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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y 22. 2021

내가 괴물이 아님을 알게해 주어서

우리는 서로를 살린다


외출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신발을 신으려고 현관에 앉았는데 아빠가 보고 계시던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가 서둘러 앞으로 향해 가던 나를 멈칫하게 했다. 약속에 늦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아빠 옆에 앉았다. 아빠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았다.


제목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6.25 50주년 특별 기획>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야기였다.


어떤 이야기는 우리 생을 전후로 바꾸는 하나의 분기점이 된다. 그날 그렇게 만난 이야기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고, 내 삶이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주었다.


그때 그 순간 나에게 온 생각이  그 후 내 삶과 일상에 흐르는 전주곡이 되었다. 내 삶은 이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로 나뉘었고 나는 이 이야기에 그대로 관통당했다.






이야기는 한국 전쟁 당시, 한국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과 난리통에 부모님을 잃은 전쟁고아, 그 사이에 흐르는 마음을 비춰주었다. 그 당시 전쟁고아였던 한 사람의 이야기와 소망을 따라갔다.


그는 죽기 전에 꼭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고아였던 자신을 거두어 준 미군 병사들이라고 했다.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임시 고아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안아준 군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목놓아 부를 유일한 대상들을 상실한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었던 사람들, 부를 사람, 안길 사람이 없던 아이들의 삶이 지속되도록, 불러주고 안아준 사람들,


그 사람들 덕분에 아이들은 삶을 살아낼 수 있었고 지난 50년 내내 그 따스한 기억의 힘으로 삶의 힘겨움을 이길 수 있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한때 아이였던 한분은 취재진과 함께 미국으로 간다. 수소문 끝에 그들은 그때 임시 고아원을 세운 참전 군인 중 한 분을 찾게 된다.


그 만남 속에서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미국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신다. 파병 당시 그분도 겨우 스무 살을 겨우 넘긴 나이다. 그는 '고맙다', '생명의 은인이시다', 는 표현 앞에서 무너질 듯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맙다니요, 고맙다고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접니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안아주며 저는,

제가 사람을 죽이러 온 괴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사람임을 잊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살린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저를 살린 것이 지요."







전쟁의 참혹함

세상사의 냉정함

절망과 상처와 무기력

그 어떤 삶의 어둠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을 그렇게 만났다.



우리가 안아주는 사람,

우리가 안기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대체 누구인지

 확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살리며 살게 되고

안아주며 안기게 되고

가르치며 배우게 되고

도와주며 도움을 받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살린다.





@ 이 글은 <좋은 생각>의 요청을 받아 쓰게 된 원고의 초고였습니다.

좋은 생각 5월호에서 편집본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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