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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y 22. 2021

감정은 흐르고 나는 나아간다.

이제 감정의 마개를 열어두세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어려울 때




내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지 말라고

눌러놓은 내면의 마개가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고

계속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마개를 열어, 외면해온 감정을 돌봐주겠다고,

나는 계속 이것을 밀린 숙제처럼 쌓아두고 살았다.

그래야 했고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좋아지지 않았고

나는 화내고 당황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그 마음이 내 마음에 닿기도 전에

강력한 감정의 마개를 가져와서 내 감정을,

나 자신을 덮어두려 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무감하게 만들려하다가,  

결국,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감정의 마개를 덮어둔다는 것은 결국,

내가 느낄 수 있는 즐거움조차

나에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떤 감정이든

그 생성과 소멸의 이유와 기능, 역할과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 속에서

나를 느끼고 나를 알아가고 나와 만나게 된다.


감정이 나 자신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 감정이 어두워질 때, 무거워질 때, 뾰족해질 때, 뜨거워질 때,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어려워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일이

때로는 너무 고통 스럽기 때문이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던 어떤 날,

상담을 마치고 한 내담자분과 이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상담 시간이 끝나고 그 분이 3층 상담실에서 1층으로 내려갔을 시간 즈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뜻밖의 비였는데 또 상당한 비였다.

나는 창문 너머로 그 분이 1층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올라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마침, 다음 상담이 없었기에 나에겐 시간이 있었다.      


차를 한잔 나눠마시며 우리는 나란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비는, 참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피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는 폭우조차도 시원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없이 차를 마시던 그분이 고개를 돌려

이런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 지겹지 않으세요?”     


“뭐가요?”     


“사람들 얘기 듣는 게요.

맨날 와서 똑같은 얘기 하잖아요. 답답하게.”     


주어가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자주 ‘사람들’을 내세워 ‘내’ 이야기를 편입시키곤 한다. 살짝 뒤에 숨어서, 하지만 여차하면 앞으로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마음으로.     



“00씨가 똑같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답답해요?”     



“...네 나도 이런 감정 속에서만 멤돌고 있는 내가 지겨운데 듣는 사람은 얼마나 지겨울까 싶었어요, 자기 일도 아니고, 좋은 얘기도 아니고... 또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좋은 얘기도 한 번만 하라고요,  많이 들으면 지겨우니까.”    

 

여러번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힘든 얘기 듣는 것, 지겹지 않으냐, 어렵지 않으냐. 나는 언제나 조금씩 다르게 얘기했지만 결국 하게 되는 이야기는 똑같은 얘기였던 것 같았다. 나는 또 그 순간 느끼는 대로 답을 했다.    


  

“일단.. 한 마디로 대답하자면 지겹지 않습니다.

이건 제 일이기도 한데요, 또 제 일이 아니기도 해서 지겹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지도 몰라요. 좋은 얘기만 하시는 게 아닌데 그 속에서 좋은 지점을 계속 발견하게도 되니까 오히려 지겹지 않고요,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매일 새롭게 다시 볼 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는 게 원래 다 지겨운 거 아닐까요. 모든 것이 반복의 변주일 수도 있고. 우리가 뭐 달라지려고 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 사실은 더 많지 않을까요? 매일 어떻게 달라지고 새로워지겠어요.      


저는 우리가 꼭 달라져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상담 받는다고 꼭 많은 것이 상승하고 좋아지고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냥 내 안에 담고 있던 얘기를 같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걸로 됬다고도 전 생각하기도 해요.”     


“제가...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어쩌면 내가 지겨운 것도, 내 감정이 지겨운 것도, ‘나아져야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 생각이 이 모든 것을 지겨운 것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나아지는 건, 쉽지 않기도 하지만요, 생각해보면 어떤 마음에 머물러만 있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그동안 마음에 고인 응축된 감정을 하나하나 느껴보는 데만도 얼마나 많은 안간힘이 필요한데요.


oo씨는 지금, 충분히 잘 머물고 있어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온전히 다 느껴본 후에야 고통에서 진심으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나를 스쳐가지 않도록 내가 나를 느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것은 모두에게 모든 순간에 중요하다.            

무작정 싫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여러 감정들이 가닥가닥 얽혀있다.


이 모든 것을 알아가는 과정 동안 ‘지겹지 않게’ 이 모든 엉킨 마음을 한 번에 끊어낼 엑스칼리버는 따로 없다. 우리는 그저 그날 하루치의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느끼고 나누고 흘리는 것, 그러면서 계속 가는 것, 그것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려면 막아 두려하는 감정의 마개를 일단은 풀어놓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 슬픔을 허락하고 그런만큼 즐거움 역시 허락 해야 한다. 또 슬퍼지면 슬퍼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감정이 아무리 깊고 무겁고 뜨거워도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 감정은 흐르고 나는 나아간다.        


   

삶의 어떤 시기에 우리는 감정의 강둑이 열리는 경험을 한다. 때론 아득하고 또 때론 사경을 헤메는 듯하나, 헤매는 마음, 아픈 마음, 상실의 마음을 그런 마음의 여러 가닥가닥 겹겹을 앓으며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슬프다면, 지겹다면, 힘겹다면, 그래도 그냥 그 감정 그대로 충분히 나를 느껴보길 바란다. 또 그만큼 결국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과 전율을 느끼며, 나 자신을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밑으로도 느끼며, 그렇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내가 나를 스쳐가지 않고, 매 순간 나로 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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