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여덟 번째 이야기
나의 이탈리아 요리사 남편은 시장이나 슈퍼에 가면 함흥차사이다. 혹여나 그의 여동생(소믈리에이며 그녀의 프랑스 남편과 독일의 뮌헨에서 프랑스 레스토랑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다.)과 함께 가기라도 하게 되면, 나머지 우리 가족들은 이 둘을 빼놓고 일정을 생각한다. 그 정도로 시장은 나의 이탈리아 요리사 남편의 활력소이자 쇼핑의 진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쇼핑 지르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히고 나의 눈과 입과 배를 호강시켜주니까, 나는 아주 너그럽다.)
여기 포르투갈에는 1주일에 한 번씩 장이 열린다.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키운 농작물들을 가지고 오는 농민들과의 직거래! 0km 시장인 것이다! 그래서 계절마다 달리 나오는 과일들과 야채들을 볼 수 있고, 그 계절에 맞는 음식들을 자연스레 먹을 수 있게 된다. 첫째 아들이 가족들을 위해서 일하여 직접 벌은 용돈으로 처음 산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서 파는 케이크,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직접 가꾼 올리브로 직접 만든 올리브들,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함께 운영하는 야채, 과일 가게 등등,,,,호기심 많은 우리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은 새로운 과일이나 야채가 나올 때마다 물어보고, 그 자리에서 칼을 빌려서 까지 바로 시식해보고, 과일 값이 밥값 만치 나오는 우리 두 아이들에게는 이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시식하는 과일들로 아침 식사가 어지간히 해결되곤 한다.
이렇게 직접 상인과 소비자가 만나지는 장소. 이탈리아 밀라노만 가도, 보통, 시장에서도 과일이나 야채들을 마음대로 만지며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인이 집접 골라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게 일반화되어 버렸는데, 여기 포르투갈에서는 아직도 직접 소비자들이 만져보고 골라서 담을 수 있는 인정이 남아 있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또한, 동양인인지라 기억되기 쉬운 나의 외모상, 한두 번만 지속적으로 가도 단번에 기억해주고 알아봐 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맛난 과일들이나 올리브를 맛볼 수 있도록 선물로 아이들 손에 직접 쥐어 주시고 들 한다. 이게 시장을 가는 진정한 맛이 아닌가 싶다. 그냥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가게 하나하나에서 사는 물건들을 질과 가격들을 비교해가며 구입하고, 상인들과 만나 이야기해가며 웃어가며 사는 것. 이렇게 우리들은 혼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는 걸 일깨워 준다.
이런 신선한 식재료와 함께 포르투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Vinho verde! 직역하면 “녹색 와인”인데, 포도 품종으로 따지기 보단, 만든 시기가 1년 정도 된 젊은 와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거의 화이트 와인의 색을 띠는 게 대부분으로, 가볍게 식사와 함께 하기에 적당하다.
시장에서 장 봐온 이 신선한 식재료들로 준비된 볶고, 삶고, 버무린 요리들은 어떤 향신료도 필요치 않고, 그 음식 고유의 맛과 향이 그대로 입 안 가득 채워짐과 동시에 우리의 가슴 또한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다. 12월 겨울에 발코니에서 반팔 차림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오늘, 신선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