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시케 Jan 29. 2020

Friendship

영국에서, 우정


영국에 오기 전까지 조이(첫째)는 영어의 ABC도 몰랐다. 학습에 큰 관심이 없는데 억지로 뭔가를 가르치는 것은 서로가 힘든 일일터, 그저 영어 동화책만 많이 읽어줬었다. 영국에 오고 나서도 근 한 달 정도는 '너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아이는 학교 이름만 반복적으로 말하곤 했었다.

이런 아이를 1학년에 입학시켜 놓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이는 언어뿐 아니라 다른 인지 정서 사회적인 면에서 모두 느린 편이었고,  눈치 없고 눈치 안 보는 해맑기만 한 성격에, 무척이나 충동적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항상 선생님께 "오늘도 이러저러한 사유로 아이를 혼냈으니 집에 가서도 아이와 함께 잘 얘기해보라"는 얘기를 듣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더 적었다. 이 아이가 대체 학교 생활을 어찌해내는지 항상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


어느 날 학교에 가는데 J 가 조이에게 인사를 했다. 사슴같이 큰 눈에, 밤톨같이 동그란 금발 머리, 주근깨도 귀여운 예쁜 남자아이였다. J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도 참 예쁘게 했다.

"전 조이가 좋아요. 제가 조이에게 영어와 영국식 매너를 가르쳐주고 있는 중이에요."

J의 엄마는 ‘네가 가르칠 매너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왜 나에게는 그 매너를 써주지 않는 것이냐?'며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지만 웃기만 하지 않았다. 나는 웃음 끝에 마음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내 아이를 좋아해 주고 도와주는  친구가 같은 교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었다.


그 후 조이의 영어는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큼 순식간에 일취월장 늘었고  규칙이 많은 학교 생활도 잘해나갔다.  J의 도움이 컸음을 나는 감지하고 있었다.  J가 선재와 노는 모습을 보면 배려심 있는 모습에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J는 규칙과 순서를 지키지 않고 천방지축에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내 아이를 함께 놀던 무리에 끼워주기도 하고, 조이가 놀다가 규칙을 어기거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때면, 탄식하며 돌아서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잠깐만’하고 잡고 있다가 ‘지금이 네 차례야’하고 차분하고 분명하게 짚어주었다.


 J의 인내심과 배려심은 어른인 나보다도 깊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J를 만나면 조이보다 내가 더 반가웠다. 형처럼 동생처럼, 내 아이를 챙겨주는 친구가 있어서 안심이었다. 그렇게 J 가 나와 내 아이에게 해주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


또 어느 날 아침에 학교에 가는 길에 멀리에서 J를 만났다. J는 내 아이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뒤늦게 합류한 J의 엄마가 말했다.

"아 정말 고마워, 오늘 너 덕분에 살았어"

“뭐가 고마워?”

“J가 요즘 웃는 것을 못 봤어. 아침에도 계속 툴툴거리고 사춘기라도 온 것처럼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예민하게 굴더니, 조이를 보자마자 정말 달라졌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워킹맘이고 오늘은 일이 특히 더 많아서 밤늦게야 J를 만날 수 있는데 내내 뾰로통한 아이 생각에 하루를 무겁게 보냈을지도 몰랐다고 했다.


나만 J에게 뭔가를 받는 다고 생각했는데, J만 조이를 배려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조이도 J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뭔가를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고마웠다. 친구란 그렇게 주고받는 존재, 기분 나빠서 툴툴거리고 있다가도  잠깐의 출연으로 일당백을 채워주는 존재임을 알게 되어서.


#


쓰는 것은 질색하는 조이가 언젠가 학교에서  friendship을 배워와서는 fship이라고 쓰면서  그 옆에 J의 이름을 쓰고 있었다. 함께 배 타고 가는 이야기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