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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n 05. 2019

타국에서 김장을 한다는 것은,,,,

#013 열세 번째 이야기

어릴 적 집 마당 한쪽에는 땅속 깊숙이 넣어둔 장독대들이 있었다. 김장을 하는 날이면, 이모들이 다 같이 모여서 어린 오빠와 내가 무더운 한여름 땀을 식히기 위해서 들어가 놀던 커다란 다라이에다가 김장을 하곤 했었다. 몇십 포기를 한꺼번에 다 같이 담아서 나눠 먹었었다. 그리고 한 겨울에 엄마가 추운 바깥에 나가셔서 장독대를 열고 냉장고 보다도 더 차가운 김치를 반포기 정도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던 것을 기억한다. 그 당시 나의 엄마는 두 아이를 키우며 서울 대학 병원 검사실에서 일하시며 대학원 석사 공부까지 마치셨었다. 새벽 7시 15분이면 아직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나는 거울 앞에 앉혀져서 엄마의 바쁜 머리 빗질을 받곤 했었었다. 이른 새벽에 머리를 만져주시고, 저녁에 돌아오실 때까지 어느 누구도 나의 머리를 만져주지 않을 거란 걸 아시기에 눈꼬리가 위로 올라갈 만치 꽉꽉 묵어주시곤 했었었다. 그렇게 바쁘시게 사시면서도 매년 이렇게 김장을 하시곤 했었다. 그러다 세월이 좋아져서(? 개인적으론 편리함에 너무 많은걸 맡겨버리게 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장을 손수 할 필요도, 반찬을 굳이 만들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이런 시대에 타국에 나가 산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고, 나는 이곳에서 김치를 직접 해 먹게 되었다. 나 혼자 살거나 남편과 둘이 살 때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던 게, 아이들이 점차 김치를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김장을 손수 하기 시작했다. 약 5년 전, 평생을 무역을 하시며 외국인들과 일하시고, 일찍부터 외국으로 출장을 다니시던 아버지이시지만, 입맛만은 얼큰한 된장찌개에 돼지고기 구이와 김치가 있으셔야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위해, 우리 엄마는 딸내미의 이탈리아 집에서도 백김치를 시원하게 만들어 주셨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은 이탈리아의 재료들로 대체하거나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들어주신 백김치는 정말 시원하고도 환상적인 맛이었다. (입맛이 아주 까다로우신 우리 아버지도 이 백김치 없이는 2주간의 타국 생활을 연명치 못하셨으리라!)


그렇게 시작된 나의 타국에서의 김장에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일염도, 액젓도, 새우젓도, 굴젓도, 질 좋은 고춧가루도, 큼지막하고 싱싱한 배추도 구할 수 없었지만, 대체할 수 있는 재료들과 정성으로 김치통을 채웠다. 김치 장독대도 없고, 김치 냉장고도 없는 불편하고 부족한 환경은 오히려 가지고 있는 조건과 여건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주변에 나처럼 타국에 살면서 김장을 하고, 장아찌를 담고, 한국의 음식들을 반찬 그릇에 정성껏 담아 밥상 위에 올리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가지고 있는 재료들에 정성을 들여 어렵고 불편한 경로로 얻어지는 귀한 음식들을 손수 만드는데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3시간을 정성들여 만든 은경언니의 짱뽕을 유럽에서 먹을 수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으며, 지형언니의 나물 비빔밥과 고추전등은 정신팔려 먹느라 사진조차 없고 붕어빵틀만 남았다


내일이면 25년 지기 친구가 뉴욕에서 찾아온다. 약 8년을 못 본사이, 우리들에게는 남편이 생기고, 아이들이 생겼다. 언제나 얘기를 나누면 어제 만난 것처럼 마음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던 나의 반쪽 같은 그녀. 못 본 세월만큼 우리는 조금 더 성장했고,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인생의 길에서 우리는 또 다시 하나의 교차로에서 만나진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찾아 먼 길을 오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서 오늘 나는 김장을 하고, 장아찌를 정성스럽게 담는다. 그리운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 그것이 타국에서 만드는 김치의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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