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 한달살기 일상
결국 그와는 아주 나쁜 이별을 했다.
그게 잘 된 것임을 안다. 마지막에 다시 화해의 제스처를 보낼까도 했지만 아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하려고 한 셔츠는 교환해서 체크 머플러를 사야 하나? 정도가 다다.
나쁘게 헤어지고 나서도 짐을 찾아야만 했다.
옷도 옷이고 랩탑도 그렇지만
여권 때문이라도 다시 머물던 곳에 가야 했는데.
그는 이미 며칠 전에 내 물건 들을 밖에다 내다 놓은 모양이다. 젖은 건 그렇다 치고
지난 며칠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나쁜 냄새가 여기저기 베여서 3개월 열흘 만에
처음으로 세탁을 맡겼다.
흠뻑 젖은 건 아닌데 이상한 비린내가 옷 여기저기에 남으려고 하는 찰나였다.
역시나 옷은 그렇다 치고 여권마저 젖어서 참으로 아주 아주 나쁜 이별에 냄새까지 남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갑작스레 정해진 거지만 좋은 에너지가 이끈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이럴 때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 걸 처음 느낀 건 캐나다에 갔을 때니까 2012년 그걸 깨닫고 영어로 기억하고 다시 떠올린 건 오랜만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다시 다른 문이 열린다. 그 문은 항상 열리고 때로는
다시 열리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닫히자마자 열린다.
이별을 할 때면 늘 떠오르는 말이지만
실제로도 그러하다. 지겨운 다툼과 의미 없는 argue에서 벗어나서 해방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씨엠립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
MICKEY17 보러 극장에 갔다. 그곳 역시 그와 다투고 혼자서 카페를 가고 수영을 하고 그러다 마주한 건물이었는데 극장이 보였고,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캄보디아는 영화표가 싸다고. 공포영화가 1 달러 정도 한다고. 정말인가 싶어서 확인하니 평일 기준 2.50 달러.
미키 17 등 우리나라 영화도 개봉예정작에 있었다.
꼭 가격이 괜찮아서 간 건 아니고 봉준호 감독의 팬이 아니지만 뭔가 해외에서 국내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고싶었는데 딱 시간이 맞은 거다. 그런데 이건 한국영화가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할리우드 영화다.
플랜 B _ PLAN B 제작 (브래드 피트 제니퍼 애니스턴 이 처음 만든 제작사인데 지금은 브래드피트 이름만 보인다. )으로 자막이 캄보디아어.
영어는 역시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는 데큰 무리는 없었고 나에겐 다소 지루한 영화였다.
Clone Sci-FI 영화는 역시나 내 스타일이 아니고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스티브 연 그 누구의 팬도 아니나 굳이 시간을 만들어 평일에 보러 갔고 ( 참고로 주말은 4.50 골드클래스는 10 달러 )
그래도 엔딩크레디트를 본다는 건 감동이었다.
단지 그걸 보러 간 느낌이다.
간간이 나오는 음악은 아주 세련되고 좋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누군가가 말을 걸어 온다.
엔딩크레디트를 찍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남자.
프랑스인 마르세유 출신인데 이제 이곳에서 살아보려고 방을 알아보는 중이라는 그는 나에게 자전거로 가는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모터바이크도 아니고 자전거 뒤에 타고 가보는 게
처음일까? 고마웠고 진심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크게 웃었고 그냥 상황이 재미나서 웃겼다.
그 순간을 누군가 찍어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내 영화를 만드는 데 포커스가 되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냥 그 모습이 너무 이뻤다.
(* 이번 영화에 이 장면을 일부러 넣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촬영해야 하지? 의상은 대상은...)
지나가는 캄보디아 로컬인들도 미소 지었고 누군가는 내 치마가 자전거 체인에 걸릴까 걱정도 해주었다.
카페에 맡겨둔 랩탑 가방을 찾아서 호텔 앞까지 데려다준 그. 당장 헤어져야 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고마웠다.
영화관에서 숙소까지 걸으면 20분 남짓 1.5km
그 잠깐 동안 리버 사이드로 가기 위해서 잠시 우회했고 내내 멋진 등근육을 움직이며 페달을 밟았고 무사히약속시간까지 다시 숙소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laundry 찾으러 갔는데 맡길 때는 세상 friendly 하던 사람이 살짝 찢어진 20달러에 금세본색을 드러냈다. 아예 내 옷을 안으로 치우면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 태국 바트 교환을 제시하면서 계속
환율이 같다고 주장한다. 리엘을 싸게 바꾸려 한다.
참... 어처구니없는 리액션이라니.
결국 처음 보는 나를 픽업하러 온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2달러를 빌려서 주고서야 옷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새로운 여정.
씨엠립에서 25km 떨어진 학교에서의 생활이 펼쳐진다. 잠시 휴게소 같은 대형 마트에서 식사와 디저트를 마지막으로 문명세상에서 또 살짝 멀어졌다.
안먹어도 되는 맛
도착해서 마주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보내고 덩달아 기분이 살짝 업된다. 휴게소에서 엄한 스파이시 누들에 촌스런 아이스크림 따위 먹지 말아야 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경험이다.
학교에서의 저녁 식사는 정말 아주 깔끔하고 맛이 있다.
배불러서 망고만 먹다가 결국 몇 번에 걸쳐서 시식을 하고는 짧은 샤워를 하고 깊이 잠들었다.
모기장 안에 핑크빛 꽃이 가득한 매트리스에 몸을 누이고 스르르 곯아떨어져서 새벽에 깼다.
길고 깊은 잠이었고 아주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