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학시절

[대학시절] 의문에 연루되다

사회과학 공부가 낳은 질문, 그렇게 만난 문화학

by An

(정말 지진으로 처음 수능일이 밀렸던 그 해)


반수반에 등록한 나는 대학생에서 다시 수십만의 수험생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다녔던 재수학원은 창문도 바깥이 잘 안 보이게 설치가 되어 있어서 매우 답답했다. 여름에 시작한 재수라 금세 찾아온 장마철은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애호하던 담배도 끊고 매일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며 나는 공부했다.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학과만 바라보며 달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전 자습만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부엌 쪽에서 불어온 가을바람에 갑자기 소위 현타(!)가 찾아왔다. 더 나은 대학을 가면 뭐 하지? 더 나은 학과를 가면 뭐 하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그게 내 인격적, 학문적 성장과 관련이 있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렇게 찾아온 의문이 다행히도 오래가진 않았다. 제일 비싼 축에 속하는 사립대 경제학과에 등록해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 재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종강날 글쓰기 강의를 맡았던 선생님이 이야기해 준 한 우화가 떠올랐다. 대충 이십 대 동안 겪게 되는 좌절과 행복의 스펙트럼 안에서 평생을 살아갈 거란 이야기. 그러니 뭐든지 감사하고 열심히 살라는 이야기. 당연한 말이 그렇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보건학을 택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다행히도 보건학을 택한 건 우연이지만 기막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관리학으로서 발전한 보건학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교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던 교수님이 명시적으로 계셨던 건 아니지만, 나는 총명한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본질에 대한 많은 논쟁을 벌였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스위스에서 일하다가 돌아와 박사과정에 입학하신 한 선배님의 질문에 우리 1, 2학년은 얼어붙었다. 이 질문 앞에 어떻게든 찌르려고 시도했던 언설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개론 격인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는데, 레비 스트로스를 주 텍스트로 하나씩 읽고, 다양한 문화 이론을 공부하는 수업이었다. 강사님이 던지신 과제를 따라가며 대중문화와 과학을 별개로 생각했던 나는 현대 문화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사유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됐다. 그때 문화인류학 첫 수업을 듣고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앞으로 듣게 될 수업 중에서도 제일 잘 들었다고 할 만한 수업을 듣게 된 거 같아.’


그리고 연달아 문화철학 수업을 신청했다. 문화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 철학과에 개설된 4학년 과목인 문화철학을 수강했는데, 첫날 유일한 1학년인 나더러 넌 수업에 적응 못할 거라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문화철학은 주요 텍스트로 미학 서적을 다루고 있었다. 그렇다. 강사님의 예언대로, 나는 책을 구성하는 1~6장 중 6장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좌절한 학부생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오역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이 텍스트를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훈련이 덜 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책을 꾸준히 읽어보세요. 조금씩 삶을 이해하고, 때로는 내가 이런 책도 읽었다!라는 자부심이 생길지 모르잖습니까.’ 나는 여전히 이 책을 꾸준히 읽는다.


1학년 1학기부터 2학년 2학기까지, 건강에 대한 질문이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고, 문화에 대한 관심은 공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장애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학교 전반적으로 퍼지던 혐오와 능력주의 문제도 일종의 실천해야 할 과제로 내게 당면하여 여러 활동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에 대한 관심은 공공정책학과 보건정책을 공부하게 만들어줬다. 그러면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공동체에 대한 고민,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며 윤리를 질문하게 만들고, 마침 <현대문학>을 구독하며 접한 유종호 평론가의 그리스 비극 해설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졌으니, 선배가 건강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던 1학년 1학기 개강일은 날 어떤 근원적 물음에 연루시켰던 셈이다.(그게 날 평생 가두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의문에 연루된 사실이 즐겁다.)


이것은 사회과학에 대한 고민이었지만, 문화학으로, 문학으로도 연결되는 지점이었고, 이러한 연결성은 나에게 적지 않은 놀라움을 주었다. 2학년 2학기를 마무리하던 그때 3, 4학년은 새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그러다 내가 경제학도이던 시절, 거지처럼 지내던 나를 구원해 준 은인이자 각종 대학 안팎의 활동으로 많은 영감을 주던 친구가 신설된 융합전공을 했던 게 떠올랐다. 이에 나는 어떤 융합전공이 있는지 찾아보고, 문화학을 더 공부하고자 문화비평학을 신청하게 됐다.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 비로소 나는 보건학 공부를 마치고, 문화비평 공부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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