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is Ku Nov 30. 2021

우기의 끝자락에 만난 人

      

비가 속절없이 내리던 우기의 끝자락. 그녀는 낡고 오래된 호텔에서 홀로 하룻밤을 보냈다. 더블룸조차 없어 트윈베드룸에 겨우 체크인한 그녀.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호텔이라 무거운 캐리어를 옮기느라 힘겨워하며 올라간 방은 심지어 4층. 에어컨도 없는 방이라 가격은 더 착하고 천천히 돌아가는 팬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이다. 뭔가 레트로 한 분위기의 414호. 옥빛 가구가 놓인 트윈베드룸. 조그만 화장대와 카키색의 빛바랜 커튼이 있는 방. 그러고 보니 화장실 문도 옥색이다. 이제는 색이 바래서 침침한 느낌도 나지만 원색적인 톤앤톤의 방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빗소리는 밤새 계속되고 피곤해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자아의 발견이나 인생의 거대한 무언가를 찾아온 게 아니다.

그저 쉼이 필요한 시기에 방콕행 비행기를 탔고 치앙마이가 좋다던데 나도 한번 가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 발길 따라 이끌려 간 곳이다.



그즈음 치앙마이 한 달 살기 붐이 불어서일까? 그냥 문득 가고 싶어졌다.

별다른 준비나 정보도 없이 바람 따라 그곳으로 가게 된 터라 큰 기대 또한 없었다. 이 낡은 호텔에서의 하룻밤 역시 도착하면서 어쩌다 발길이 닿은 곳이었다. 여전히 비가 끝도 없이 내리는 오후였지만 난생처음 와 본 도시에 와서 호텔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마시는 그녀지만, 치앙마이에서 문득 누군가 다양한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현지 meet up을 해보기로 하고 무작정 모이는 장소만 확인하고 가보기로 한다. 막상 가본 그곳에는 러시아, 중국인 두 커플이 약속한 듯 나와 있었다. 그리 짜려고 해도 어려울 텐데 러시아 남자 둘, 중국 여자 둘 그렇게 각각의 커플이 나온 것이다.


그들 역시도 이날 처음 만난 사이였고, 그 사이에 그녀만 멀뚱히 끼여서 함께 로컬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한참을 이야기 나눴지만 뭔가 교집합을 찾기엔 무리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어지는 카페 자리에선 중국인 그녀들은 중국어로 대화하기에 바빴고, 처음 들어보는 지명의 러시아에서 온 푸른 눈의 그들은 둘 다 여행 중에 그녀들을 만나게 되었고, 한 커플은 호주로의 이주를 준비 중이라 하고, 또 나머지 커플은 현재는 태국에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유럽으로 갈 거라고 한다.      


한 자리에서 만난 러시아, 중국인 커플의 조합이 뭔가 신기했고 출신이 어디든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꾸고 또 그리 살아가고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어딘지 모를 위화감도 슬쩍 전해져 왔다.

한참 어린 그들도 그들이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제대로 알고 진행하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 그녀는 도대체 자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왜 준비 하나 없이 이토록 비만 속절없이 내리는 우기에 왜 굳이 북쪽 마을 치앙마이로 온 거지?

그리고 왜 교감도 없는 이들과 멍하니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뭔가 괜한 씁쓸함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맥주나 한잔하러 가자며 그녀에게도 권했지만, 심야 버스로 도착해서

피곤하다며 정중하게 거절하고 숙소로 비 오는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서 돌아갔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처음 만난

그 커플들처럼 그렇게 그녀에게는

뭔가 슥~슥~ 내리는 비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스치는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습한 외로움이 엄습해왔고 때마침 호텔 로비에 도착하여 와이파이를 연결하자 바로 메시지가 온다.

한참 오래전 헤어진 그에게서의 페이스북 메시지의 알림음이 뜬다.

하지만 그의 연락조차 이제는 더 이상 반갑지도 그립지도 않은 그저 그런 스팸 메시지처럼 여겨지고 과거의 쓰디쓴 씁쓸한 기억만 복기시킬 뿐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부터 온 메시지 같아서 걸려온 전화도 무시하고 꿉꿉한 방에서 울음을 거둔 상태로 음악을 들어보려 애쓰지만 음악도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저 방을 나가서 바람을 쐬야겠다는 생각 끝에 복도로 나가보지만 피곤해서 계단을 다시 내려갈 엄두가 들지 않는다.              

이 낡은 방에서 어떤 로맨스를 꿈꾸기엔

그녀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호텔 복도로 나왔지만, 적막만이 가득하고 의자에 잠시 기대어 쉴까 하는 찰나, 같은 층의 금발의 어린 여자가 울면서 내려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뒤이어 덩치 큰 사내가 그녀를 쫓아가려다 다시 호텔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아마도 그들은 다퉜을 테고 그녀는 어딘가로 가서 한참 울다가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돌아와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한참을 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더 이상 복도에 머물기에 나 역시 너무나 피곤하여 방으로 돌아가 기절하듯 침대에 몸을 누이자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재워 주었고 여행 와서 그 어떤 날보다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그들을 다시 마주쳤을 때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멍하니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그러하다.


지난밤 어떤 일이 있었든지 아침은 또 밝아 오고 또 삶은 계속된다.         

그녀는 다음날에도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조용히 돌아가는 팬의 규칙적 반복음이 계속 글을 쓰라며 종용하는 거처럼 여겨졌고 비가 계속 쏟아져서 어딘가 가봐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책을 보며 음악을 들으며 쉬어야지 그리고 비가 옅어지면 동네 산보 가야지 그렇게 걷다가 커피를 마시고 책방에 가야지 하고서.

그녀만의 치앙마이 소소 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리스트가 가득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우기의 끝자락 치앙마이에서 남은 일주일.

그녀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지게 될까?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도 하고 싶다.      



“ 애쓰지 마요.

무언가 꼭 해야 한다고,

봐야 한다고 스스로 옭아매어서

 정작 지켜야 하는 마음을 돌아봐요.

  그리고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길 바랄게요.

  간절히 바란다면

  그 길 끝에 가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해요. ”     

작가의 이전글 Life is a Long Journe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