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바쁘게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것만 끝내면 쉴 수 있을까? 빨래도 돌려야 할 것 같은데, 돌리면서 조금 치워두고 자야 될 것 같은데) 밀린 집안일이 너무 많았다. 가끔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 같아 때론 울컥하기도 하는데 그날은 그릇을 헹구며 창문 너머 달에 시선이 갔다. 달이, 선명하고 예뻤다. 보름달은 아니었으되, 보름달보다 더 이쁘게 보이는 달이었다. ‘아, 달이 나를 위로해 주는구나’, ‘밤 설거지를 하다 보니 이런 고요도 마주하는구나’ 설거지를 후다닥 마쳤다. 하나는 ‘클리어’했으니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역시 오늘도 나머지 할 일은 내일로, 모레로 미루기로 하고, 아이들이 나를 부를 확률이 줄어든 이 시간을 일단 즐기고 보자 싶었다. 식탁에 늘어져 있던 자잘한 아이들 책들과 물건들을 한쪽에 밀어놓고 연필을 찾고 노트북을 찾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었다. 웃고 말았다. 다시 보니 그것은, 달이 아니었다. 달이 저렇게 낮은 곳에 선명하게 떠 있을 리가. 나도 참, 위로가 필요하다 보니, 가로등 불빛을 달이라 하며 위로를 받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웃었다. 위로받았고 웃게 되었으니 그게 달이었든 가로등이었든 진짜였든 가짜였든, 뭐든 괜찮다고 느꼈다. 오아시스가 착각이었다고 해도, 신기루를 좇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순간을 견디게 해주었다면 어떤 착각이든, 신기루이든 착시이든,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닌가 싶었다. 위로에 대해 꼭 진짜여야만 한다는 높은 기준을 세우지 말자 싶었다.
다음날 아침, 둘째는 어린이집에 내려놓고(1차 목표 완수), 셋째가 탄 유모차를 끌며 첫째의 학교를 향해, 바쁘게 걷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언덕길을 오르며 숨이 차는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데 우연히 하늘을 보다가 나는 또 한 번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것은, 어젯밤 설거지하던 나를 위로해 주던, 달이라 착각했는데 가로등이라 웃음이 나왔던 그것은, 달이 맞았다. 정녕, 달이었다. 낮게, 단정하게 뜬 달. 보름달이 되기 직전의 달, 까만 밤하늘에 노란빛으로 분명히 박혀있던 그 달은, 이제는 구름처럼 흰빛으로 같은 자리에 떠있었다. 여전히 그곳에 떠있었다. 나는 이제 진짜 착각에 빠졌다. 가로등인 줄 알았던 그 달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네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는 너를 내려다보지. 위로가 필요한 마음에는 위로로 찾아가지 희망이 필요한 마음에는 희망으로 다가가지 사랑이 필요한 마음에는 사랑이 되지.
착시라고 해도, 착각이라고 해도 위로고 희망이고 사랑이라면 그리고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중의 진짜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