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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만난 미국 남자

왜 과거가 화려한 이들만 만나지는 걸까?

by Anais Ku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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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만난 미국 남자

오랜만에 여행에서 만난 남자 시리즈로 돌아왔습니다.


태국 세달살기를 끝내고 저는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90일에 가까운 시간 하지만 비자 마지막날을 채우지 않고 태국을 나와서 캄보디아로 향했습니다.

80일의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저는

치앙마이 집약적 90여일 88일을 보냈습니다.







버스 편이 조회되지 않아서 히치하이킹을 불안에 떨면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씩 일찍 움직였고 그 결과 생각보다 빠르게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괜한 교통비용을 줄이고자 보이는 버스가

있으면 바로 점프해서 캄보디아 국경까지 갔습니다.

그 여정에도 이번화에 소개할 그가 함께 했습니다.







여행 도중에 만난 그는 캄보디아 씨엠립에 친구가 있다고 그곳에 가서 지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여행 초반에 했는데, 저 조차 함께 오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와 이야기 바로 시작합니다.







치앙마이를 다섯 번이나 찾은 아나이스.

하지만 여전히 올드시티를 벗어나지 않고 그중에서도

늘 머물게 되는 허름한 동네 치앙마이게이트 근처.

그날은 태국 와서 권태가 절정에 이른 날이었어요.


요가인더파크 Yoga in the Park도 더 이상 힘이 되지 않고 만날까 하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모두 미룬 채

넷플릭스와 친해지려는 찰나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허기진 마음과 몸을 부여잡고 늘 향하는 마켓으로 갔습니다. 간단히 요기하고 망고 스무디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때였습니다.


아마도 도착한 지 2주쯤 지났고 요가도 수영도 지겨워지려는 찰나. 그리고 누구와 만나도 힘이 날 거 같지

않던 금요일 저녁. 그렇게 그와 길에서 마주했습니다.


한 두 번 서로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을까요? 그리곤 동선이 겹쳤고 이어지는 눈 맞춤에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걷던 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그리 키가 큰 사람인 줄 미처 몰랐어요. 그는 아주 아주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는 그다지 마주하지 않았던 스타일.


저는 대체로 체격 있는 180cm  이상의 사람을 주로 만났고 마초에 가까운 이들.


그는 190이 넘는 키에 아주 마르고 예민하고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 보여준 그의 그림들은 저에겐 큰 흥미를 주지는 못했어요.

그림이나 예술을 사랑하고 저도 그리곤 했지만 제 스타일 혹은 제가 사고 싶은 그림은 아니었어요.







그리곤 숙소가 근처인데 이야기를 좀 더 하자고 하여 갔는데 그는 정말 Bar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살기 하는 그. 시끄러운 그 곳에서의 밤을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었던 거죠.


처음 봤을 때 그가 미국인 인 줄은 모르겠는 유럽의 느낌이 드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었고

마침 그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서 태국에 처음 온 거였고.

방콕 한달살기에 이어서 치앙마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였는데 여행하면서 생존 혹은 서바이벌로

버티기 여정을 수년째 이어가는 중이었고 미국은 비싸서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리하여  어딘가에 있을 집을 찾으려고 다니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10여 년 넘게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익구조를 찾지 못한 채로 소비만 계속하는 형태로

버티고 있다 보니 늘 야행 그리고 각자의 정의로 집을 찾고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어서 자주 보게 되겠구나. 했는데 그날 이후로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고 말 그대로 이웃사촌이라 툭하면 서로 불러내거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답니다.







둘 다 혼자 여행을 왔고, 사랑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외로운 사람들. 언제나 사랑을 기다리지만 쉽게

빠지지 않고 빠지면 흠뻑 빠져서 좀처럼 헤어 나올 줄 모르는 사람들. 그게 우리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림을 가끔 팔아서 수익을 창출했고,

페이데이가 올 때까지 버티면 어떻게든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와 만난 다음 주가 바로 크리스마스였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우리에게 온 큰 이벤트의 날이지만

크게 별다른 거 없이 동네에서 스무디를 마시고 그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동네로 가서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성탄 분위기가 나는 동네를 엄청 걸었고 그냥 쇼핑몰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가고.







그냥 한국 바비큐나 먹을 걸 했지만 크리스마스에 어수선함에 바베큐 까지 굽는 건 귀찮아서 패스했는데

그게 어쩌면 맛날 수도 있었겠다 정도의 후회가 있는 첫 이벤트의 날.


그는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선 만난 첫날 건넨 작은 붉은 꽃 하나가 우리의 시작이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어김없이 작은 가게에서 이미

시들었지만 딱 제스타일의 장미를 사서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서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취해서 처음으로 함께 보냈지만 어떤 위화감도 없이

즐겁게 보냈네요. 하지만 그와 있으면 뭔가 배불리 먹게 되지는 않는 느낌이랄까? 그랬네요.

그리곤 얼마지 않아서 저는 도이수텝 명상센터에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감정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뭔가 시작되어 버린 밀려진 관계랄까요?


명상센터에 가서도 내내 이어진 연락은 급기야 2주 여정을 일주일로 당겨서 탈출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여 이후로 저희는 함께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여행이라고는 해도 근교 여행조차 가지 않은

치앙마이 단기거주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미 오래된 커플

같은 분위기로 가끔 근처 마켓( 토요 일요 마켓은 다 함께 갔네요.)  가거나 윈터페스티벌도 결국 야시장

이었고 그와는 마켓투어 카페투어를 주로 하는

여행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간 곳도 그 덕분에 간 곳인데 늘 지나치기만 했던 골목인데 그와는 두 번이나 갔고 누군가 가자했을 땐

또 가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암튼 그렇게 하루하루 요가 후에 점심 식사를 같이 하거나 그가 좋아하는

블루 바 혹은 제가 좋아하는 바 _ 심플맨 등을 전전하면서 우리의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지낼 곳이 마땅히 없어진 우리는 빠이 매홍손에 함께 가자 합의하고 미니밴까지 예약했지만 그의

비자 문제로 연기하고선 결국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물론 방콕 라용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씨엠립

여정은 함께 했지만 한 번에 무리해서 하지는 않고 천천히 며칠에 걸쳐서 했고. 그 와 중에 엄청 싸웠네요.







암튼 이후로도 태국식 샤부 샤부 바베큐도 먹으러 가고 그런 나날을 보내다가 점점 싸울 일들이 생겨났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를 즈음에 저는 빠이를 거쳐서 매홍손 명상센터를 갔고 그리곤 열흘 넘게 만나지 않았고 이후로도 샴발라 _ 치앙다오, 방콕 등으로 계속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도 시들시들해졌다랄까요? 그는 여전히 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저는 내내

그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예술적인 데 포커스가 맞춰진 데다 제겐 너무나 무거운 복잡한

과거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왜 저는 꼭 그런 이들만 여행지에서 만나지는 걸까요?


그리고 그와 있으면 뭔가 불안하고 불편한 구석이 꼭 생겨요. 돈이라던가? 제가 걱정할 부분은 아니지만

저 역시 10년째 여행만 하다 보니까 늘 버짓에 쪼달리는데 그걸 봐야 하는 상황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제가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작년에 이맘때 함께 여행한 이가 떠올랐습니다. 서로 닮은 구석이라고는 마른 체형과 키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일찍이 집을 나와서 히피 같은 생활을 오래 해왔다는 거 정도이지만 뭔가 그런 이들만 제가 이끄는 거

마냥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그 사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겐 명백한 사실이고

그런 점들이 쉬이 그들과는 정착하게 되지 않는다랄까요?







제가 정착하고 싶은 이는 저를 심히 좋아하지는 않고 적당히 즐기고 여행하기만 원하고

함께 늙고 싶거나 함께 무언가를 모색해 보려는 이들은 왜 항상 과거가 복잡하고 쉬이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그들일까요? 저에게도 문제가 많이 있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지만 제가 이미 늙어서인지

아니면 제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건지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와의 몇 장의 사진을 애정하고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만 그마저도 끝나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 산책 가는 길에 우리는 별거도 아닌 일로 크게 다투었고 다시는 보지 않을 거처럼 서로를 밀고 한참을 떨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까지 일지 모를 그 와의 여정.


덕분에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저 그 시간과 추억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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