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쿠팡플렉스! 야~나두 했어! 너도 해
쿠팡맨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하루살이 쿠팡의 경험을 기록하고자 한다.
10여 년의 시간을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물론 그 사이 자영업자로 몇 달, 프리터( 일본어 수업, 미술관 지킴이, 카페 주말 알바 등등) 내내 여행만 다니던 내가 과연 백조로의 삶을 박차고 나와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뭘까 하다가 처음 떠올린 건 대리운전이었다. 운전은 싫어하지 않고 토박이로 웬만한 길을 내비게이션 없이 갈 수 있고 술은 좋아하지 않고 술자리는 가끔 즐기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타진해 봤는데 알아본 곳은 매일매일 수수료를 내야 하는 곳이었다. 그냥 내 노력의 대가를 누군가들에게 나눠주기가 싫다는 게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처음 그 대리운전을 생각하게 된 건 알고 지내던 배우분의 8년 간의 일이기도 했는데 독립영화계에서는 꽤 알려진 분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오시면 뵙고는 하던 분인데, 배우분이 하시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가 동기였는데 결국 해보지를 못했다. 카카오에서 하는 걸 연동해서 앱도 깔기는 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일이 생겨서 그러다가 인스타.. 보다가 당신도 해보세요! 쿠팡플** _ 돈 쓰면서 쿠팡을 즐기라는 게 아니고 플렉시블 하게 시간을 활용하라는 뜻이라는 걸 글을 쓰면서야 이해하게 된다. 참 줄임말을 모르는 나이 든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하 각설.
처음으로 쿠팡 우먼으로 단 하루 해 본 배송의 기록을 하고자 한다. 먼저 앱을 깔고 유튜브로 몇 시간의 교육을 이수한다. 그래 봐야 영상을 보면서 스킵하는 건데 그 역시 시간을 꽤 잡아먹더라. 운전자라면 알만한 내용을 정리해 둔 PPT 같은 걸 내내 보는 것인데 마지막엔 퀴즈도 있다.
그리고 앱을 열고 신청. 처음 신청한 곳에서 바로 전화가 온다. 바로 당일 신청 당일 출근이기에 근데 잘 읽어보고 엄청 먼 곳으로 신청하니 거의 지방 수준의 곳이었다. 다시 집에서 30분 이내의 곳으로 신청. 일부러 낮보다는 밤에 해보는 게 나을 듯했다. 그리 하여 옷을 단단히 여며 입고서 목적의 장소로 갔다. 평소에는 잘 안 입는 카키색의 야상을 입고 운동할 때 쓰는 장갑도 챙겨서 길을 나섰다.
집합 시간이 새벽 2시인데 30분 전에 오라고 하여서 조금 일찍 나서서 1:20분에 도착. 그 동네에 그런 게 있는 줄 몰랐고. 그 새벽에도 깨어서 움직이며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체감한다. 나 말고도 자신의 차로 배송하는 분이 꽤 있었는데 여자분은 보이지 않고 전부 남자분이었고, 연령대도 다양하고. 다들 묵묵히 자신의 차에 상자를 차곡차곡 싣느라 바쁘다.
처음 가서 버벅 거리던 나는 차도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거의 경차에 가까운 소형차로 몇 개나 배송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니 그랬지만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무실로 향한다. 처음이라 하니 자신은 바빠서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하며, 밖에서 일하는 누군가를 부른다.
키가 멀대같이 큰 그는 카*으로 자신을 찾아서 추가하라고 하고. 모르면 뭐든지 물어보라고 한다. 혹시 괜찮음 전화해도 되냐고 하니 선뜻 번호를 알려주신다.
" 오늘은 첫날이니까. 다 하는데 의의를 두세요. 아마 다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아파트 위주로 모았으니까."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38개면 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 처음 하시는 거라. 시간이 아마 꽤 걸릴 거예요. 그냥 정확하게 배송한다고 생각하시고 하세요. 물건이 제대로 안 가는 게 더 찾기 어려우니까."
그리하여 짐 싣는 대형 카트에 배정받은 38개를 싣고 다시 내 차로 이동한다. 뭔가 설레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이상한 긴장감이 들었고. 오늘 38개는 정말 정확하게 제대로 배송해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택배 상자에 붙은 주소지를 봐도 처음 들어보는 아파트뿐이고. 그 산동네에 아파트가 그리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한 지역에 꽤 오래 살았다 자부했지만 그 역시 살았던 동네 걸어본 거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한정된 곳에서만 이동하면서 지내는지를 확실하게 체감했다.
작은 차이지만 해치백 느낌이라 트렁크에도 꽤 들어가고 뒷좌석에도 넣으니 앞좌석에는 안 넣어도 될 만큼 채우고 출발한다. 일일이 앱을 보면서 위치와 장소를 확인하고 배송 후에는 체크하고 그렇게 시작한다.
키가 큰 선배 같은 분이 위에서 내려오면서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팁을 알려주신다.
지도상 맨 위라고 해도 어딘지 모르겠다. 일단 지도가 설정한 곳으로 가보자. 처음부터 헤맨다. 물류창고 같은 곳에서 길을 잘못 나가서 산 저 위에서 후진해서 겨우 차를 돌려 나오고야 시작한다.
38개쯤이야 얼른 하고 집에 가서 따뜻하게 자야지.. 배송을 시작한 시간이 새벽 2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어느 산동네 주택가 리스트의 맨 위에 해당하는 곳으로 4층 집에 사는 분에게 배송하는 것이다. 첫배송의 기쁨도 잠시... 차에서 찾고 그걸 앱에서 체크하고 물건의 송장의 주소와 번갈아 확인하고 빨리 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는 선배의 말을 되새기면서 2번 확인하고 다음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간다. 아파트라 해도 낮은 맨션 같다고 해야 하나? 5층짜리 아파트에 어찌 내가 배송해야 하는 물건들은 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4층 아니면 5층에 있는 물건들이 많다.
일부러 시간 내서 Gym 왔다고 짐 가는 길을 좀 멀리 돌아서 운동하면서 가야지 하는 기분으로 다시 시작.
진짜 제대로 서비스 마인드 장착한 쿠팡 맨처럼 모자는 안 썼지만 그런 마음으로 물건 하나하나를 배송하기 시작한다. 정말 마음속으로 고객님 주문하신 택배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저희 쿠*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런 대사를 하면서 한 곳 한 곳 갔다.
연이어 간 아파트는 출입문이 따로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곳인데 경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건지 새벽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을 가르쳐준 키다리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그분도 일하고 계실 거 같아 뭔가 미안했지만 내내 자동문 출입구 앞에서 서있을 수도 언제 나올지 모를 누군가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전화하니 상세하게 물어보고 알려주신다. 앱에는 웬만한 기록이 되어있다고. 출입구 비번이랑 위치가 나와 있고 알면 좋을 팁 같은 게 적혀 있다. 여러 명에 의해서. 이런 게 집단 지성인가? 네이버 지도에서 아파트 동을 찾아가는 건 아무래도 표기가 어려워서, 동 찾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리지만 어찌어찌 하나씩 배송한다.
그러면서 몇 번씩 진짜 쿠팡 맨 분들을 마주쳤다. 제대로 쿠팡 트럭을 몰고 옷을 입고 계셨던가? 암튼 모르는 걸 물어볼까 하다가도 바쁘신 듯하여 되도록 혼자서 해결하려고 한다.
참 신기한 것은 나에게 배정된 것은 대부분이 엘리베이터 없는 4층, 5층의 물건들이 참 많았고. 빌라는 이름이 같은 곳이 있었고 일일이 확인하고 하나를 배송하고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다행히 몰려 있는 곳도 있어서 한 군데 차를 정차하고 그렇게 배송에 집중하면서 하나하나 마음속 다짐의 멘트를 잊지 않고 배송한다.
결국 마지막 아파트가 보인다. 뭔가 여명이 트는 듯한 색깔의 하늘이 보인다.
마지막 아파트 역시 구조가 특이하다. 스퀘어 주차장이 형태로 아파트 중정 같은 곳이 있고, 그 뒤로 또 아파트가 있다. 그곳을 마지막으로 2바퀴 돌고서야 38건의 배송을 마무리한다. 중간중간 프레쉬 백이라고 신선 제품 박스를 회수하면 500원을 더 주나 그랬는데 그걸 다시 물류창고로 가져다줘야 하는데 처음 할 때부터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가는 길에 그것도 같이 해주면 좋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배송을 다 마치고 나니 어느새 아침해가 밝아 온다. 해 뜨는 걸 보지는 못하고 뭔가 어디 가서 해장국이라도 사 먹어야 할 거 같지만 그냥 집으로 가서 따뜻하게 잠을 자고 싶었다.
38건을 배송하는데 정말 아침이 될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2시부터 거의 5시간 동안 배송한 건데 땡땡이 한번 물 한 모금 여유롭게 마시지 않고 했는데...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그래서 나 일당이 얼마라고?
찬찬히 보니까. 건당 비닐백 500원, 종이 박스 700원?
뭔가 괜히 분하고 화가 난다. 길을 몰라서 헤매서 도달한 후에 걸어서 4층을 올라간 대가가 500원이라고?
흠... 난 왜 숫자에 약한 거지? 그 금액을 정확히 파악했더라면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내가 있었지만. 아.. 그냥 새벽에 달밤 체조가 아니라 새벽이슬 맞으며 운동하러 저 산동네에 다녀온 거로 하자.. 하고 돌아가지만 뭔가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서울 대치동에서 자취할 때가 문득 떠올랐다. 살던 곳이 선릉역 근처였는데. 잠시 이직 중에 출근하지 않는 어느 아침에 배가 고파서 전철역 입구에서 파는 김밥을 사러 선릉역으로 갔다. 넥타이를 맨 이들과 뭔가 빠르게 전진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 혼자만 츄리닝 차림으로 역주행해서 그 길을 걷는 게 기분이 그랬다.
그때의 기분하고 물론 달라야 하는데 그 아침이 떠오르면서 누군가는 일하러 나서는 운전길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자는구나. 하는 게...
배가 조금 고팠지만, 맥모닝도 댕기지 않았고. 일당을 얼마나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 귀한 돈으로 해장국 먹으러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다음 달에 통장에 찍힌 금액은 127,650원 _ 쿠팡 플렉스 용역비라고 찍혀서 11월 8일에 입금되었다. 일을 한 건 10월 21일 새벽이었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많았던 건 아마 프로모션으로 첫배 송 덕분이다.
그게 아녔더라도 아주 오랜만의 입금 내역에 단순히 기뻤다. 내내 카드 대금만 빠져나가는 통장에도 찍힌 노동의 결과일 터이다. 통장정리를 안 해서 아직 찍히지 않은 내역이지만.
암튼 다시 해볼까? 친구에게 추천해서 야!너두 해. 나도 해~했어...
어학 광고처럼 종종 연락하는 프리랜서 남사친에게 말하니 절대로 싫다고 한다. 가끔 집안 일로도 배송하고 메인 잡으로 그림도 배송하는 녀석은 극구 하기 싫다고 하니...
누구 하실 분 안 계시겠지요? 일단 제 주변에는 없었고. 저 역시 단 한 번의 배송 이후 앱을 일단 삭제했긴 한데 계속 문자가 오더라고요. 쿠팡에는 그런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족.
단 한 번이었지만 귀중한 노동의 대가와 시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고. 이런 글 까지 쓰게 하니 저로서는 괜찮은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시 혹은 그 일을 임시 직업으로 삼기에는 그러네요.
며칠 후 저희 집 건너편에 사는 이웃이 삼다수 생수 2리터짜리 6개를 쿠팡으로 배송받은 후 그걸 반품한다고 내어놓은 걸 보니 뭔가 화가 났어요. 물건에 하자가 있을 리도 없고 장난치나? 왜 물을 주문하고 또 취소해서 기사들 일을 시키지? 근데 다시 생각이 미친 건 그로 인하여 배송기사분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한 건가요?
모르겠네요. 암튼 저는 택배 오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웬만하면 눈으로 직접 보고 사기를 좋아하고 배달도 잘 시켜먹지 않고 직접 가지러 가는 편입니다만.. 세상 참 다양한 직업군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에 서 계신가요?
글을 다 쓰고 검색하니 이런 글이 나오네요.
쿠팡캠프 - 쿠팡플렉스 후기 (쿠팡맨도전)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