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arling May 20. 2019

날개 단 마흔이 되는 날

#010 열 번째 이야기

오늘은 한국 나이로 마흔이다. 20대 초반에는 마흔이 되면 조금 더 성숙하고 독립적이며 조금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예술가가 되어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었다. 섹스 엔더 시티에 나오는 그녀들처럼 재정적으로 빵빵하고, 멋진 옷과 구두를 걸친 채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는 것에는 그닥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나라 요시모토처럼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하며 작품들을 다 팔아도 낡은 청바지와 티셔츠 바람에 락앤롤 음악을 즐기며 작가 정신이 녹슬지 않기 위해 날을 서며 자기가 좋아하는 작업에 미쳐서 살아가는 나를 언제나 상상했었다. 근 15년 넘게 뉴욕에서 살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있는 나의 절친 친구는, 영국 유학도 때려치고 플라멩코에 미쳐서 스페인으로 떠난 내가, 플라멩코 의상 디자이너 및 플라멩코 창작 작업에서 손을 떼고, 두 아이에 미쳐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지내던 삶도 접어버리고 포르투갈 남부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것을 아직도 믿기 어려워한다.


나라 요시토모와 그의 작업들


인생은 내가 하는 선택과 선택들이 모여서 하나의 삶이라는 퍼즐을 맞추어간다. 20대 중반 영어 아카데미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20년 뒤의 나를 상상해 보아라"였다. 15명의 학생들 중에 나는 유일하게 남편과 아이가 없었고(물론 남자 친구는 존재했었다.) 커뮤니티적 코 하우징 Co- Housing을 꿈꾸는 유일한 또라이였었다. 지도까지 도안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며 설명했었었는데, 공동으로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과 공동 부엌, 공동 세탁실 등이 가운데 원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공동 공간과 연결되어 바깥으로 각자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개인 집을 형성할 수 있도록 계획했었다. 한국에서 보았을 때 나의 프로젝트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꿈꿀 수 있는 것이라고들 여겼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나 작은 마을들이 사람들이 떠나서 비어버리자 정부에서 프로젝트를 가진 이들에게 1유로에 팔아 다시금 마을에 사람들로 채워지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조건들이기는 하지만, 유령마을처럼 비어버린 마을에 다시 생기를 돌리기 위한 프로젝트는 생각만치 쉽지 않다. (https://casea1euro.it) 또한, 에코 마을 Eco village이란 프로젝트를 걸어서 그 마을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병원, 학교, 도서관, 레스토랑, 농장, 요가나 명상, 악기나 도자기 레슨, 호스텔 등을 건축해서 만들어 나가는 그룹들도 존재하기도 한다. 이들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소소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삶을 꾸려가는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꽤 오랜 시간을 이런 그룹들이 어디에 있으며 커뮤니티를 꾸릴 수 있는 곳들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노마딕처럼 살아가길 선택한 우리 가족의 삶의 형태로써는 이런 그룹에 들어가기는 힘들었었다. 몇몇 뜻이 맞는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있지만 각자가 살아가는 생활 터전이 다르고 각자의 처지가 달라 지리적으로 위치를 정하고 어딘가에서 함께 집 짓고 살자고 하기에는 너무도 뜬구름 잡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직 우리가 꿈꾸는 커뮤니티를 찾는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https://www.dolcevitaonline.it/elenco-di-tutti-gli-ecovillaggi-in-italia/)


부모들끼리도 아이들끼리도 죽이 잘맞는 Paraia가족과 함께한 일주일, Armacao de Pera, Algarve, Portugal


일주일간 이탈리아에서 죽이 잘 맞는 율이의 숲 속 유치원의 친구 가족이 포르투갈에 놀러 왔었다. 올해로 3년째 매년 일주일에서 2주 정도 함께 지내며 공동 육아를 하고, 함께 도와주고 함께 웃고 함께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나눈다. 아이들을 가진 가족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서로가 가진 교육 철학과 개념이 비슷하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해지기 쉽고, 이는 하루만 같이 지내봐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각자 가족이 가진 규칙이 있고, 이 규칙이 모든 가족들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 가족이 허용하는 것들이 다른 쪽 가족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아 아이들과 어른들이 곤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커다란 선에서의 교육철학을 함께 나누고, 육아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의 여러 측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숲 속 유치원 안의 멤버들 가운데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또다시 포르투갈까지 찾아와 준 그들이 그만큼 반갑고 고마웠다. 함께하면 편안하고 힘이 되는 이 Paraia(가족의 성) 가족이 항상 고맙고, 우리의 노마딕적 삶을 마음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준 그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짧다면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한시 한 초가 아깝다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흡입한다. 그리고 서로가 가진 색다른 면들을 함께 가르쳐주고 배워간다. 그렇게 아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성숙해 간다. 


아들 율이와 딸 가이아가 배우는 카포에이라를 일주일간 함께 배우는게 된 이탈리아에서 놀러와 준 율이 친구Gio, Silves,Algarve,Portugal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면 무언가 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나이는 들었지만 내 속 안의 나는 어렸을 적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대로인 나를 발견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 어릴 적 꿈꾸던 소녀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내 속 안에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철없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대로인 나 자신이 좋다. 아직도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버리는 미래를 꿈꾸는 몽상가이지만, 언제고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할 날을 오늘도 꿈꾼다. 


오늘 아침, 마흔이 된 나를 기념하며 모든 걸 떨치고 홀로 바닷가를 걸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햇살이 가득한 모래사장을 걸어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걷는 그 순간 맨발 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젖은 모래, 소금기 섞인 바다내음,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파도 소리, 드넓고 파아란 하늘, 이 모든 것을 오감으로 음미했다. 그러다  문득, 되돌아 가기 위해 뒤를 돌아봤을 때, 내 앞에 펼쳐지던 경관과는 다르게, 나의 등 뒤로는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어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인생이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내가 계획한 대로 이뤄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궂은 날씨 건 좋은 날씨 건 바다를 걷는다. 


혼자 걷는 바닷가, Armacao de Pera, Algarve, Portugal


매거진의 이전글 트란스 포머 그린 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