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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y 20. 2021

너를 사랑해서 슬펐다

나에게 필요한, 기꺼운 슬픔이었다


“그분은요,

일단 기묘했어요.

존재 자체가 과장법으로 가득 차 있었달까요.


표정도 과장, 몸짓도 과장, 목소리도 과장.     

이미 25년 전에 뵌 게 마지막인데요

어쩌면 지금쯤 이 세상을 떠나셨을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모든 과장법 때문에 존재감이 어마어마 하셨네요.

지금도 제 앞에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수업을 하고 계실 것만 같으니 말이에요.  

  

아, 그 분은 제 영어 선생님이셨어요.

첫 영어선생님이셨죠.

마지막 영어 선생님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 분이 제게 남긴 충격이 어마어마 했거든요.

어떤 사람은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삶에

오래 가는 파장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남기기도 하잖아요.    

 

그 분은 과장법으로 뒤덮여있었어요.

다른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모든 이야기에 강세를 주듯

바라보고 말씀하셨죠.

또 옷차림도 과장이었지요.


몸집이 아주 작은 여자분이셨는데요, 등도 살짝 굽기 시작했고

흰머리도 많으셨고 중학생인 우리와 키도 비슷하셨죠.     

그 작은 몸에 커다란 옷을 걸치고 다니셨어요.

그리고 신고 다니시는 구두 역시 커서 걸을 때마다

따각따각 소리가 났지요.


결코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차림에, 표정에, 목소리에,

한 사람 안에서 톤 다운된게 하나도 없는 그런 분이셨지요.

보기만해도 불협화음이 느껴지지요.     


영어 시간은 숨 가쁜 과장의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은 목소리의 높낮이를 크게 다르게 하지 않은 채로

우리가 영어 발음을 익힐 수 있게

아주 원시적인 방식과 발음으로 알파벳을 짚어주셨어요.


책받침 뒤에 적혀 있는 대문자 소문자를 알았던게

그게 전부였던 저는

영어 시간이 되면 괜히 초조해졌는데요

전 그 때 키도 작아서 맨 앞줄에 있었단 말이에요.



다다다다다 강약이 없는 사람 만나보신적 있으세요?     

쉴새없이 몰아치기만 하는 그런 사람말이에요.

지인짜, 기묘해요.

저도 큰 교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그 안엔 어떤 ‘감안’이 있었던 거였지요.

제가 그 교복에 맞춰 자라게 될 거라는 감안말이에요.   

  

그런데 왜 선생님이 저렇게 큰 옷, 큰 구두, 큰 소리, 큰 눈으로만

크게 크게 확성기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두 수군거리며 어리둥절한 채로 영어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런 영어 수업을 1년 정도 하고 선생님은 다음 해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지요.     

또 뭔가 마음이 이상했지요.

선생님을 좋아한 것도 싫어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큰 목소리로 그리워할 것도 아니었는데

영어 시간을 이제는 견디지 않아도 되긴 했지만

어떤 허전함과 궁금증이 남았어요.


왜?가 풀리지 않은, 우리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작은 감상이랄까요.     

하지만 삶의 많은 일이 그러하듯

잊었죠. 잊혀졌죠.     

새로운 영어 선생님은 과장법은 없지만

또 그분 나름의 평범성과 독특성을 조합으로

이루어진 분이셨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특성이 많은 분이셨죠.     

우리는 이제 알파벳이 아닌 더 어려운 단어의 조합을 외우고

써볼 수도 있게되었고 문장에서 문단도 해석해낼 줄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시험도 매달 보게 되었지요.    

 

중학교 시절 내내

저는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지도 않았고

꾸준히 키가 자랐어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의 범주에 속해있었지만

내면의 독특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허둥대고 있었던 그런 아이였는데요,

어쩐지 중학교 3학년을 마칠 때까지 그 과장법 선생님을

잊지 못했어요.

이상한 그리움으로 제 안에 남아있었지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었던 어느 날,

선생님들 모임에 다녀오신 아빠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빠도 선생님이셨거든요.

너 일학년때 영어 선생님 기억나냐고 물으셨어요.     

그 분 남편 분도 선생님이신데

산에 올라갔다가 그만 추락사를 하고 말으셨다고,

허망한 죽음이었다는 것이었죠.     



‘아 그런데 그 분 여전히 남편 옷을 입고 오셨더라...’     



아빠의 말씀을 통해서야

그분의 왜?를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남편의 유품을 입고 계셨던 거였지요.     


선생님이 입고 계셨던

그 큰 코트, 체크 정장, 검고 낡은 구두     

아 저는 방에 돌아와 한참 동안 멍했어요.


그 모든 것이 죽음을 기리는 방식이었다니     

그게 그 선생님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는 것이라니

선생님은 슬픔에 잠겨 있으셨지만 함몰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그렇게 과장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던 거지요.     


슬픔을 자기 삶에 그렇게 적용하고

그렇게 삶을 연명해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구나

그 비장함, 그 의지, 그 슬픔, 그 사랑     

모르겠어요.


그 때는 제가 뭘 느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슬픔이 이상하게

기쁨보다도 더 큰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알게 되었어요.



그 슬픔을 생각하면 오히려

삶에 대해 힘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슬퍼서 힘이 났지요.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있나요?”      


                   




그는 내가 말을 하는 내내 들었다.

 듣기만 했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따금 짧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내내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냥,,, 좋다, 는 생각만 했어요.

슬프기도 하지만.. 좋다.”     



그의 등 뒤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아른거다.     



“누군가가 느꼈던 슬픔을

고스란히 전해 듣는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지예씨가 열네 살일 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내 시간의 몫을 다하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서로를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동시의 시간이 정말 좋네요.


무엇이든 뒤늦게라도 동시에 나눌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떤 슬픔도, 이겨낸다는 생각 없이

결국 이겨낼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웃었다.


웃으면서도 울게 되었다.

너무 좋으면, 그러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 때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했다.           



나란히 걷다가 어께를 부딪치던 순간들,

가파른 오르막길도 오르막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저 이 모든 길이 또 다른 길로 계속 이어지기만을 바라던 순간들,

만나는 동안에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다가

헤어지고 나서야 사납게 느껴지는 바람을 실감하던 순간들, 웃

으며 잘가라고 하지만 지하철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시작되는 어떤 그리움의 순간들,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나는 그를 통해 나를 느꼈다.




그렇게 그는 나를 소환해주었다.

그를 생각하는 일이 결국

나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를 생각하면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슬퍼졌다.

      

나에게 필요한,

기꺼운,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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