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 과제,이제는 정말 마침표가 필요한 시간
심리 키워드-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
살다 보면 객관적으로는 모든 상황이 끝났고 겉으로는 이를 인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전히 그 안에 머물게 되는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끝이 났지만 끝이 난 것이 아닌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사건이나 마음 가운데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우리에게 미련과 회한의 감정을 남기는 것을 미해결 과제라 부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단호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끝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별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이제는 정말 마침표가 필요할 시기
사랑에 대한 고민을 보다 보면 이미 헤어졌고, 이제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헤어지기가 어려워 미련을 품게 된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게 된다. 최근에 어떤 사람의 상담 메일을 받고 난 뒤 나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여러 가지 말 부호가 필요한 것 같아요. 말줄임표가 필요할 때, 물음표가 필요할 때, 느낌표가 필요할 때, 쉼표가 필요할 때.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마침표가 필요할 때도 있지요. 마침표는 다른 어떤 말 부호보다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찍어야 하지만 그래도 꼭 필요해요. 그래야 서로 더 단단히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제대로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거든요.”
그처럼 사랑 안에서 차마 마침표를 찍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그 고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하나는 그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 그만 우리 관계의 마침표를 찍자고 말하기가 어려운 경우, 그리고 하나는 관계가 힘들어져 마침표를 찍자고 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계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시작점도 없이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마침표를 못 찍는 세 사람을 도화지에 그린다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관계의 시작점에서 머뭇거리는 한 사람, 관계의 중간지점에서 뒤돌아보고 있는 한 사람, 관계의 끝자락에서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 말이다.
관계의 시작점에서 머뭇거리다.
“....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은 것 같고... 지금 만난다고 해도 잘 될 수 있을지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냥 포기해야지.. 싶으면서도 자꾸만.. 생각하게 돼요.”
이런 고민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실패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고, 관계에 대한 확신도 없는 반면, 해봤자 잘 안될 거라는 신념은 견고한 누군가. 이럴 때 사랑은 내가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내가 관계 대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그리는 세계관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투영시켜주는 거울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자꾸만 설득하게 된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을 가져도 된다고, 관계는 본래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후에 사라진다 해도 해볼 만한 것이며, 세상은 그렇게 실패만 안기는 두려운 공간은 아닐 거라고.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쉬움과 미련, 두려움과 무기력감 때문에 시작하기도 전에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거절당하고 실패할 수 있어도 우리는 꼭 사랑에 부딪쳐봐야 한다. 거절과 실패의 가능성도 있지만 거기서 얻는 점은 분명히 있으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당당히 일으켜 세우는 사랑을 하게 될 테니까.
관계의 한 복판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
“.....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사람은 여전히 저를 많이 좋아해 주지만, 저는 그렇게 노력해도 안 돼요. 헤어지자고 했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만났다가.. 또 헤어지자고 했다가.. 자꾸만 상처를 주게 되네요.. 끝맺음이 너무 어려워요...”
이런 말을 들으며 나는 예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었다. 흔들리지 않고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잔인한] 마음을 품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그때도 그게 무슨 의미인 줄 몰랐고, 지금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건 아마도 사랑을 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 사람이 말했던 [잔인한] 마음은 한 사람만을 사랑할 때에도 필요하지만 한 사람과 끝맺음을 할 때에도 꼭 필요한 마음인 것 같다. 내 마음을 분명히 직시하고 이제 그만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단호하고 결단력 있게 그 마음을 상대에게 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 순간의 미련과 외로움 그리고 불안을 견디기 위해 마침표를 찍어야 할 그 자리에 서서 뒤만 돌아보게 된다면, 그건 나나 상대의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상대가 아플까 봐 마음이 약해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런 우유부단함은 과연 상대의 마음을 다독여주기 위함인가, 아니면 진실을 직면하기 힘들어하는 내 마음의 합리화인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이 남긴 결과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마음은 다수결도 아니고 민주적이지도 않다. 사랑은 다만 내 마음을 투영시켜주는 거울이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고도 단호하게, 따뜻하고도 잔인하게, 우리 마음을 실행해야 한다.
관계의 끝자락에서 마침표를 찍고도 못 떠나다
“...... 많이 힘들어서 그만 헤어지자고 해버렸어요. 하지만 그게 제 본심은 아니었기에 지금은 많이 후회가 되네요. 연락하고 싶어 전화기를 들지만, 그 사람이 이미 마음을 정리해 버렸을까 봐 두려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 자신이 왜 그랬을까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시점에 어떤 행위를 해버리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며 너무 힘들어하지는 말자.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고, 어떤 실수나 잘못 속에는 아직 부족하고 성장시켜야 할 우리의 모습이 들어있는 것이니. 하지만 이때에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안에 우리의 실수보다 더 큰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점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일이 어그러질 때, 우리는 너무 자주 그 실수가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여기며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정정할 수 있는 실수가 더 많으며, 실수는 우리의 수많은 모습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워나갈 수 있다면, 그 실수의 크기는 점점 미미해질 뿐 아니라, 후에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본래는 ‘너를 사랑하는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헤어지자’는 말로 잘못된 마침표를 찍어버렸다면, 그저 자책만 하는 것이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서 그것이 잘못된 마침표였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자책만 하고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도 되돌릴 수 없고 어떤 것도 배울 수가 없다.
일단은 내가 왜 그런, 마음과 어울리지 않은 말을 해버렸던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심이 아닌 실수였고 마침표를 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더 늦기 전에 상대에게 전해야 한다. 어쩌면 그 사람은 이미 그 관계의 마침표를 찍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주위를 맴돌며 서성이고 아파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실수를 복구할 수 있었든 없었든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가를 살펴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실수가 보여주는 우리 모습을 분명히 알아가며 사랑 안에서 점점 더 성장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