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헤어지면 아프니까 조금은 에둘러 가고 싶은 진심
심리 키워드-합리화(rationalization)
합리화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때에 우리가 그 상황을 잘 견디기 위해 쓰는 마음의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 중의 하나이다. 그중 합리화는 머리를 굴려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을 조금 비틀고 왜곡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래서 그런 거야.’, 혹은 ‘안 그래서 이런 거야.’라는 설명 방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별이나 상실과 같이 우리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내는 시기에는 어느 정도의 합리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방어를 너무 하다 보면 비틀리고 왜곡된 설명방식이 진짜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일도 나타날 수 있으니 합리화도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
찬 사람과 차인 사람, 그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랑과 연애의 끝자락에서 이별을 맞이할 때 우리는 누가 누구를 ‘찼’으며 누가 누구에게 ‘차였다’, 혹은 누가 누구를 ‘버렸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그런 표현은 사랑과 연애가 품고 있는 다정하고 따스한 마음과 전혀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잔인하기만 하다. 어쩌면 이런 표현은 헤어짐이 그만큼 아프고 힘든 사건이라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어떤 표현은 우리를 그런 표현에 고정시켜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살면서 매일같이 마주하게 되는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되 어느 누구에게도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 이 글에서는 이런 표현을 해보려고 한다. 찬 사람과 차인 사람이라기보다는 [먼저 헤어지고 싶었던 사람과 나중에 헤어지기로 결심한 사람]이라고.
먼저 헤어지고 싶어 했던 그 사람 -불만과 불편한 진실
A가 B와 헤어진 것은 삼 개월 전의 일이다. 처음부터 A는 자신이 B를 마음 깊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A는 B를 만나는 내내 속으로 여러 번 고민하고 스스로 상기시켜야만 했다고 했다. 자신이 왜 B를 만나고, B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며,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힘든 시간을 어느 정도 견디고 난 이후 A는 이내 알게 되었다. 그 둘의 만남이 어딘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그 만남을 떠받들고 있는 것은 B의 사랑과 헌신이었고, A는 갸우뚱 기울어진 그들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마음속에 B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진실이었지만 A는 그 진실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진실을 피하며 B에게 헛된 환상과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 늦기 전에 A는 B에게 진실을 말하고 돌아서야 했다.
나중에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 사람 -대상 상실과 꺾인 자존심
A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B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이 A를 사랑하는 그만큼 A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한 적이 없으며 A를 만나는 동안 A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A의 결별선언은 B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B의 가슴은 뻥 뚫려버렸고, B는 자존심에 진한 상처를 입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는 것, 함께 하고픈 누군가가 나를 거절한다는 것, 그것은 쉽고 쿨하게 ‘그러자.’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었다.
먼저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 사람 -일말의 죄책감
“B는 여전히 많이 힘든가 봐. 친구들하고 술 마시다 갑자기 뛰쳐나가더래.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다른 친구로부터 건네 들은 B의 소식에 A는 마음 한 구석이 갑자기 큰 짐이 얹힌 것처럼 묵직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헤어지고 싶었으면서도 차마 더 일찍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한 건, 여전히 B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어서 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B가 받을 상처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A는 B에게 헤어지자고 했다가도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B를 만나기도 했었다. 그게 다 마음이 쉽게 약해진 탓이었지만 A는 또다시 마음을 다른 방향으로 다잡음으로써 B에게 결국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헤어지고 간간히 듣게 되는 B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A는 뭐라 이름 붙이기 힘든 어떤 감정에 시달린다. 이건 죄책감인지, 미안함인지, 아쉬움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자신을 향한 감정인지, B를 향한 감정인지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먼저 헤어지자고 했으면서도 어떤 감정은 남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 사람 -공존 불가능한 양가감정과 극단적 평가
A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알고 난 뒤 B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심정이다. 일순간에는 그리운 마음에 강렬하게 사로잡혀서 진짜 여기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가도, 또 한순간에는 자신을 버린 A에 대한 미움이 자신을 그 자리에 버티고 서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화기를 볼 때면 기다리는 마음과 밀쳐내고 싶은 마음, 연락하고 싶은 마음과 연락이 온다 해도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싸우고, 자신을 시간의 어느 층, 마음의 어느 지점에 붙들어 매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모든 것이 붕붕 떠있고 강렬한 미움과 사랑의 양가감정이 자신을 양극단에서 잡아당기는 것만 같다. 갑자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A를 상기시키고 A에 대한 껄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자극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때에는 친구의 위로와 선배의 조언도 마음에 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린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하는 거다. 단지 A가 B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말이다.
먼저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 사람 -진실과 합리화
B가 상실의 시간을 견뎌내듯, A 역시 상실의 시간을 지난다. 어쩌면 A는 B만큼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그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A 역시 B를 잃었으며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A는 A 나름대로 관계를 갈무리하며 B와의 관계가 품고 있던 객관적 진실과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다 더 잘 알게 된다.
자신이 왜 흔들렸으며,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머물러있었던가, 왜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가, 그러면서 A는 이제 진실을 가리기 위한 합리화가 아니라 진실을 보이기 위한 합리화를 한다. ‘그랬으므로, 떠나는 것이 옳았다고.’
나중에 헤어지기를 결심한 그 사람 -세세하게 되짚어보기
시리도록 투명한 소주잔을 기울이며 B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움켜쥔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기억의 저장고에 들어가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그들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지점에 오게 되었던가.
이렇게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따져보며 B는 알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B의 친구들은 이렇게 세세하게 되짚어보는 게 B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B를 말린다. ‘돌아보면 볼수록 미련만 남고 집착만 하게 돼. 그만하렴.’ 그럼에도 그는 한사코 과거의 숲에서 미아처럼 헤매며 답을 찾고 싶어 한다.
A와의 이별은 B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그는 그 위기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고, 이 위기에 대한 통제력을 얻고 싶다. 그는 절박하지만 절박한 그만큼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들이 이별을 한 것은 그가 어느 시점에 어떤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한쪽이 먼저 헤어지고 싶어 하고, 다른 한쪽이 나중에서야 헤어지기를 결심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 후 A와 B는 C와 D를 만났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A였든 B였든, 먼저 헤어지기로 결심했든 나중에 헤어지기로 결심했든, 깨진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가슴에 아픔을 남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때로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아픔을 표현하고 지워나가고 싶어 한다. 그 아픔을 철저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든, 그 아픔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있는 중이든 우리는 모두 이별이 아픈 것을 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아픔을 딛고 또다시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의 기쁨이 이별의 아픔보다 더 좋은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