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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an 23. 2019

집시 스타 Farruquito의 아들 VS 내 아들

여섯번째 플라멩코 이야기

Farruquito

처음 Farruqito를 알게 된 건 YouTube 영상을 통해서였다. 처음 본 그의 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로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절제하며 즐기는 모습은 가히 야생 원숭이 같았다고나 할까? 그는 집시 집안에서 태어나 그의 가족들은 모두 유명하다. 보통, 집시 집안에서는 자식 중 재능 있는 하나를 가족 모두가 밀어주는데 반면, 그의 형제들의 재능은 Faruqito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기에는 너무나도 빛이 났었다. 



그의 동생 Farru와 Carpeta 모두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플라멩코에는 문외한이었던 나의 남편조차도 처음으로 직접 본 Farru의 공연을 보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었다. 플라멩코를 가슴으로 맞이한 처음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Farru의 진중한 눈빛과 자세, 절제되고 신사적이면서도 격정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절대적 존재감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Carpeta는 보통 그가 만 6세였을 때 했던 Fin de Fiesta(본 공연이 끝나고, 플라멩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와서 한 명씩 나와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자리를 의미한다.)의 유튜브 영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름 돋을만치 무섭게 잘 추는 겁 없는 어린아이로. 그런 그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 뉴욕에서도 공연과 플라멩코 워크숍을 도맡아서 한다. 들리는 말론, 어릴 적 Faruquito를 뛰어넘는다고들 하니 장차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Farru의 절제되고 신사적이면서도 격정적인 퍼포먼스와 절대적 존재감, Carpeta의 광적으로 피가 솟구치게 하는 열정적인 몸놀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 중 Farruquito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Farruquito의 춤을 보고 있으면 조율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그의 천부적이고 야생적인 본능과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는 몸짓, 심장을 최대치까지 두드리는 그의 발놀림, 어디에서 쥐고 어디에서 풀어야 할지 아는 본능적인 몸놀림 때문이다. 그냥 타고났다고나 할까?  

성장한 Carpeta(왼쪽), Farru(중간),  Farruquito(오른쪽)이 TRES FLAMENCOS 공연을 준비하며 인터뷰 홍보하는 사진. 

이런 Farruqito를 직접 처음으로 본 건, 2010년 비엔날레 플라멩코의 어느 공연장에서였다. 공연이 끝나고 제일 먼저 나온 덕에 우연히 보게 된 Farruqito와 그의 동생 Farru를 반경 2미터 앞에서 볼 수가 있었다. 실제로 본 그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불과 170 미터도 안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작은 키지만, 머리 비율로 따지면, 비율이 아주 잘 맞아 영상으로 보면 훨씬 더 커 보이는 것 같다.  


두 번째로 Farruquito를 직접 보게 된 건, 첫째 아들 율 Yul이가 만 2살 반이었을 때이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무더운 8월 말의 세비야, 비엔날레 플라멩코 Bienal Flamenco Sevilla를 대비해 새로운 의상들을 가지고 Triana에 위치한 한 플라멩코 스튜디오를 찾아갔었다. 우연히도 그곳에서 Farruqito의 수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바로 옆에는 그의 아들인 Moreno가 중력을 거르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 아들과 거의 같은 나이인데, 이 아이의 발은 바닥에 붙어있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옆에는 Farruqito의 아내가 있었는데, 나는 충격받은 얼굴로 그의 아들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나의 아들과 불과 3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다니!!!! 그러고서 뒤를 돌아본 내가 발견한 것은, 유모차에 누워 그 더운 8월의 세비야의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다가 지쳐 코를 골며 자는 나의 아들이었다!!!!

 

공연장에서 날아다니는 Faruqito의 아들 Moreno (왼쪽)와 바다에서 날아다니는 나의 아들 율 Yul (오른쪽)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아들이 가진 모든 조건들과 재능이 부럽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며 다시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게 행복일까? 재능만 있다면 가족들의 모든 서포트 속에서 커다랗게 커갈 수 있는 Moreno. 주변의 모든 이들의 칭찬과 격려, 강도 높은 연습 속에서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이 아이는 정말 행복할까? 그 나이에 하고 싶을 여러 가지 놀이라든가, 친구들보다, 여러 어른들과 함께 더욱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항상 더 위를 바라보며 달릴 이 아이. 언젠가 더 성장해서 커다란 아빠의 그늘에서 나와 더욱더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 더욱더 전진해야 할 이 아이의 숙명. 과연 그 나이에 누려야 할 어린이로서의 시기를 건너뛰어 버리는 이 아이는 행복할까? 자신의 미래가 이미 선택하기도 전에 그려져 있는 이 아이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까? 행복의 척도는 물론 개인에게 있으니, 감히 내가 누군가가 행복할지 어떨지를 결론지어 버릴 수는 없다. 또한 이 집시의 아들과 평범한 엄마와 이탈리안 요리사 아빠 사이에서 나온 나의 아들을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Faruqito의 아들이 공연장에서 날아다니듯이, 내 아들은 숲에서, 바다에서 날아다니고 있으니까. 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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