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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Jan 04. 2021

어차피 오해는 받게 되어있다.

1.

책을 쓰고 나면 리뷰를 꼼꼼히 본다. 놓친 리뷰가 있을까 봐 수시로 다시 검색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글을 계속 써 나아갈 힘을 받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혼자 있고 싶은 남자>는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과 가부장적 관념이 어떻게 남자들을 힘들게 했는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이었다. 여자 내담자만 주로 만나다가 어느 시점부터 남자 내담자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상담실에 찾아오면서 남녀 비율이 3:7 정도 되었을 시점에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쓰기 시작한 책이었고 그 해 세종 도서로 선정된 도서 이기도 했다.

1. 남녀를 분리시키는 ‘이분법과 편견이 있다.’
2. 이 이분법과 편견이 서로를 고립시킨다.
3. 그러니 '더 잘 연결될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쓴 책이었다.

그런데 ‘이분법이 있다’를 강화한 책으로 오해하신 분이 있었다.
정반대로 읽으신 것이었다. 아니 책이 나오게 된 배경만 읽으신 것이었다.
내가 쓴 방식에 문제가 있었나 싶었다.
무엇보다 오해받았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어차피 오해는 하게 되어있고
오해는 받게 되어있었다.

나도 오해를 많이 한다. 오독도 많이 한다.
하나에 꽂히면 다른 더 중요한 것들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오해였음을 깨닫는 순간도 찾아오지만 영영 찾지 못하고 계속 오해하며 사는 것이 내 삶에 수두룩하다.

나는 왜 오해받으면 안 되는가?


그런 생각 끝에 어느 순간
내 마음속 어떤 말주머니가 스르르 풀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쩌면 그렇다면, 오해받을까 봐 짱짱하게 묶어두어 있던 말주머니를 풀어서 나오는 대로 흘려도, 그래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오해받을까 봐 입을 다물어야 할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러니까, 오해받더라도 계속 얘기해도 괜찮은지도 몰랐다.

어차피 오해는 하게 되어있고
또 어차피 오해는 받게 되어있으니까.


그럴까 봐 입을 다물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더 계속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2.


예전에 알았던 사람인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달라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예전에 알았던 "내 느낌'의 렌즈로
그를 보면서
그가 달라져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차이는
때론 반갑고 신선했지만
또 때론 의아하고 뒷걸음치게 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사람에 대해서 발견한 차이에
그 낙차에, 마음으로 뒷걸음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멈춰 섰다.

나의 느낌과 그,
그리고 나를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기로 했다.
나의 느낌이 지금 그의 모습을
얼마나 반영할까?
이 속에
나의 오해 지분과 이해 지분은 얼마로 갈릴까?
어차피 나는 오해하기로 되어있었다.
어차피 나는 그의 실제보다
그에 대한 나의 느낌, 나의 생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온통 나로 뒤덮여 있으니까.


그냥 두면 오해로 흘러가는 나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이해의 바다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오해에서 이해로 가고 싶었다.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오해에 의존하지 않고
이해의 지분을 넓히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던 방향, 하던 방식이 아니라
해보지 않았던 것을
더 많이 도입해볼 필요가 있었다.

매일 삶에 대한 느낌,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갱신해야 하는 것이다.

노력해도 쉽지 않으니
이 역시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3.



고등학교 시절이었을까
오랜 기억 속에서
류시화 시인의 책 <하늘 호수로 떠나는 여행>을 읽다가 마음에 남았던 말은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계속된 삶의 여행을 하며
결국 어딘가에 도달한다고 해도
머리에서 가슴에 도달하기까지의 여행이
더 긴 여행이 되는 삶이 있다고
대부분이 그렇다고..

오해에서 이해까지의 거리 역시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오해에서 오해로 건너가는 삶을 산다.

오해를 이해로 바꿔보려 노력하기는 하나,
그렇게 어느 정도의 이해에 다다르기는 하나, 어느 정도 누군가를 알았다 싶은 그즈음부터 다시 오해가 시작된다.

박제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마음을 만나고
마음을 포개고
마음을 함께 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가.

그 불가능의 가능성,
그 가능성의 불가능성에
자주 얽히고설켜 덜컹거린다.


시지프스가 계속 돌을 굴리고 굴리다가
결국 꼭대기까지 다 올렸음에도
그 돌이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묵묵히, 또다시 그 공을 다시 굴려가듯


심호흡을 크게 한번 더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에
나를 투신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이 힘이 부칠 때는 언젠가는 건널
이해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일단은 오해의 자리에 머물러 쉬기로 한다.


내 지금 오해가
그럭저럭 쓸만한 오해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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