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학시절

[대학시절] 대학을 가다

시인의 도서관에서 문학소년이 되었던 고등학생, 대학을 가다

by An

*일러두기: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보이려 한다. 대학 때 만난 한 강사님은 내게 삶을 냉혹하게 쳐다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반항아이므로 조금은 내식대로 써보려 한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배출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때 같은 층에 시끄럽게 도서관 하나가 새로 지어졌는데, 그 도서관 명칭에 선배 시인의 이름이 붙었다. 워낙 전설 같은 분이셨고, 우리 중 몇몇은 그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감격했던지라 겸허한 마음으로 처음 도서관을 찾아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기록과 사실을 다룬 시사 잡지나 역사책만 읽었는데(생각해 보면 역사를 사실로만 여긴 내가 무지했다) 시인의 그림자 아래서 괜히 주눅이 들곤 했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 내 눈에 들었던 책이 <비트겐슈타인 평전>과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였다. 세 권의 책은 어렸던 고등학생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비트겐슈타인처럼 살고 싶다는 막연한 기준이 생기고, 미문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으며 이런 이십대를 보내야지, 다짐했다. 소설가 이청준을 검색하다 사일구 세대 문인들의 대학시절을 알게 되면서 어떤 환상이 생겼다. 사실 결론은 하나였는데, 나도 저런 멋진 대학생이 될래, 였다.


멋진 대학생이 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거나 정의해 본 적은 없었으나,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엔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가 사회 전반적으로 활발히 논의가 되던 때니(어느 때가 아니었으랴만) 막연히 지식인(=문인이라는 등식이었던 거 같다)의 역할과 학문에 대한 열망이 마음에 싹트고 있었다. 그땐 사학과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문학에 대한 환상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외국어문학과를 생각하게 됐다. 특히 이청준 소설가처럼 독문학을 공부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라는 발랄한(?) 상상을 했다.(이건 망상이다.)


그런데 수시 원서 6장 중 부모님 바람으로 넣었던 경제학과만 붙게 되고 나머진 모두 탈락하게 됐다. 그때는 복수전공이나 융합전공과 같은 제도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한 전공만 4년은 공부해야 대학원에 갈 수 있을 거라 믿었을 때이므로 경제학과로 출발하는 것 자체가 께름칙했다. 그리고 경제학과를 그저 수학 많이 쓰는 형식논리라는 어떤 편견도 작용했다. 결국 나는 재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은 뒤집어졌고,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방학식까지 매일 나를 불러다가 대학을 가고 반수 하라고 설득하셨다. 사회학을 공부하셨던 한 선생님은 사회과학이 어떤 학문인지 열심히 내 앞에서 강의 비슷한 걸 하셨으나 솔직히 듣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선생님..)


우수에 잠긴 채 나는 새내기배움터에서 처음 동기들과 선배들을 마주했으나 당시 대학가에 어느 정도 잔존하던 똥군기와 내가 다니던 대학만의 술문화가 나를 옥죄었다. 2010년대에 사회과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당시 필독서로 통했던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 사회학>, 맨큐의 <경제학>, 이준구 교수의 <미시경제학>, IFRS 회계원리 등을 읽기 위해 수강했으나 냉담한 현실을 어떤 틀 안에 고정시켜서 설명하는 것 같아 실망했다. 점점 수업에 나가지도 않고 골방에 틀어박혔다. 변호하면 나의 빈곤한 상상력으론 대가들이 현실을 설명하고자 새로 제시한 프리즘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때 나는 '진짜'(???) 대학 공부는 철학과 인문학에 있다고 믿고, <순수이성비판>(칸트)를 펼쳤다가 대가리가 깨지고 좌절을 했다.


그리고 원래 좋아하던 역사 공부에 집중했다. 이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읽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역사>(폴 존슨),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미야지마 히로시, 배항섭 엮음)을 읽고 20세기 한국소설들을 주로 곁에 두었는데, <당신들의 천국>(이청준)를 비롯한 김승옥의 중단편들을 주로 껴안았다. 그리고 독문학에 관심을 두고 헤르만 헤세, 괴테, 테오도어 폰타네 등을 읽었다. 경제사를 가르치던 교수님께도 찾아가 상담했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에 닿는 인문학을 해야겠다, 더 결심하는 꼴이 됐다. 아마 문학청년의 자의식은 이때 조금씩 내면에 자리 잡았던 걸로 추정된다.


그때 연세대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를 막 취득하고 오신 모 선생님은 내게 상상력을 펼치게 도와주셨다. 소논문을 써야 했던 답답한 경제학 수업과 달리 글쓰기 수업은 정말 '자유롭게' 글을 썼다. 때로 사회에 존재하는 의제를 두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지만(1학년끼리 했다고 생각하면 참 풋풋하다) 나는 그때 언어 구조에 대해 관심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관련해 글을 썼다. 자유주제로 써오라고 하셔서 뭘 쓰지, 하다가 나도 모르게 언어를 기호로 분석한 글을 썼는데, 과제물을 읽은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셔서 많은 지도를 해주셨다. 문학을 많이 읽어서 그랬던 거 같은데, 여하간 결국 대학 생활 내내 언어학에서 넘어온 구조주의 시학과 씨름했으니 묘한 인연인 셈이다.


어찌 됐건 20살 내게 결론은 분명했다. 그래, 나는 당장 이곳을 떠나야 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경제학과에 남았다간 사학과로 1학년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보다 뭐든 늦춰질 게 자명해 보였다.(그게 뭐든!) 나는 그렇게 종강을 기다리다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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