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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n 30. 2020

그래도 공연은 계속 된다!

#013 열 세번째 이야기

Algarve 쪽으로 일단 옮기는 것이 정해지고, 이보다 조금 더 미리 떠나는 Julia와 India 가족들이 떠나기 하루 전날이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부산해 보였고, 정오쯤 되자, 어른들에게 오후 3시에 공연이 있을 예정이니,  Tomas와 Daniela의 캠핑카 앞으로 모여 달라고 공지를 알렸다. Tomas와 Daniela의 캠핑카 뒤쪽에는 예전에 누군가가 공연을 했을 것만 같이 바닥이 깔려져 있고, 밤에 빛을 밝혔을 작은 색 전등불이 나무에 걸쳐져 있는 작은 극장이 있었다. 2개월 전에 이곳을 발견 했었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열 예정이었었는데, 하필 비가 막 쏟아지는 바람에 공연이 취소가 되었었다. 그러고서 2개월이 지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공연 소식이 마지막 떠나는 시점에 다시 들려왔다.


공연의 내용과 배경 음악, 연출, 순서, 공연 팀의 이름까지도 모두 아이들이 정했고, 사회를 보는 Daniela가 아이들이 불러준 공연의 내용들을 받아 적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안내를 해주기로 하였다.  오후 3시에 모인 어른들을 India가 간단한 환영 인사말과 함께 공연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무 뒤(무대 뒤라고 할 수 있다.)에서 속속이 숨은 아이들의 머리가 보였다. 관객들에게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한 뒤, 모든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서 “Fischia il vento (The wind of blowing)"팀의 첫 무대의 장을 열었다.  


“Fischia il vento (The wind of blowing)"팀의 공연 장면, Odemira, Portugal


공연의 첫 순서로, 간단한 안무를 곁들여서 아이들이 부른 노래는 내가 어릴 적에 오빠와 종종 불렀었던 노래 였다. 원곡은 러시아의 민요로 “카츄사 Katyusha” 인데, 이탈리아 버전으로도 있나 보다. 내 기억으로 한국 가사는 이러 했다.


“능금나무 배나무 꽃 필 때
 아지랑이 강둑에 필 때
 순희야 보고픈 나의 순희
나비처럼 내 곁에 와 주렴. “


원곡인 러시아의 가사를 찾아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는데, 이탈리아 버전 또한, 완전히 다른 내용의 가사였다. 이는, 세계 2차대전 독일군들에게 점령당하는 마을들을 구하기 위해서 평민 출신의 이탈리안들이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웠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며 부른 노래이다. 이탈리아 가사는 아래와 같다.


“Fischia il vento e infuria la bufera,
바람과 폭풍우가 불고,
scarpe lotte e pur bisogna andare
신발은 망가졌지만 가야 합니다.
a conquistare la rossa primavera dove sorge il sol del’avvenir.”
미래의 태양이 떠오르는 붉은 봄을 정복하기 위해서

아이들도 다가오는 이별을 직감하고 있는 걸까? 러시안 노래의 슬픈 단조 곡조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멍하게 했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전진해서 가야하는 우리들의 삶의 여정을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다같이 “카츄사 Katyusha” 노래를 부르는 장면


다음 순서로는 India와 Mailo의 따로 노는 듯한 댄스 공연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고, 그 다음에는 Mailo의 매직봉 쇼를 보여주었다.  아들 율이와 Ayrin의 마술 쇼는 이게 마술 쇼인지 코믹 쇼인지 헷갈리게 했다. 다음에는 Nina와 Federico의 차력쇼가 이어졌는데,  깜짝 손님으로 관객으로 바라보고 있던 가이아를 초대하여 공연에 참가시켰다. India의 사랑과 하모니, 평화에 대한 장장 5분짜리 일인 연기는 그 대사와 몸짓, 힘있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인상깊었다. 또한, 이제 각자가 자신의 길을 떠나감을 인식하고, 이별을 준비 하듯 아이들은 “카츄사 Katyusha” 노래를 공연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반복해서 불렸고, “카츄사 Katyusha”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 다 같이 춤을 추는 것으로 공연을 마무리 하였다.  


“카츄사 Katyusha” 음악에 맟추어 공연을 마무리 하는 “Fischia il vento (The wind of blowing)"팀


보통, 아이들의 공연을 보면,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실력을 과소 평가 한다. 모든 공연의 순서와 대사,  연출, 의상들을 대신 떠 맡아서 해주는 게 보통이다. 마치 아이들 스스로는 할 수 없다고 대놓고 이야기 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많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마음에 닿지 않는 시 낭송이나 노래들을 외워서 크게 외쳐 스스로 만족하는 공연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어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연을 올려낸다. 어른들이 만족 했을 때, 비로소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이들은 한때 공연 의상을 제작을 했었던 나에게 부탁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연 음악을 고르는데 음악 엔지니어인 Tomas나 Grant에게 부탁 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고, 스스로 모든 걸 계획하고, 기획하여 무대에 올렸다. 보여지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기를 발휘하여 스스로가 즐기고 이를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이 흥겨워지게 해주는 공연을 아이들은 만들어 냈다. 그렇게 아이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세상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  


그리고 “카츄사 Katyusha” 의 이탈리안 노래 가사처럼, 아이들은 계속해서 전진해간다.

그리고 공연은 계속 되어진다! 


우리의 커뮤니티 집시의 행진도 계속 되어진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Fischia il vento (The wind of blowing)"팀의 공연, Odemira, Portugal


https://www.youtube.com/watch?v=tYMlB333i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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