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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y 26. 2021

[심리치료] 회사를그만둘수 있는 힘

더 중요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접수 면접 시간이었다.



예정된 상담시간을 이십 분을 넘기고, 세 번의 부재중 전화 후에 A 씨가 왔다. 에코백을 한 팔로 껴안고 자세를 낮춘 채 처음에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처음에는 말을 하기도 힘들어했었는데 막상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자 자신의 이야기를 몰입해서 했다.




A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삼 개월 정도 구직 생활을 하다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있다가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고 무기력해지고 자괴감이 커지기에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더니 친구가 대신 상담 신청을 해주었다고 했다.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그녀가 한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요, 만나는 상사들이나 동료들이 가진 모순이나 틈 결함이 보이면 참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관계가 힘들었지요. 저는 계속 이 질문만 계속했던 것 같아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왜? 왜? ’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결함들에 끌려다녔다는 거였어요.



두 번째 들어간 회사가 나름 그 분야에서는 이름도 있고 대우도 괜찮은 회사였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회사 선배가 자꾸만 저에게 추파를 던져요. 저는 또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하면서도 흔들렸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제 손목을 잡기에 휙 뿌리치긴 했는데 그때부터 생각이 계속 나는 거예요. 제가 저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럴 힘이 도저히 저에게 없는 것 같아서 또 도망쳐 나왔지요.



저는 그럴 때 항상 ‘모 아니면 도’ 였어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뒀지요. 그만두고 나니 직장도 잃고 돈도 잃고 신뢰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어요.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니까 마음도 더 불안해지고 만 거죠. 아, 내가 또 나를 지키지도 못하고 파괴하는 방식으로 도망쳤구나. 다들 왜 이러는 거지. 난 왜 이러는 거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지나 있었다.

나는 그날 들은 이야기를 정리를 하기로 했다.






“A 씨의 말을 따라가면서 모든 말들을 다 받아쓰지는 못해요. 저에게 들리는 말, 지금 이 순간 저에게 들리는 말 중에서 A 씨의 마음을 살펴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말을 쓰게 되기도 하는데요, 제가 오늘 들은 말들을 세 문장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1. 나를 지킬 힘이 나에게 없다.


2. 내 안정성을 내가 파괴했다.


3. 나는 도망쳤다.



어때요? A 씨가 한 말이 맞나요?"



"맞아요."


괜찮다면 A 씨가 한 말을 제가 다시 고쳐쓰기를 해봐도 될까요?


우리가 앞으로 상담을 계속하게 된다면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게 될 것 같은데,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저에겐 이렇게 들려요





1. 나를 지킬 힘이 없다



=> 힘이 없다고 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주기에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내가 지키고 싶었던 뭔가가 있었던 것이에요. 그러니 결국 내가 나를 지키는 힘을 냈던 이고요.


힘이라는 것이 꼭 겉으로 드러나는 어마어마하고 분명한 것만 힘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들의 배후에 우리의 힘이 있고요, 그냥 아침에 일어난 밥 먹고 세수하고 슬퍼하는 데에도 많은 힘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도 있고 힘날 때도 있는 것이 삶이라면, 지금은 힘들 때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고요,

힘을 내기 위해 상담실에 온 거라고 생각해요.



2. 내 안정성을 내가 파괴했다.


=> 안정성은 우리가 살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물리적 심리적 판이라고 생각해요.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요. 때로는 과거의 어떤 경험 때문에 그 안정성을 구하는 방식이 조금씩 경직되어있고 잘못될 때도 있긴 해요. 하지만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내가 나를 일부러 파괴하고 싶어서 하는 선택은 없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중요한 안정성 구축의 방법이죠. 싸울 힘이 없을 때 어떻게 싸워하는 지를 모를 때,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때까지 내 전투력을 키우고 싶을 때 우리는 최대한 잘 도망쳐야 합니다. 도망쳐야 할 땐 도망쳐 줘야지요.


아마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더 안 좋아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테니, 그 상황을 피했을 텐데, 지나고 보니 그 판단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의 그 마음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닐 거예요. 이 전에 ‘도망쳐’라고 소리치는 마음의 어떤 경험을 하셨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도망친다’라는 하나의 선택지 밖에 나에게 주어진 것 같을지 몰라요.


3. 나는 도망쳤다.



=> 이미 도망치셨다면, 이 선택이 지금에 와서는 최선이 아니었던 것으로 느껴지시더라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최선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이어 붙이기를 해야 해요.


도망쳐와서 도달한 지점이 여기, 상담실이에요. 잘 오셨어요. 우리 앞으로는 이어 붙이기를 해봅시다. 그러면 앞으로는 도망치기만이 아니라 싸울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기다리시기에 상담실에 왔다는 생각을 해요.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힘을 냈기에

다시 또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었던 거예요.



전투력을 키워봅시다.

A님의 전투력을 키우기 위해 저의 전투력도 보탤게요.







(덧. 제가 쓰는 모든 글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한 명의 이야기로 전달하기 쉽게 각색을 한 이야기랍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이 작성하시는 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 '심리치료 과정을 제대로,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을 '비밀보장의 원칙'이라는 깔때기와 프리즘을 통과시킨 고민과 성찰 끝에 성립한답니다. 앞으로 노트에 적어두고 다 나누지 못했던 심리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날 때마다 정리해서 올려두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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