호는 마지막으로 생각해보는 번호일 수도 있는 것을. 그리고 내담자들이 어떤 순간이든 상담자와 맺은 약속을 중요시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왜냐하면, 그때 전화를 한 그 학생은, 상담을 마친지도 2년은 더 지난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자살 방지와 금지에 대한 얘기는 협박처럼 강하게 하기도 한다. 상담을 할 때 '된다, 안 된다'라는 틀과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자살에 대해서는 예외가 없이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안돼요. 그리고 정말 힘들어서 죽고 싶으면 그러면 꼭 전화해요. 전화 안 하면 안돼요. 꼭 해요.'


이런 대화를 하며 내담자가 여전히 망설이는 듯한다면 서약서를 작성하고 사인을 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이렇게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한 사람의 마음이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더 가까이 당겨졌음을 느끼게 된다. 정말 사소한 것으로 무너지지만 또 정말 사소한 것에서 들어 올려지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기에.




삶으로부터의 '낙하'가 아닌 삶으로의 '착지'



처음에는 그러다가 밤낮으로 전화가 오면 어쩌나, 내 경계가 무너지면 어떡하나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번 밖에 받아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그저 이 세상에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의 의지와 희망이 있음을 밝혀주며 붙잡아주는 사람이 끝까지 그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얘기하는 것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또 마지막의 마지막에 쓸 수 있는 카드로 그 통화를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고비를 지나가고 나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삶으로부터의 '낙하'가 삶으로의 '착지'로 전환되는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어지러워 모든 것을 다 놓고 싶은 순간, 우리 마음에 들려오는 어떤 소리가 있다. 그 마지막의 마지막에 듣는 소리에 따라 우리의 발걸음 방향이 갈리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 모든 사람에게는,

삶으로의 착지, 삶 속의 안착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누를 번호가 필요하다.


실제로 통화를 할 수 있는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가에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