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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r 20. 2021

여차하면, 사랑

아빠는 날 안고 뛰셨을 거에요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마당에 세워둔 물건들과 빨래가지들을 걷으러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나를 따라,
셋째가 얇은 티셔츠 한장만 걸친 채
맨발로 나에게 왔다.



나를 구하러 온 것인지
날더러 구해달라고 온 것인지
빗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하얗고 작고 여리고 애잔한 얼굴,



차갑고 굵은 빗방울과 축축한 잔디와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이를 안고 빗방울이 닿지 못하는 곳,
내가 아이들을 지키고, 먹이고 놀리고
화내고 화해하고 실없는 농담에 재미있어 하는,
우리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문득 예전에 상담실에서 오래 만났던
어떤 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내내 아빠의 상처를 이야기했다.


상처의 이야기는
하나를 잡아당기면
다른 것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감자 알맹이들처럼
파내어도 파내어도 무성하게 등장했다.


우리는
손톱 밑이 시커매지도록 감자를 캐는 사람들처럼
그 많은 이야기를 꺼내고 추려서
묶어두는 작업을 내내 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새빨갛게 펄떡이던 상처의 감각이
조금은 무뎌졌던 어느 날,
그녀는 어떤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영화의 어떤 극적인 이야기보다
하나의 장면이 마음에 남았더라고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위험에
아빠가 아기를 안고
빗속에서 필사적으로 뛰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영화와 무관하게 울었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아빠가 아이를 보호하는 그런 장면에
원망하는 마음, 소외받는 느낌, 결핍의 감각에
가슴이 따끔거렸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아기를 안고 뛰는 아빠의 장면에
나의 아빠와 아이인 나를 대입시키게 되었다고 했다.



"아빠도요,
여차하면 저를 안고 그렇게 뛰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여차하면요."


평소 때는 무뚝뚝하고 무차별적이고
거절과 평가의 아픔만 느끼게 했던 그런 대상이라도
'여차하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뛸 것인 아빠에 대한 상상이자 믿음은,

어딘가 기울어져 있던 그녀의 마음에
완만한 균형감각을 주었다.

이런 상상과 믿음이 그 모든 마음을
'결정적으로 ' 돌려주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상상하고 믿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만나는
이런 마음이라도 우리를 '확실히' 살린다고.

우리가 서 있는 이 모든 마음의 줄타기
저 밑, 저 위, 저 너머에 쳐진 이런 안전망이
우리 관계의 본질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된다고.



아빠는 정말
그녀를 구하러 뭐든 하셨을것이다.

'여차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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