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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is Ku Nov 28. 2021

Life is a Long Journey

문득 내가 머무는 곳에서 다른 도시로 순간 이동하듯 어느 도시의 골목길에 서 있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있다.

생각의 끝에 머무는 곳이 내가 미처 떠올리지도 않은 어느 도시의 골목길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건 어떤 핑크빛 만개한 꽃 한 송이로.

닮아있는 나무 한 그루로.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하고 나는 어느새 그 길 끝에 서 있다.


그곳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트램이 지나는 후미진 골목이기도 하고. 필리핀 세부 시티의 어느 호텔 앞. 조명이 은은한 골목 안이기도 하고 태국 치앙마이 올드타운 안에 위치한 화덕 피자가게 앞이기도 하다.              

그 골목 끝에 이르러서야 그 도시가 어디인지를 마침내 깨닫게 된다.

한참을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상태로 헤매다 걸어가는 내 모습이 보이는 순간 자연스레 그곳에서 서성이는 나와 그곳에서 만난 이들이 자연스레 소환되고 그때 그곳에서의 기억이 음악과 함께 자동 재생된다.     


그 전에는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한참을 모르는 채로 그 거리를 서성인다. 그러나 이미 예전에 걸어 본 거리이기에 두렵거나 무서운

감정 대신 오히려 친근하고 익숙하다.

꼭 그 거리 끝에서 누구라도 마주칠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기도 하지만 그러는 찰나,

이내 현실의 나로, 나의 도시로 돌아오기

마련이라 그 시간은 아주 짧다.     

’ 아, 지금 여행 중 아니지? ‘ 하고선 깨닫는 순간 그곳이 너무 그리워져서 다시 그 도시로 뛰어들고 싶지만, 그 골목으로 쉬이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도시와 도시가 닮아있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맞닿아있거나 자매도시로 억지로 이어진 거 말고 도시 자체로 이어진 듯한.

예를 들면, 샌프란시스코와 나의 도시, 부산 그리고 리스본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도시들의 랜드마크 같은 다리가 비슷하고, 언덕이 많고 물 가까이에 있는 도시라는 점 상당히 큰 글로벌 도시라고 할 수는 없어도 누구나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점도 그러하다.

부유하는 내면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다양한 특색을 가진 도시들이지만, 그 도시들이 내뿜는 어느 일정 부분들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놀라게 되곤 한다. 그런 도시를 의도치 않게 연이어 여행하다 보면 더욱 그런 감정이 짙어지게 되고, 그 공통점을 발견하고 연결점으로 지도에 선을 긋고 도형을 만들어 내게도 된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 고유한 특색을 가진 도시임에도 이전에 여행한 다른 도시와 묘하게 닮아있는 점은 없는지 살피게 되고 그 도시와 공통점을 찾으러 여행하는 사람 마냥 닮은 점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마는 어떤 집요함을 발휘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여행은 관광지에서의 사진 한 장 보다 그 도시로 스며들어 살아보기 즉 로컬인들과 어우러지며 살아보는 형태로 많이 진화되고 있다.


로망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 버킷리스트가 있는 도시에서 수개월 지내보기 그러다

그곳이 너무 맘에 들고 잘 맞아서 눌러앉아 살기 그러다 그곳에서 정말 꿈에 그리던

운명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라도 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이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지나온 삶을 인정해주면서 앞으로 삶을 함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어떤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전해져 온다.




삶은 페어리테일(fairytale) 속 엄한 우연의 연속이나 드라마 속 극적 상황으로만 점철되어있지 않지만 때로 예기치 않은 운명의 힘으로 그 순간 그들이 바로 그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기게

되기도 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쁨과 닮아있다면 과장일지 몰라도 그만큼 그 우연한 만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르기에 삶에서 자주 오지 않는 순간이고, 그러기에 더 소중하고 그런 순간이 막상 온다면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가 보인다.         








대만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다.

해변으로 갈까?

거대한 사찰이 있는 산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평소와는 다른 선택으로

산을 선택하고 모르는 이들과 택시를 셰어 하고 가까스로 도착한 그곳.

명성대로 절은 거대했고, 볼거리도 많고 천천히 하루 코스로 돌아보기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독일에서 혼자 여행 온 그를 만난 건 한참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설레는 추억이다.

어느새 친해진 우리는 대만 여행 일정 내내 함께 여행을 다녔고 다른 도시로 갔던 그는 나를 만나러 이미 여행한 타이베이로 기꺼이 다시 와 주었다.     


긴 여행을 혼자 하다 보면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혼자 식사도 하고 셀피도 찍고 하지만 잘 맞는 누군가와 같이 다니게 되면 이내 떨어져서도 그 상대가 미친 듯이 그리워진다. 오래전 알고 지낸 사람 마냥 여겨지고. 사랑에 빠진 듯한 체류성 감각이 이성을 마비시켜 자신이 이미 짜 놓은 일정 정도는 쉬이 포기하고 이미 여행한 곳으로 단지 그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게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운명적 만남이 아닌가 한다.      






그 뒤로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고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 독일인 친구와는 자주 다정한 인사를 나누면서 연락을 하고 있다.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어느 날 아무런 소식도 없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릴지 아니면 어디선가 훅~ 하고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그런 아릿한

만남과 추억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그저 여행에서 만나 단지 며칠을 함께 보낸 그 누군가가 세상의 저 반대편 도시에서 살고 있고 서로를 가끔 그리워한다는 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거 아닐까?      

앞으로의 관계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가끔 그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고, 함께 여행했던 그 며칠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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