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와 호불호가 분명한 이의 아이러니
물건과 사람을 선택하는 어떤 패턴
나라는 사람은 물건을 사는 데 있어서
약간의 충성도가 있는 고객이랄까?
한번 사용한 제품이 맘에 들면 그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의 다른 버전을 또 구매하는
나름 충성도 있는 고객이다.
예를 들면 화장품 중에서 페이스 오일을
챙겨서 바르는 편인데,
처음 산 게 신기하게도 오리지널 오일이
아니라 태닝용 오일 겸 페이스 오일인데,
그걸 유용하게 잘 쓰고 다음에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게(물론 내가 지정한) 같은 브랜드의 로즈 오일
그리고 마지막에야 기본인 오일을 사용하게 된 사람.
하나씩 쓰고 보니 아 나한테 잘 맞는구나. 이 제품을 다 쓰고 나면 또 다른 버전의
제품을 쓰거나 써 본 거 중 제일 맞는 걸 또 사서 쓰겠지?
그리고 세면대에 놓인 치약을 본다.
거의 다 쓴 치약과 새로 구입한 제품 역시 같은 회사에서 나온 다른 맛이다.
물론 마트에서 가장 착한 가격의 제품으로 고른 것이지만. 지난 몇 달간 사소한 소비는 유럽에서 생활한 터라
늘 가성비 갑 인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둘 다 만족해서 다음번에도 다른 맛을 한 번 사봐야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치약에서 얼굴에 바르는
페이스 오일까지 하나의 취향의 선택에도 하나의 결이 있는데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선택은 어떠할까?
인생에서 몇 번의 연애를 통해서 깨달은 건 남자 친구로 내 옆에 살다 간_ 지내다간
남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구석이 있거나
닮은 부분이 제대로 존재한다는 거다.
예를 들면 대체로 그들은 키가 컸다.
180 이상에서 190 이 넘는 남자들
나의 키와 비교하면 20 cm 이상 차이가 난다는 건데, 굳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내가 만난 남자들은
어쩐 일인지 다 키가 컸다.
물론 키작남에 비하면 키가 큰 게 좋을 수 있지만, 글쎄 그다지 크지 않은 나로서는
그들과 함께 일 때 왠지 늘 하이힐이나 웨지힐을 신어야만 할 거 같고
나의 우선 선호 조건이 아님에도 내가 만난 4~5명의 남자가 모두 키가 컸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그다지 크지 않았던 두 사람도 기억나지만 그들과는 영화적 취향이나 대화가 잘 통했던 기억 …
그리고 그들은 대체적으로 마초에 가까운 성격의 남자들이었다.
좋게 말하면 남자다운 것이고 어떤 이는
남자 라기보다 짐승, 동물에 가까울 정도로 본능적인 사람이었다.
그들은 남성성이 두드러진 사람임에도 그 안에 여성성이 존재해서 눈물이 많다거나 마음이 여려서 뭔가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은 꼭 내게 눈물을 보이곤 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 나 역시 남성적인 면모가 있고 어쩜 다른 여자들보다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그런 극단적인 모습은 남들은 미처 생각지 못할 부분이기에 만나면서 놀라웠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느끼기에 나를 미치도록 사랑해주었다.
요즘 유행했던 말로 하면 추앙까지는 아닐지라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이쁜 거처럼 때로는 공주님으로 혹은 그의 앞에서는
내가 이 세상 제일 이쁜 사람인 거 마냥
착각이 들도록 행동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그들을 사랑했고, 내내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떤
문제들로 인해 내내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들과 보낸 그 시절의 연애는
나를 충만하게 했고, 나는 가득 채워주었다.
그들은 구두를 선물하거나 꽃을 선물해주는 등 다정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고 요리를 잘하는 가정적인 모습도 있었고 식궁합이 대체로 좋았지만 한편으로 헤어질 때면
누구보다도 냉정했다.
#헤어질 결심
을 하면 누구라도 그러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더없이 다정했던 이들이기에 헤어진 뒤 오는 후폭풍이 늘 감당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인 거 마냥 나를 차단하거나 모른 체하다가 다시금 연락해와서 사람을 흔들기도 하는 이상한 심보들을 똑같이 지녔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나의 연애는 바로 한 번에 끝나는 법이 없다.
여전히 그들과 어떤 연이 어떻게든 닿아있고, 다시 손을 내밀면 그 끈이 조심스레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도 들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만큼 나나 그들이나 마음이 여리거나
끝맺음에 있어서 독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게 나는 그렇게 싫지 않다. (주변에 이걸 절대 이해 못 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야 그러려니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 어찌 무 자르듯 그렇게 툭
하고 잘라지겠는가?
다시금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잘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늘 보험처럼 혹은 마음의 안식처처럼 그들에게 돌아가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실제로 돌아간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들과 나는
좋은 섹스를 나눴다.
끝내주는 섹스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그러니까 계속 만남을 이어간 것이겠지만
처음부터 좋은 섹스나 케미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몸도 맞춰갔다. 그러면서 맞춰가는 과정이 좋았다.
이미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섹스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결국은 좀 더 맞으면 좋을 텐데 하고 바라게 마련인데
그들과는 그러했다. 섹스뿐 아니라 그들이 나를 만지는 태도도 꽤 닮아있다.
나의 다리와 발을 이뻐한다던지. 공공장소에서도 서슴없이 만진다던지 , 친구와 탄 차 안 조수석에서 뒤에 앉아 있는 내 발을 만진다던지 하는… 왜 모르는 사이인 그들의
행동이 그토록 닮아있었던 걸까?
애정표현에 있어서 거침이 없고,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나를 이뻐해 주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는 주로 그들의 표현을 받아주는 편이긴 했지만 그저 받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표현하는 게 귀여웠다.
이렇듯 생김 생김은 다를지 언정 나에게
다가와서 나와 사랑을 나눈 남자들의 일면만 봐도 이렇게 닮아 있다는 것은 나의 어떤 일관된 취향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을 은연중에 (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는 거처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라벨링이 이미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그 라벨을 나 혼자 알아보고 그들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여기서 라벨은 학벌이나 조건이 아니다. 바보같이 여우처럼 그런 걸 하면서 연애를 하지 못한 게 아직도 싱글인 이유 중에 하나인 건가? 하고 속으로 물어보는 내가 있지만 앞으로도 그런 것으로 내 옆에 있을 사람을 선택하거나 내내 함께 할 거 같지는 않다.)
다음에 내가 선택하게 될 남자가 어떤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닮아 있다면 아마도 난 주저 없이 그 라벨을 혼자 알아보고 바로 선택하겠지 하는 내가 있다.
*
이 글에 쓸데없는 오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나의 고약한 고집인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