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플라멩코 이야기
플라멩코 춤을 추던 시절, 연습실을 빌려 혼자 짱밖혀서 그날 배운 플라멩코 동작을 몸에 익히기 위해 녹음해온 수업시간의 발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고 반복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모든 댄서들이 그렇겠지만, 혼자서 혹은 그룹으로 함께 맞춰가며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최대치까지 자신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그렇다면, 플라멩코 프로들끼리 맞추는 리허설은 어떨까? 우연히도 Fyty를 따라 Jerez 헤레스의 한 따블라오 Tablao (작은 바)에서 하는 공연에 가는 기회가 있었다. 바일라오라(댄서)는 Jerez 헤레스 출신으로, 플라멩코 춤 대회에서 우승 경력이 있기도 한 Soraya Clavijo였다. 그녀의 남편이자 아이 아빠인 Joselito Fernandez가 빨마 palma(박수)와 까혼 Cajon(사각형 모양의 드럼이라 생각하면 된다)을 맡고, fyty가 기타, 헤레스 출신의 Manuel Soto가 깐떼 cante(노래)를 맡았다.
처음 헤레스에 도착해서 Soraya를 만났을 때에는 무언가에 무척 화가 나 있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녀의 어린 아들이 열이 많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과는 별거 중이며 한 일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나에게 처음으로 대뜸 물었던 질문이 "어디 출신이냐 “였던걸 보니, 그녀 생각에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일본 여자 친구를 감히 헤레스의 본거지까지 데려왔다 생각했던 거 같다. 다행히 나는 한국 여자였고, 나의 한마디는 그녀의 경계를 모두 무너뜨렸으며, 저녁 공연이 있을 따블라오에 갈만한 우아한 옷까지 빌려주었었다.
프로들이 하는 연습 ensayo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1시간 동안에 이어질 공연을 위한 연습이었는데,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춰보는 게 아니라 몇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댄서에게 맞춰주었으면 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맞춰갔다. 기타, 깐떼 cante(노래), 바일라오라bailaora(댄서), 빨마 palma(박수)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프로이므로 척하면 척이었다. 마치 항상 함께 맞춰온 듯이 그들은 하나가 되어 멋진 작품을 그 짧은 시간 안에 강도 높이 만들어냈고, 드디어,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Soraya. 그녀는 진정 프로였다. 무대 뒤에서 울지언정, 무대 위에서는 당당하고 존재감 넘치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던지고, 한 서린 그녀의 몸짓, 모든 슬픔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무대에서 내려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자기 괜찮았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그보다 더 괜찮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진심으로 대답했었다. 물론, 공연이 끝나고서 다시 돌아가는 길, 안달루시아의 이 뜨거운 피를 가진 부부는 차에서 내려 한껏 싸웠고, Fyty는 미안하다며 곤란한 얼굴을 내비쳤었다.
시간이 흘러 Soraya 또한 헤레스에서 세비야로 옮기고, 우리가 다시 만난 건 Juan Polvillo의 스튜디오에 의상들을 넣으러 갔다가, 수업을 진행하던 그녀를 만났었다. 서로에게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그녀는 다시 남편과 함께 지내며 여전히 정기적으로 일본에 가서 수업을 했고, 나는 지금의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해 배가 불룩 나와있었다. 누구의 아이냐는 그녀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커다랗게 웃으며 Fyty는 아니라고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