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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n 13. 2019

북유럽 엄마& 남유럽 엄마

#012 열두 번째 이야기

남편의 동업자인 Walter과 Mari네 가족은 북유럽과 남유럽의 통합체이다.

Walter는 남유럽인 이탈리아 중에서도 남부인 나폴리 출신이고, 그의 파트너인  Mari는 북유럽인 벨기에 출신이다. 이들은 20살에 스페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되어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근 20년을 함께한 커플이다. 이런 이들은 달라도 한참을 달랐다. 보헤미안과도 같던 Walter과 대학에서 비서를 하는 안정된 직장이 있던 Mari. 이들에게는 누가 경제적인 책임을 지느냐는 그닥 중요치 않았었다. 나의 남편과 함께 동업을 시작하면서 비즈니스맨이 된 Walter를, Mari는 새로운 Walter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났고, 이 커플은 결혼은 안 했지만 법적으로 결혼한 누구보다도 더 안정되고 평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오랫동안 알아오고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감싸준다. 이런 그들에게는 북유럽 엄마와 남유럽 엄마가 함께 한다.


Mari의 북유럽 엄마와 아빠는 매년, 일 년에 2번, 2달씩 포르투갈의 우리가 살고 있는 남부 바닷가에 놀러 와서 지낸다. 그럴 때면 언제나 자신의 집을 렌트하고, 매일같이 Walter과 남편이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이 둘과 Massi가 함께 운영하는 바로 옆에 있는 지중해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모든 음식값들을 지불하면서 말이다. 이 커플이 벨기에에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Mari의 부모님들과 사촌들 등 모든 가족들이 살고 있는 벨기에에 가서도, 그들만의 집을 빌리고, 매일같이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곤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유럽 엄마인 Walter의 엄마는 일주일에서 열흘간 포르투갈에 오면 Walter과 Mari, 그리고 이들의 아들인 Matiss의 집에서 머물며 매일같이 그의 레스토랑들에서 식사를 하지만, 음식값을 지불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년 뒤에 그녀가 은퇴를 하게 되면 여름 내내 포르투갈에 자신의 손자를 보러 와서 지낼 거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것도 당연히 아들의 집에서 말이다. 이 커플이 나폴리에 가서는 Walter의 둘째 형이 나폴리 올 때면 머물기 위해 마련해놓은 집에서 지내며, 매일같이 먹는 남유럽 엄마의 가정식 음식으로 벨트 구멍을 하나 정도 늘려서 돌아오곤 한다. 

  

이렇게 북유럽과 남유럽의 생활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을 한 커플에 예를 들어 말하기엔 섣부르단 건 안다. 하지만 이 커플은 달라도 아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섣부르게 말할 수도 없다. 혹여나 나의 부모님이 한 달간 오신다고 하더라도 나라도 남유럽의 엄마처럼 내 집에서 지내시게 할 테고, 나의 남편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매일 가진 않겠지만) 식사 값을 지불하는 건 생각지도 않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약 5년간 보아온 이 북유럽 엄마의 방식은 Walter과 Mari 커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욱더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게 보였다. 이 북유럽 엄마는 서로에게 자신의 공간을 제공해주면서도 언제든 도움의 손길은 주되, 섣불리 육아적 조언을 하기보다, 자신의 손자가 하는 경이적인 몸짓을 살짝 뒤에서 관찰하고, 이 아이를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북유럽의 엄마이자 할머니인 Christina를 바라보며, 나 또한 그녀처럼 나의 자식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뒤에서 응원해주되, 그들이 살아가며 걸어가는 길을 온전히 신뢰하며, 존중해 줄 수 있는, 그런 북유럽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닮아가져 있기를 소망한다.   


가끔 기나긴 장거리 마라톤 같은 인생길에서, 사막을 걷는 것처럼 목이 마를 때 들여다보는 글귀가 있다. 오늘도 이 글귀를 읽으며 오늘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였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갈망하는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서 태어났을 뿐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비록 당신의 품속에 있다 할지라도

당신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으나

당신의 생각들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육체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영혼은 당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꿈속에서도 차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그들을 당신같이 만들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삶이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고

어제에 머물러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화살을 쏘듯

당신의 아이들을 내일로 쏘아 보내는 활입니다.

사수의 손에 팽팽히 당겨진 활은 기쁨입니다. 


칼리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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