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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y 16. 2019

판도라 상자를 열고야 마는 그들

#011 열한 번째 이야기

이미 알아내고 찾아내지 않아도 아플 수밖에 없는 그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여부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아픈 상처를 또다시 뜯어내고야 만다. 그렇게 혹독한 진실을 굳이 알아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마는 그들이 있다.



오래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셨던 이모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모의 영어 교사 동료 중, 미국으로 입양되어서 살다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신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 한국에 찾아온 남자 동료가 있었다. 그는 괜찮은 외모와 성격에 좋은 학위까지 갖추고 있었고, 그의 한국인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도 꽤 괜찮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소문 끝에 찾게 된 그의 어머니는 너무 미안해서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자 친구 쪽 부모는 그와의 관계를 반대하고 헤어지게끔 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설득에 의해서인지, 아님 내심 그녀 또한 같은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아플 것을 각오하고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기 위해 온 한국땅에서 결국은 현재 사랑하던 사람마저 그를 버려 버린 것이다.


보통 외국에서는 입양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경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따진다. 그렇기 때문에 입양되어 새로운 부모를 만난 입양아들은 경제적으로는 최소한 부족함이 없이 자라나곤 한다. 하지만 꽤 많은 입양아들이 나이가 들어 사춘기를 접어들면, 자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묻기 시작하거나 알아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이다. 또한, 왜 버려졌는지 알고 싶어 한다. 비록 또  한 번 자신을 아프게 할지라도, 기어이 알고 말아야 하는 뼈 아픈 진실을....


또 하나의 사연을 얘기하자면, 어느 날 스페인에서 알고 지내던 한 플라멩코 댄서 친구가 자신의 친구 사연을 털어놓으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왔었다. 그녀의 친구는 한국계 프랑스 입양아였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생모를 알아냈고,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생모는 프랑스어도 영어도 할 줄 몰랐고, 그녀에게서 온 편지는 자판으로 쓴 한글도 아닌, 자필로 쓴 편지여서 번역 자채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인 나에게 번역을 부탁해왔다. 2개의 편지가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 예상해 온 생모의 편지라고 하기엔 미안한 기색이 너무도 없는 담담한 편지여서 내심 많이 놀랐었다. 그녀는 2달 뒤, 한 달간 한국에 자신의 생모를 만나기 위해서 간다고 했는데. 어쨌든 편지를 번역하며 우리말 속에 너무도 표현 못하는 속마음이나 딱딱함에 애속함과 미안한 마음이 대신 들었었다.

그 뒤로 한국에 잘 다녀왔는지, 다녀와서 속으로 2번 더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괜스레 걱정이 되었으나, 물어보기에는 너무도 민감한 부분이라 차마 물어보지도 못했었다. 그저 그녀가 너무 아프지는 않았기를.... 너무 많이 실망하지는 않았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랄 수밖에....


마지막으로 내 친구의 예를 들면, 그는 미국 엄마에게서 태어나 같은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이다. 그 또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찾았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의 엄마는 마약과 술에 쩔어서 임신을 했었고, 아빠는 누구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결제적으로 아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그녀는 보호 시설에서 아기를 낳고 그곳에 아기를 맡겼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꽤 차분하게 얘기해 주던 그가 골라서 쓴 엄마라는 말 앞에 붙은 "생물학적" 이란 단어는 그를 버린 엄마에 대한 많은 경계와 거리감을 만들어서 더 이상 그를 아프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방어벽처럼 느껴졌었다. 판도라 상자처럼 열어서 좋을 게 없는대도 불구하고 열어서 진실을 봐야게끔 만드는 그 생모라는 존재. 그리고 그들은 또 한 번 아파한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의 아이를 갖는 것에 커다란 확신을 갖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누가 봐도 아이들과 잘 지내고, 상냥함과 편안함, 신뢰감으로 아이들로 하여금 쉽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하물며 절대 낮에 잠이 안 드는 다 큰 내 첫째 아들이 그의 품에 안겨서 낮잠이 들기도 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그. 그런 그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며 살아간다. 비록 그는 생모에게서 버림받았고, 그의 이복 형은 그를 미워했으며, 그의 입양 부모는 이혼을 했지만, 그는 그런 삶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따뜻한 심장을 가졌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계속 앞으로 전진해 나가 진다. 비록 어떤 때에는 혹독한 비가 내리거나, 쨍쨍한 햇볕에 땅이 쩍쩍 갈라질지언정,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마음도 흘러가고, 인생도 흘러간다. 오직 나를 잡아줄 수 있는 것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끝없이 나를 믿어주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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