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열두 번째 이야기
세상 어디에서나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 사람들은 많은 의미를 둔다. 친해지려면 밥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들 하지 않나? 이는 함께 음식만을 나누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이들의 커다란 관심거리 중 하나다. 나의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과 세비야에서 함께 살 때부터 우리들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걸 즐겼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들을 초대하면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음식을 준비해서 12명을 초대해도 24명이 먹을만치 푸짐하게 마련하곤 했다. 어떤 때에는 여행지에서 차곡차곡 구입해온 와인들을 여행을 마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풀기 위해 여러 번에 나눠 단촐한 멤버로 초대해서 분위기 있게 와인과 음식을 함께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남편이 가지는 1년에 6개월 갖는 휴가 동안에 머무는 이탈리에에서는, 평일에도 집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잠시 점심시간에 우리 집에 들러 함께 식사를 하거나, 퇴근하고 우리 집에 들러서 노곤한 피로를 풀며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포르투갈 레스토랑 일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면 남편은 포르투갈에 아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해서 마지막 레스토랑 여는 날 밤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아이들의 친구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끌벅적한 식사 시간이 익숙해지기도 했다. 누구와 식사를 함께 하느냐에 따라 식사 메뉴와 분위기가 우아하고 쉬크할 때도 있고, 편안한 집 분위기가 날 때도 있고, 파티장에 있는 것처럼 시끌벅적해 지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음식과 함께 삶과 공간과 시간을 함께 나누기를 즐긴다.
하지만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을 뒤집어서 바라보면, 단체나 그룹, 어느 구성원 안에서 함께 먹지 않는다는 것은 배제당한다는 것과도 의미를 같이한다. 학교를 다닐 적을 생각해보면, 도시락 까먹기처럼 점심시간 전에 미리 먹는 것을 제외하고선, 친구들과 함께 먹지 않고 혼자 먹는다는 것은 꽤 창피한 일이었다. 혼자 먹는다는 것이 아직도 익숙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혹여나 식당에 혼자 들어가서 식사할 때면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고, 찌질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메뉴에서 적당히 괜찮은 가격의 메뉴를 선택하곤 한다. 나 또한 대학시절 가끔 혼자 밥을 먹을 때 불편한 시선들을 의식하며 혼자 책을 보며 음식물을 입에 꾸역꾸역 넣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 음식물을 입에 넣고 맛과 향을 음미하고 이빨과 혀로 잘게 자르며 음식물의 질감을 음미하여 목구멍으로 넘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혼자 밥을 먹었을 때 진정 느낄 수 있다. 내가 먹고 있는 공간과 공기, 향, 분위기 이 모든 걸 어떤 대화에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취할 수 있는 조건! 그래서 가끔 나의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은 혼자서 밥을 먹는걸 마다치 않는다.
대부분의 회사나 학교 혹 주말의 가정 안에서도, 혹여 레스토랑에서도 기존에 정해놓은 시간대에 모두가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하도록 암묵적으로 결정되고 강요받는다. 혹여라도 배가 안 고프더라도 나중에 먹을 시간이 없기에 무엇이라도 위속에 구겨 넣고 만다.
이런 시스템을 통째로 뒤집어 버린 곳이 있으니, 여태 4년간 지내온 아이들의 숲 속 유치원이다. 여기서는 각자가 자신의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가지고 오고, 배고플 때 각자가 알아서 꺼내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먹는다. 이는 말하자면 굳이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누군가와 꼭 함께 식사를 해야 하거나 그룹에서 동떨어진다는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이런 일로 소외감을 느낄 염려 또한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할 때 도시락을 열고, 자신의 도시락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과 흥정을 하여 맞바꿔 먹거나 조금 나눠 먹기도 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나눠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 사이에서 내가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해서 점심을 혼자 먹게되어 소외감을 느낀다든지, 배도 안고픈데, 억지로 의자에 앉아서 먹고 싶지 않은 식사를 강요받지도 않는다. 이렇게 이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시스템에서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아이들조차도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를 알아내고 스스로가 조율할 수 있는데, 우리 어른들은 커다란 시스템에 몸을 담아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들을 해나가도록 조율되어 간다.
물론 나 또한 밥상 위에서 제대로 예의를 갖추고 쌀 한 톨도 남기지 말고 먹도록 배우고 자라왔기에, 배가 부르면 굳이 먹는걸 아이들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로 이행하기가 힘들 때도 참 많다.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쓰레기통에 넣으려니 죄의식이 들고, 그렇다고 내 입으로 넣자니 내 배가 부르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이거 다 먹으면 무언가를 해주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아이들을 부드럽게 유인해서 먹일 수는 없다. 겉 보기에는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이야기하니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는 아이들을 존중하는 게 아닌 달콤한 조건을 달아 아이들을 어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도록 조종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집에서 식사를 할 경우 배가 안고파서 남긴 거라면, 남긴 접시를 그대로 놔두고 아이들이 원할 때 알아서 먹을 수 있게 식탁에 놔둔다. 그러면 내가 못 본 사이 어느 순간, 순식간에 비워진 접시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배가 고플 때 먹고, 배가 부르면 뚜껑을 닫을 수 있게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의 피크닉이다. 이렇게 피크닉을 하게 되면 아이들도 자유롭고 편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도 테이블을 치워야 한다거나 바닥에 좀 흘렸다고 신경이 곤두선다거나 자리에 제대로 앉아서 식사하기를 요구해야 하는데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편하고 즐거운 식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서 식사할 경우에는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킬 수 있기를 부탁한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고 자리를 떠나도 되지만, 먹는 동안에는 자리에 잘 앉아서 식사를 하기를.(이래저래 정신없이 뛰노는 아이들도 진정 배가 고프면 엉덩이 붙이고 먹는데 집중하는 게 보통이다.) 또한, 이탈리안 요리사 남편의 직업상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잦은 우리 아이들에게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는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를 요구한다. 이런 나와 나의 남편의 식사 방식이 모순되지 않도록 항상 언어와 제스처 사용에 신경을 기울인다.
이렇게 즐겁고 자유로운 식사란 내가 배고플 때 편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어 음식을 즐겁게 먹으며, 나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인들 또한 즐겁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남들이 뭐라든, 배고플 때 밥을 지어, 먹는 그 순간순간의 나의 모든 젓가락질과 숟가락질, 혹은 포크와 나이프 질, 입의 근육과 이빨과 혀의 움직임, 음식의 향이 주는 감미로움을 하나하나 느끼며, 재멋대로인 식사를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