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텔 반경 1km 내 일본소도시에서 한국 사람을 만날 확률은?
일본에 간 게 어버이날 교토그라피 막바지였고 어서 가보지 않은 다른 도시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조차 알 수 없어서 일본인 지인에게 어디로 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녀가 아마 아나이스는 교토 좋아하니까 작은 교토로 불리는 가나자와가 어떠냐고 추천해 주셨고
신칸센을 타야 하는 교통비 부담이 약간 걱정되었지만 이왕 왔으니 그래도 조금이라도 끌리는 곳으로
가자하여 내내 교토 머물다가 거의 2주가 한참 지나서야 갈 수 있었다.
교토에서 내내 여행메이트로 지내던 스페인 친구와 투닥거리면서도 결국은 함께 떠났고 우리는 교토에서
처럼 함께 그리고 따로 또 여행을 계속했다. 결국 그는 나를 만나러 나중에 부산에 오기도 했다.
가나자와에 가고 싶었던 건 21세기 뮤지엄에 가고 싶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그리 크지 않은 소도시라서
내내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였는데 역시나 기대만큼 어쩌면 기대보다 살짝 더 좋았다.
익숙한 간사이 지역 내에서도 교토나 고베 오사카와는 또 다른 은근한 힙한 분위기와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원이나 성, 히가시차야 거리 등 오밀조밀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다.
아마도 2 ~ 3일 정도면 둘러보는데 충분한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느린 여행을 하는 나와 나의 친구는
아주 천천히 갔던 곳도 또 가고 예를 들면 우리가 좋아하는 21세기 뮤지엄의 작은 도서관을 좋아해서 비가
오면 찾기도 하고 약속도 하지 않은 어느 날 또 마주치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인연이 있는 사이이다.
교토에서처럼 어느 날 오사카에 서핑보드를 가지러 간 그를 교토의 어느 서점 앞에서 딱 하고 마주친 것처럼.
나중에 그는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 먼 훗날 어디 파리나 아님 어딘가에서 또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지도모른다고.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런 일이 생겨도 우리는 당연한 듯 허그를 하고
잘 지냈냐며 또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겠지. 하고 그런 미래가 그려졌다.
이 글을 쓰면서 가나자와에서 만난 그와의 주제곡 같은 Sunsets (by cigarettesaftersex)를 듣고 있다.
타이틀의 그를 만난 것도 이 노래의 백그라운드 뮤직처럼 비 오는 날이었다. 장맛비처럼 추적추적 많이도
내리던 어느 밤 그와 만났고.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결이 닮은 영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그냥
그 순간에 우리는 서로가 너무나 필요한 존재였다. 뭔가 표현할 수 없는 필수부가결한 존재. 서로를 너무
좋아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기에 만나진 사이.
그가 내 호텔에서 500m 도 떨어지지 않은 호텔에 머물고 있었고 우리는 기적처럼 마주했고 처음 만날 날부터 내내 함께 여행했지만 한 번도 부딪힌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함께 내내 여행을 해 온 스페인친구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와는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냥 내내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었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모든 걸 받아들여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와의 시간이 너무나 평온해서 이토록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놀라움까지 드는 이었고. 물론 그와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나의 선택에 전적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었고 그와 간 모든 곳들이 대체로 서로가 모두 만족할만한 곳들이라 2~3일만 머무려던 가나자와에서 결국 일주일 넘게 머무른 뒤에야 고베로 갈 수 있었다.
가려고 했던 시장 근처 모닝구세트 맛집 Hide Seek에서의 커피와 토스트를 시작으로 우리는 많은 곳을 함께
갔고 그 모든 곳을 그는 기쁘게 받아들였고, 내가 그보다 조금 먼저 가나자와에 왔기에 역시나 가이드하는
기분으로 근처 신사와 정원 그리고 닌자거리 등 천천히 산보하듯이 여러 곳을 함께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걷거나 가나자와역에 가서는 미리 신칸센 티켓을 사거나 가는
길에 도서관에 가서 마츠모토 세이쵸의 책을 찾아보거나 하루키의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내 외국인 친구와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우리말로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그를 만나
여러 가지를 털어놓는 어떤 의미에서는 수다테라피의 느낌도 받았다.
그와의 시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스즈키 뮤지엄에서의 시간이다.
공간이 근사하고 의외의 힐링을 주는 장소라서 인상적이었다. 건축물이 주는 근사함과 공간을 즐기는 여유로운 이들을 만나서 한참 오후 시간을 보낸 곳인데 작지만 정원과 함께 둘러보기 좋고 무엇보다 수로 같은 물과 노출 콘크리트는 안도타다오를 연상케 했지만 뉴욕 모마의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한 공간으로 내내 머물고 싶은 그곳에서 그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밤의 콘비니 가는 것을 애정하는데 머물던 호텔 근처에 대형 로손이 있어서 아이스크림이나 맥주 간식 등을
사러 가곤 했는데 그 또한 다른 의미로 재미난 기억이었다. 그리고 비 오던 어느 밤에 방안 가득히 음악을 크게 울려 퍼지게 하고 마시던 위스키와 하이볼, 끝도 없이 흐르던 곡과 오랜만에 들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곡과 내내 이야기하던 영화를 함께 한편 볼까 했지만 그런 시간까지는 허용되지 않았고 다음에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함께 보자고 동의했지만 그날이 올는지는 모르겠다.
친절하고 상냥한 그는 마지막에 가나자와역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다음 날 가나자와에서 일 년에 하루뿐인 큰 마츠리가 있었지만 고베에서의 약속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쩌면 딱 좋은 이별 타이밍이었다. 그가 주는 편안함 때문에 어쩌면 내내 머물고 싶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딱 좋은 만큼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것이라 그 추억이 더 달콤하게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와는 귀국해서도 몇 번 더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는 여전히 출장 중이고 이 글이 공개될 즈음에는 아마도
서울에서 이 글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대치 않은 순간에 만나서 아주 충만하고 복된 시간을 보낸 우리.
함께라서 고맙고 여행 막바지의 지치는 부분들도 그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의지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그와의 시간도 어쩌면 마지막이라도 후회는 없을 듯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우유부단한
내게 귀국항공편 결정하는 것도 그 덕분에 일사천리로 결정하게 되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던 거도 그 덕분.
서울에 돌아오면 부산에서 혹은 어딘가에서 또 보자고 했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좋은 시간을보내고 와서 그저 고마움만 기억에 남는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가나자와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