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arling Feb 16. 2019

꿈에 그리던 섬 Arcores,,,,무뎌지지 않는 심장

#005 다섯 번째 이야기

유난히 지도를 좋아하는 첫째 아들 율과 함께 책과 지도를 읽고 있는 아빠 Giorgio, Lisbon, Portugal


우리 가족의 여행은 결코 화려한 5성급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 년에 1~2번 크게 여행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내키면 그냥 무작정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미리 계획해서 떠나기도 하고, 남편이 일하는 틈틈이도 어떻게든 날을 비집고 만들어서 떠나거나 남편의 6개월간의 일이 끝나면 어디로든 우리 가족들은 떠난다.


어쩔 때에는 정말 돈 안 들이고 2박 3일을 다녀오기도 하고, 어쩔 때에는 예산을 잘 짜서 일주일이나 열흘, 혹은 한 달씩 여행을 떠난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일상생활에서 조금 특별한 외출 같은 것이기에 무리하게 예산을 잡는다거나 너무 부담스럽게 호화로운 곳은 우리의 마음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특히, 여행을 가면 보통 낮에는 밖에서 현지 음식들을 맛보고 저녁은 현지 시장에서 구입해온 재료들을 가지고 나의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이 마법 같은 요리들을 순식간에 만들어주므로, 우리는 숙소를 렌트할 때에도 꼭 부엌이 있는 곳을 예약한다. 아이들이 둘이므로 작은 호텔방보다 여기저기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놀 수 있도록 보통 집이나 정원이 딸린 집을 빌리곤 하는데, 2박 3일 이상일 경우에는 Airbnb를 통해서 집을 빌리고, 1박 2일이거나  일정이 바뀌어서 급하게 당일에 숙소를 구해야 할 때에는  그냥 Booking. com을 이용하곤 한다.


처음 Airbnb가 생겼을 때만 해도, 상업적인 이윤보다, 현지인의 숙소에 머물면서 여행지를 더욱더 가깝게 알 수 있는 기회와 더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서 생겨났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돈 많은 이들이 자신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집을 이용해 집을 그냥 렌트해주고 월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데에 중점을 두곤 한다. 그럼으로써 많은 관광 도시들이 비어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우리도  아이가 둘이다 보니, 남에게 피해가 가거나 눈치 보는 게 싫어서 집 전체를 빌려 내 집처럼 편히 있기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가끔 아직까지도 예전과 같은 의미로 여행객들과의 교류를 마다하지 않는 호스트들을 만나는 기회들도 꽤 있다. Acores 섬에서가 그랬었다.


보통 남편의 포르투갈의 레스토랑들은 부활절 주와 그다음 주가 지나가면 꽤 한가해진다. 나의  기특한 이탈리안 남편은 동업자와 돌아가며 이 시기에 휴가기간을 만들어낸다. 어차피 한가한 기간에 불필요하게 모두가 일할 필요가 뭐가 있냐는 것이다. 2년 전, 그렇게 일부러 일주일 휴가 기간을 우리는 Acores라고 하는 섬으로 떠났었다.  Acores는 포르투갈령으로 포르투갈과 아메리카 중간 즈음에 위치한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곳으로, 그중 우리는 São Muguel이라 불리는 섬에 갔었다.  Acores를 알게 된 계기는 첫째 아들이 갓 태어났을 무렵, 남편이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이탈리안 가족의 블로그에서였다. 이 이탈리안 가족은 직장, 집, 자동차 등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Acores 섬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 많지 않은 인구가 사는 이 조그마한 마을에 집 밖으로 나가면 사방이 푸른 자연으로 둘러싸인 동화 속에서 나올만한, 모두가 꿈에 그리는 그런 곳에 집을 마련하고, 아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조그만 커뮤니티,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적게 벌어도(조그만 피자집을 열었다고 했었다.)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돈보다 시간을 버는 그들의 삶에 많은 영감을 받았었었다. 그래서 언젠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São Muguel, Acores, Portugal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한 Acores의 첫인상은 마치 스위스의 언덕들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사방 어디를 봐도 나무들이 있고, 다채로운 색들의 꽃들이 만발하며, 풀들이 모든 대지를 덮고 있으며, 소들이 자유롭게 방목되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도 휴화산이 존재하는데, 이로써 지진을 막기 위한 정책으로 꽃과 풀, 나무들을 심어야 한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이 섬에서 아스팔트 길은 정해진 커다란 길에서나 볼 수 있고,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들이 만들어졌다.


화산의 분화구가 호수로 변하여 나무들과 풀과 꽃들이 만발하다. São Muguel, Acores, Portugal

 

휴화산이 보인다는 정상에 올라가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아 만 3살 조금 넘은 첫째 아들 율이와 함께 걸어가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언제든 주변에 보이는 자연물들을 채집하거나 이것들을 이용해서 노는 걸 좋아하는 내 아들은 어렵지 않게 자신이 좋아하는 지팡이를 가지고 즐겁게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가며 우리는 노래도 부르고, 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가기도 하고, 조금 지쳐서 율이가 짜증 낼 때면 쉬면서 챙겨 온 과일 간식들을 나눠 먹으며 올라가는 순간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숨이 턱 막히고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벅찼다. 이런 감동을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하는구나. 절대로 심장이 무뎌지지 말라고,,,,작은 꽃 하나, 돌 하나에도 감동할 수 있게, 우리의 심장을 마사지해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 휴화산은 세상 어느 곳보다도 평화로워 보였다.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이 휴화산 밑에는 물이 고여 호수가 만들어졌고, 이 부근에는 작은 인근의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어 살고도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런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어떻게 이 안에서 살 수 있는 걸까? 하는 나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호수를 보기 위해 내려간 그곳에서 만나본 사람들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평온함이 이들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 이곳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의 인터뷰에서는 이들 역시 언젠가 화산이 다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들의 얼굴은 진지하지만 느긋했다.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초자연의 섭리를 언제든 받아낼 수 있다는 겸허한 자세가 그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 São Muguel, Acores, Portugal


사계절 내내 아주 춥지도 아주 더워지지도 않는다는 Acores. 우리가 찾아간 4월 중순의 Acores는 구름이 따스한 태양을 가릴 때면 약간은 쌀쌀해지고, 햇살을 드러낼 때면 반팔 차림으로도 다니기 좋았다. 가끔은 우리가 위치한 곳에는 검은 먹구름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 쪽을 바라보면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멀리서도 보였었다. 그래서 렌트한 차 안에는 항상 비옷과 율이의 장화가 항상 비치해 있었다. (물론, 내 첫째 아들은 장화를 사랑한다. 이탈리아에서 숲 속 유치원에 갈 때면 항상 장화를 신기에, 도서관이나 박물관, 집 근처의 카페를 갈 때에도 아들은 운동화보다 장화를 신고 나가길 선호한다.)


약간은 쌀쌀한 여행 막바지, 우리는 자연 온천물이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 근처에 간헐천이 나오는 곳이 있다고 하여 먼저 들렸다. 율이는 땅에서 뜨거운 열기와 뿌연 연기, 황산이 뿜어져 나오며 물이 고여져 있는 곳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한창 화산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시기라 지구의 땅 속 구조에서부터 화산이 일어나는 원리, 현상 등을 공부하기에도 적절했다.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것을 실제로 보고 배운다는 것이 주는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몇 년 뒤, 한국에 가족들을 만나러 갔을 때에는 8개월 어린 사촌 친구에게 화산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터지는 건지 열변을 하며 설명해주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었다.


간헐천, São Muguel, Acores, Portugal
자연 온천에 가족 모두가 피로한 몸을 담근다. São Muguel, Acores, Portugal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또 하나가 평소보다도 더 많이 걷는다는 것일 게다. 평소에도 되도록이면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조금은 느리게 살아가는 패턴을 좋아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서 보지 못하는 것들도 아이들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다 보면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렇게 평소보다 더 많이 걸은 기특한 나의 다리들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연 온천에서 풀어 주었다. 평소 온천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으랴! 특히, 사방이 숲으로 우거진 이 초자연 속에서 누리는 이 자연 온천! 우리는 만 3살이 조금 넘은 첫째 아들 율이와 태어난 지 2개월 된 둘째 딸 가이아와 함께 따스한 온천에 몸을 담갔다. 둘 다 워낙 물을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즐겼다. 둘째 딸 가이아는 세상이 주는 많은 자극들을 오감으로 받아들이고 지쳐서 잠이 들었고, 우리는 이 조그마한 아이를 플라스틱 시장바구니에 담아서 곤히 재웠다. 첫째 아들 때에도 그랬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유모차는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에는 조그맣기에 아기띠에 데리고 다니면 간편했고, 조금 커서는 자신의 힘으로 걷기를 선호하기에 조금은 느린 아이들의 걸음걸이로 걷거나, 아이들이 지치거나 조금은 빨리 걸어야 할 상황에는 아기띠로 함께 다녔다. 유모차는 아주 잠깐 한국 여행 때에 친구가 물려준 것을 사용했으나, 역시 아기띠만치 편한 게 우리에겐 없었다.


시장 바구니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 둘째 딸 가이아 Gaia, São Muguel, Acores, Portugal


평소에 피크닉 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명당인 곳을 발견했었다. 두 개의 각기 다른 색의 호수가 만나지는 곳이었는데, 물론 이날 우리에겐 간식조차 다 먹어서 물 밖에 없어 다음 날 기어코 피크닉을 하기 위해 점심을 싸가지고  다시 온 곳이었다. 두 개의 호수가 확연히 다른 녹색과 파란색을 띠는 기이한 현상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주변은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과 꽃과 풀들로 가득 차있었고, 이는 마치 동화 속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토끼가 나올 것만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이렇게 아이들과의 여행은 빽빽한 일정을 쫓아가기보다, 커다랗게 보고 싶은 몇 군데를 정해놓고 날씨와 아이들의 상태, 장소가 주는 인상과 에너지, 우연성과 필연성에 기대어 여유 있게 엮어간다. 굳이 무언가를 보기 위해 달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끔은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아이들이 발견해내기도 하니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가 나올 것만 같은 환상적인 피크닉 장소, São Muguel, Acores, Portugal


우리가 이용한 숙소는 독일인 남편과 Acore출신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Airbnb였다. 이들은 오래전 대지를 사들여 자신들을 위한 집을 먼저 짓고, 작은 정원들이 딸린 2채의 독채를 지었다. 이들의 프로젝트를 Acores에서는 정책적으로 도와주기에, 땅을 사고 집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의 50%를 정부에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섬의 인구를 늘리기 위한 정책과 관광 사업을 위한 적극적인 도움이 부럽기만했다. 그중의 한 채를 우리가 빌렸었는데, 그들의 집과 우리들의 집은 30m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정원으로 잘 꾸며져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좋은 구조를 갖추어졌다. 들어온 첫날부터 이들은 인심 좋게 자신들의 정원에서 열린 아보카도를 두 손 가득 가져다주었고, 직접 키우는 닭에게서 나온 계란들과 빵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나의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은 이 호스트 가족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그들 정원에서 나던 양파 향이 나는 풀로 페스트를 만들고, 파스타와 함께 내어 놓았다. 그렇게 그들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난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 독일인이 어떻게 Acores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는지, 화산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지, 이곳 관광 사업은 어떤지, 현지인들이 살아가게 하기 위한 정책들,  가볼만한 곳과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레스토랑들을 추천해주었었다. 이 독일인 호스트는 독일 뮌헨에 살 때에는 일을 많이도 했었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이라 하자, 자신의 태권도 사부 또한 한국인이었다고 해서 꽤 인상이 깊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섬 Acores에 와서 이 섬에 반했고, 독일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오기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몇 년 뒤. 지금의 부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지금까지 삶을 함께 일구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들과 그들이 일구어 가고 있는 삶 속에서, 우리 가족이 택한 삶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지 결코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결코 그냥 꿈을 좇아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들과 나누는 삶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지평을 더 넓혀준다. 입이 딱 벌어지고 숨 막히게 만드는 멋진 관경과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여행의 동반자도 중요하지만, 이 풍경 속에 녹아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면, 이는 외눈박이 여행이지 않을까?


조금 더 사람들에게 가슴을 열고 다가가자. 조금 더 이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함께 먹을 걸 나누어 보자.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유럽에서 처음으로 가 본 차밭으로 포르투갈어로 "차"는 "Cha°라고 한다.  São Muguel, Acores, Portugal


매거진의 이전글 맨발의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