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울타리가 무너졌을 때
나에게 엄청난 일이 생겼는데
세상은 어떻게 그대로일 수 있지?
라인씨는 자신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을 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침묵해야 했고 침묵 할 수 밖에 없었고, 훼손당한 채로 일상에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던 대로’, 가 되지 않았다.
그날도 가던 곳에 가고, 해야하는 일을 하는 도중,
그녀는 어떤 생각에 걸려 분노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세상은 그대로일 수가 있지?’
그녀는 바로 글을 썼다. 사진도 올렸다. 관심이 필요했는데 어떤 식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지 몰랐다. 그 때 그녀에게는 ‘알려야겠다.’라는 단 하나의 목표 의식 밖에 없었다. 그 목표의식이 자신을 사로잡았기에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어떤 파급이 자신에게 생길지 알지 못했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고 그녀를 돌려보냈던 경찰들이 다시 찾아왔고,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흘려야 했던 마음의 피가 많았다. 기자들은 그녀가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알리기도 했고, 경찰들은 과연 가해자를 잡겠다는 것인지, 그들의 능력이 아닌 한계를 더 크게 드러내는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가능성이 아닌 한계를 먼저 이야기하는 공권력에 그녀는 무력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메일함과 쪽지함, 댓글창에 도달하는 메시지들은 처음에는 그녀에게 안도감을 주었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간의 안도가 되는 동시에 날카로운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했어야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반복해서 들려오는 그 한복판에서 그녀는 길을 잃는 기분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 안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가정과 단정의 말들에, 그 호기심 섞인 호의와, 반복과 상투의 말들에, 그녀는 지치고 말았고 결국 세상과 통하는 통로가 된다고 생각했던 SNS 계정도 닫기로 했다.
너 지킬 사람은
결국 너 밖에 없어.
그 때 그녀에게 가장 무서웠던 이야기, 하지만 또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기에 결국 힘이 되기도 했던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비슷한 일을 몇 년 전에 경험했다고 연락해온 다른 피해자(이자 생존자)의 비장한 조언이었다.
“근데 너 이 얘기가 널 계속 따라다닐 수도 있어. 수업에 들어갔는데 PPT에 너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어떤 사례의 예시로 등장할 수도 있는 거야. 일단 말을 하기로 한은, 그 모든 일에 너 마음이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지금은 그 누구의 말도 다 믿지는 마. 널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완전히 믿어서는 안되. 널 도와주는 사람도 다 한계가 있어. 다 자기가 하는 일의 한 축을 잡고 있을 뿐이니까. 아니, 잡고 있는 척만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널 지켜야 할 사람은 끝끝내 너야.”
그녀는 이 모든 이야기의 소용돌이와 어지러움 속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 역시도 상담자에 불과한 한 사람, 상담이라는 한 축을 잡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완전히 다 믿어서도, 다 기댈 수도 없는 사람 중의 하나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심리상담이 해줄 수 있는 일;
나를 지키는 동시에 나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인권 활동가를 통해서 들었고, 또 그 활동가 분을 통해 그녀에게 글을 보냈었다. 심리적인 상처의 속성에 대한 글이 그녀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다른 사정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한 것이었다. 그녀가 상담을 받고 있다고 전해 들었고 당연히 계속 받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담 역시 일회성에 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메모를 보냈었다.
‘상담을 받고 싶으면, 그 사건을 소화하는 대화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정말로 찾아올 수 있을지는 몰랐다. 왜냐하면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와야 하는 물리적 거리감이 존재했고,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가 집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만남은 이런 심리적 압도감과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해야 가능한 만남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매 주마다 꼬박꼬박 상담실에 왔다. 온 것 만으로 의미가 있었지만 또 그렇게 힘겹게 왔으니 어떻게든 내가 그녀와 함께 세울 수 있는 울타리의 한 축만은 제대로 세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들었다.
그녀에게 훼손 된 것도 울타리 감각이었고, 그녀에게 필요한 것도 울타리 감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훼손되기도 했고 필요하기도 한 그 울타리에 대해, 울타리를 구축하는 물리적 장치들과 심리적 장치들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차라리 다 묻어 두었더라면, 그냥 일상으로 돌아간 척 하고 일상에서 하던 일을 반복하며 살았다면, 그렇게 잊혀지고 잊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
“이야기를 하기로 한 것을 후회하나요?”
“모르겠어요. 제가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 지 모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알았더라면 조금 더 똑똑하게 저를 지키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해요. 저는 그 때 너무 허술했고 그래서 내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고 여기저기 끌려다닌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후회하냐고 물으신다면, 이야기를 한 것 그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위험이 있는 지, 처음부터 의논할 사람이 있었다면, 예를 들어 선생님과 처음부터 의논하면서 한 단계씩 그 파급을 예상하고 조금씩 감당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 부분이 아쉬운 것 같고요.
또 제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야기가 거기서 끝난 게 되잖아요. 저는 보호받지 못한 것이고 그럼에도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로 남은 삶을 묻어두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작지만 또렷한 소리였다.
“아니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말하길 잘 한 것 같아요.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얘기를 들을 수 있었잖아요.
‘잘했어. 너 잘한거야.
넌 너를 보호할 힘이 있는 거야.
넌 보호받아 마땅한, 소중한 사람이야.’
제가 들어야 했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하는 말이 무엇인지 듣게 된 거잖아요.
나머지는..... 소음이죠.
짜증나는 소음일 뿐이죠.”
그녀는 소음과 소리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비본질 속에서 본질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기로 한 결정의 개인적인 울타리 감각 뿐 아니라 가족의 울타리 사회적 울타리 감각 역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사람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수만의 고통을 증거한다
트라우마의 복구 과정에 있어서는 세 단계의 과정이 있다. 트라우마 이전, 트라우마, 그리고 트라우마 이후이다. 트라우마가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한 사람의 트라우마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눠보며 크게 세 개의 질문을 하게 된다.
트라우마 이전(pre trauma) “그 사건 이전의 울타리가 얼마나 튼튼했나요?”
트라우마 중(peri trauma) “그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울타리가 얼마나 튼튼했나요?”
트라우마 이후(post trauma)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울타리를 다시 세울 수 있었나요?”
이 모든 질문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상담실에서 내가 그녀와 할 수 있는 것은 ‘트라우마 이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유에서든 울타리가 훼손 되었다면 우리는 그 울타리를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건 이전부터 울타리 자체가 본래 전무 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울타리가 그곳에 없었고 그러기에 그 곳에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훼손 되었든 애초부터 그것이 거기에 없었든, 울타리를 같이 다시 세우는 것이 상담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보호 장치를 통해 해야하는 일이었다.
‘여기,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 보호를 받지 못했다. 여기, 이 지점이 바로 우리가 다시 제대로 된 울타리를 세워야 하는 지점이다.
그(녀)가 지금 앓고 있는 통증과 증상을 우리는 자세히 들어야 한다. 듣고 받아적고 모두 함께 논의해서 다시는 같은 아픔을 겪어야 하는 사람이 없도록, 지금의 통증과 증상이 빨리 아물 수 있도록, 가능한 힘을 몰아주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여기에 울타리를 다시 제대로 세워야 한다. 태풍이 몰아쳐도 무너질 수 없는 단단한 울타리를.
한사람의 아픔이 한 사람의 아픔으로 끝나지 않도록!’
한 사람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수백만의 고통이 있음을 증거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은 그 사회가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한다. 통증과 고통에 대한 제대로된 해석을 하는 것, 하나의 이야기에서 여럿의 이야기를 만지게 되는 것이 상담이고 트라우마 복구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혈은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
우리는 이미 울타리 안에 있다
나는 이미 그녀가 알고 있는 것, 알고 있기에 행한 것에 대해서 한번 더 짚어주기로 했다.
“라인씨가 한 일은요, 어떤 나쁜 일을 앞으로 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브레이크’가 되기도 해요. ‘너 그렇게 하면 신고 당할 수 있어. 너가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아주 집요하게 너가 할 일을 물고 늘어질 사람이 있거든. 그러니까 조심해’라고 경고 할 수 있고요,
또 어떤 나쁜 일을 이미 한 사람에게는 이런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너, 너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하지만 그건 잘못이었어. 제대로 반성하거나 적어도 긴장할 필요는 있을 걸’을 이야기해주는 메시지요.
이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이미 출혈은 있었어요. 하지만 지혈은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지혈을 하려다가, 다른 쪽 출혈도 감당해야 하는, 욕나오는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그래도 지혈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나에게 어떤 엄청난 일이 생겼는데, 그걸 나 혼자만 삼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요. ‘울타리가 없다, 너무 허술하다’에서 끝나지 않도록
‘울타리를 다시 세우자’
'제대로 세우자‘는 이야기를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중이에요.
얘기하기가 힘들면, 얘기하다가 지쳤다면,
이제는 그만해도 괜찮아요.
이미 한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더는 혼자라는 생각, 얘기해봤자다,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미, 울타리 안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