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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Feb 07. 2019

맨발의 아이들

#004 네 번째 이야기

아직 따뜻하다고 하기엔 좀 쌀쌀한 2월의 어느 날, 숲 속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Milan, Italy

세계 어디에나 옷을 한 겹 더 입히려는 어른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라도 더 벗어 버리려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옆에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몸의 온도는 우리 어른들의 몸의 온도보다 한 5도는 더 높은 것 같다.  이를 이해하는데 나와 나의 남편 또한 2년은 걸린 것 같다. 1월 말에 첫아들이 태어났고, 우리는 너무도 작은 이 아이를 꽁꽁 싸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서 살았기에, 1월 말이라고 해도 밖에 나가면 영상 15도는 족히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찬 기운이 들지 않았으면 해서 언제나 조심스러워했었다.  


아이들이 만 2살이 될 즈음, 나의 품을 벗어나 뛰어다니고,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점차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감에 따라,  자신의 몸의 온도에 따라 옷을 더 입거나 덜 입는 걸 스스로 결정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나의 둘째 아이를 보면, 밀라노의 12월, 1월에도 가끔 팬티 바람에 반팔 티셔츠에 부츠만 신고 신나게 논다.  이 꼬마 아가씨를 독사진으로 찍으면 여름이라 착각할 수 있겠지만, 좀 와이드 한 샷으로 찍으면 주변인들의 옷차림에서 한 겨울임을 알 수가 있다. 

어디서든 신발과 양말을 벚어젖히는 둘째 딸, Aljezur, Alentejo, Portugal


이런 둘째 아이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사계절 내내, 바다든, 숲이든, 놀이터에서든, 카페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어디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발과 양말을 벚어젖히는 북유럽 바이킹족의 피를 이어받은 금발 꼬마다. 이 아이가 우리 집이든 친구들 집이든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발과 양말부터 벗어던지는 것이다. 마치 이렇게 갑갑한 물건들을 왜 나의 몸에 걸치게 하느냐는 듯 항의하는 몸짓이다.  


마음이 내키면 훌렁 벗고 물속에 뛰어드는 첫째 아들, 12월 말 포르투갈의 바닷가에서, Armacao de Pera, Algarve, Portugal

아이들마다 성향이 다르듯, 둘째 아이가 덥다며 옷을 다 벗어 젖히는 반면, 첫째 아이는 외출할 때 입은 옷 그대로 돌아온다는,,,,추워도 더워도 안 바꾸는 성향인데(물론 보통 사람들보다 옷 한 겹을 적게 입고 다니긴 한다.) 가끔 원하는 목표가 생기면 예상을 뒤엎어 버리곤 한다.  예를 들면, 올해 첫해 첫날 남부 포르투갈의 날씨가 아무리 따뜻해도 바다에서 수영하기엔 언제나 차가운 대서양. 이런 바닷물에 옷을 훌렁 다 벗고 물에 뛰어든다.  아니면 정말 추운 저녁에도 밤나들이 하는데, 재킷 없이 나돌아 다닌다. 정말 추울 거 같아서 이 아이의 손을 잡아 보면, 재킷을 입은 나의 손보다도 더 따뜻해서 할 말이 없어진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경향을 가진 이 두 아이들의 공통점은 맨발이다! 


어떻게 아이들을 맨발로 돌아다니게 놔두냐고 따지듯이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아이들이 맨발로 다니는 걸 탓할 수 없는 처지임은 마찬가지였다.  21살 처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로마에서 신고 다니던 신발이 망가져서 그냥 신발도 없이 맨발로 로마의 밤거리를 걸어 다니던 나였지 않은가!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기겁을 했었다. 그러고서 강남에서, 함께한 여행 멤버들이 다시 만난 날에 하필이면 프라하에서 다시 구입했었던 신발이 망가졌고,  또다시 강남 한복판에서 내가 맨발로 다닐까 봐 기겁해하며 내 신발을 들고 고쳐 주러 수선집을 뛰어다니던 친구들이 기억이 난다. 물론 강남 한복판에서 맨발로 걸어 다닐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이미 나의 친구들은 내 신발을 들고 날아갔었다.  


아,,,,맨발이 주는 그 자유로움,,,,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풀잎, 모래, 흙이 가져다주는 대지와의 직접적인 대화. 이를 어떻게 마다하고, 이를 어떻게 차단할 수 있단 말인가!   

 

11월 말 장화와 양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놀고 있는 둘째 딸과 숲 속 유치원 친구 Leo, 숲 속 유치원 Base Camp, Milan, Italy


이렇게 맨발이 되려면, 역시 환경이 주는 요소 또한 중요할 것이다. 일단, 이 아이들은 일 년의 6개월은 기본적으로 바닷가에서 살면서 하루 웬 종일 바닷가에서 보낸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신발을 신고 있는 시간보다 맨발로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또한, 바닷가라는 특성상, 아이들이 맨발로 돌아다닌 들, 도시에서 처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머지 6개월 중 가족끼리 여행 다니는 기간을 뺀 나머지는 숲 속 유치원에서 뛰어다니기에, 숲에서 맨발로 다니는 걸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그게 한 겨울일지라도,,, 실제로 몇몇 아이들은 겨울에도 장화, 양말을 모두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어다니곤 한다.   


이 아이들이 갖는 이 맨발의 자유를 사랑한다. 존경한다. 부러워한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이 아이들을 오늘도 사모한다. 


새해 첫날 차가운 바닷가에 옷 훌렁 벗고 뛰어든 첫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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