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학시절

[대학시절] 형식에서 실천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꿈꾸다, 형식과 실천

by An

문화비평학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몇 가지 고려가 선행됐다. 복수전공 대신 융합전공을 하는 게 맞느냐, 복수전공을 한다면 막연히 꿈속에서 그리던 독문과를 쓰느냐, 문화이론의 중심지인 불문과를 쓰느냐, 따위의 것이었다. 그러다 단순하게도 문화비평학 전공이 노문과 와 독문과에서 주관한다는 사실을 알고 결심을 굳혔다. 물론 그전까지 러시아 문학은 내게 낯선 존재였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라는 거장의 이름은 들어보거나 <죄와 벌> 정도를 읽어본 정도였지 크게 관심을 갖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문화비평학 전공 교과과정에 담긴 노문과 수업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낯선 영토로 진입한 초심 여행자의 심정이 그랬을까.



내가 마주한 첫 노문과 강의는 <러시아문학이론과 비평>이었다. 비평 공부라니! 비평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 강의를 기다렸다. 그러나 교수님의 보법은 내가 생각한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첫날부터 대뜸 교수님은 톨스토이의 <유년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로이체르 소나타> 텍스트를 제시하시더니 시학, 시점, 성격화, 모티프, 서술기법, 심미성, 문체 등을 토도로프의 <구조시학>, <산문의 시학>, 르네 웰렉의 <문학의 이론>를 부교재로 분석해 오라는 과중한(ㅠㅠ) 과제를 던지셨다. 교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문학비평에 관해 논의할 때, 모든 의견은, 등가적 관계이니, 자신이 사유해 온 내용을 자신 있게 발표하는 습관을 가져라'라고 했다.



강의는 질문과 토론, 발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낯선 비평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사전과 문학사를 찾아가며 나름대로 정의하고 대입하려고 했는데, 초보적인 시도였다. 교수님은 자꾸 함축의미를 제대로 '휘어잡은 뒤에, 자신의 관점에서, 그 개념을 작품의 그 부분에 다시 적용해 가는 과정을 가지라'라고 하셨지만, 어떻게 해야 휘어잡는 건지, 내 관점은 가능한지, 내 방식의 적용이 작품을 잘못 읽게 만드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게만 만들었다. 그 학기 교수님의 비평 강의를 두 과목 수강 중이었는데, 다른 과목인 <대중문화비평>에서는 아예 영문으로 된 비평개념사전을 던지시고 번역과제를 시키기도 하셨다. 한편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품을 읽는 수업을 하나 듣고 있었고, 매주 새로운 학자의 이론서를 독파하는 강의도 있어 힘겹게 수업을 따라갔다. 오히려 사회복지학과 수업이 보건학 강의와 비슷해 이상한 친밀감마저 느끼고 있을 망정이었으니...



러시아 문학은 내게 조금 까칠했다. 그는 비평이론의 얼굴로 나와 처음 조우했고, 그 면면은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나 매주 톨스토이 작품을 하나씩 분석해 가며 비평개념을 정립하고,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다성악적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익히고, 문화현상에 대한 이론적 프리즘(특히 바흐친, 유리 로트만 등)을 가지고 어거지로 글을 써보고 비판받는 날들은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연쇄에 갇혀있었던 내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것은 하나의 안목으로 성장했다. 나는 안목을 조금씩 다듬으며 인문학의 관점에서 사회과학적 실천을 꿈꾸게 됐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기회가 닿았던 학생사회 출마보다 인권과 공동체의 윤리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 거라 믿고, 대학신문사에 들어가고, 소논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특히 대학신문사에서 만난 선배들과 소논문 프로젝트를 하며 뭉친 동료들은 내게 많은 지적 자극과 영감을 전해줬고, 치열한 논박과 토론을 통해 사유의 지평을 조금씩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공동체의 윤리가 선순환이 된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행복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내가 수혜 받은 자원을 사회로 환원하는 방법을 처음 감각하게 되던 때였다. 가변적일지라도 나는 내 계급적, 계층적 위치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내가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건 공공의 혜택과 불가분이었기 때문에 예비 지식인으로서 공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린 마음에 생기기도 했다. 이건 내 한계를 직시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수혜를 받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소외받는 자의 편에 설 수 있어도 그들의 대변자가 될 순 없단 사실을 깨닫는 시기기도 했다. 이러한 질문은 또다시 나를 계속 의문에 붙잡아 놓고 고문하게 만들었다.



노문과 교수님들 아래서 러시아문학과 문화비평이론을 무기로 문화현상과 문학작품을 분석해 나가던 그 시절은 내게 조금 특별했다. 세상을 비평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설명할 수 있겠다는 야망, 내가 공부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대학 안팎의 활동을 하며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해 실천의 영역으로 옮길 수 있겠다는 열망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아감벤의 책들을 읽던 날들, 매일 독서실에 새벽까지 공부하다 나와 하늘로 고개를 들어 별빛을 바라봤다. 나는 기쁘게 춤을 추며 집으로 돌아갔다. 학문이 내게 준 형식이 실천으로 뒤바뀌던 그 해, 나의 생명력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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