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시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arling Apr 20. 2020

집시의 집에서의 첫날밤

#003 세 번째 이야기

우리에게 걸맞은 카라반을 고르기 위해 가기 바로 하루 전날 아침이었다. 한국에서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평상시 시차로 인해, 급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전화 통화보다 메시지를 주고받곤 했었다. 우리가 집시의 집에 들어가는데 조금은 좋은 조건의 카라반에서 아이들과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빠와 오빠가 돈을 보태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들 힘든 이 시기에 아빠와 오빠가 손자들/조카들, 외지에 나와 살고 있는 딸/여동생을 생각해주는 마음에 눈물이 울컥했다.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하는 우리 마음을 알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예산에서 그만큼 더 보태어서 카라반을 장만하기를 원하는 가족의 따스한 마음이 더욱 더 뜨겁게 와 닿았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카라반은 5.5미터에서 7미터짜리로 늘어났다!


다음 날, 남편이 우리가 꿈에 그리던 카라반을 구입해서 모두가 머물고 있는 숲에 주차 시켜놓고 밤 늦게 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커뮤니티 모두가 함께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숲으로 향했다. 그 곳은 숲이 우거져있는 울퉁불퉁한 흙 길을 따라 깊이깊이 들어가야 했다. 우리 동네에서 근 한 달을 자가 격리 했었기에 사방이 광활하게 푸른 나무들과 풀로 우거진 이곳의 광경은 다시금 내게 삶의 풍요로움과 자연의 에너지들을 가져다 주었다. 모두가 모여 지내는 곳에 닿기 200미터 전에 우리의 카라반이 말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만치 숨 막히는 자연의 광활한 풍경 속에 우리의 카라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고, 사방에는 꽃들과 풀들이 가득했다. 또한 멋진 말들이 풀을 뜯어먹으며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설레는 마음과 놀라운 마음(어떻게 나의 남편은 이렇게 기다란 카라반을 여기까지 가져다 놓았을까 하는 감탄 이랄까?) 이 뒤섞여서 급하게 자동차 문을 열고 숲에 발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사는 곳보다 조금 높은 위도에 있어서 춥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쨍쨍한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다.


집시의 집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집시의 집 문 앞에 다다랐다. 똑똑똑! 집시의 집에 발을 들여놓아 본다. 집시의 집은 창문들이 많아서 실내가 환했고, 생각보다 꽤 넓어서 4 식구가 살기에도 충분했다. 아이들은 설레어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집시의 집을 탐색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가지고 온 약간의 짐들을 옮겨놓고, 다른 가족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 자리를 잠깐 떴다. 근 한 달 만에 다시 보는 캠핑족 친구들인 Ines와 Jonny 가족, Daniela와 Tomas 가족, Julia 가족들과 새롭게 보는 Nadia와 Filipe, Anthea와 Grant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6 가족들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포르투갈, 한국 출신으로 다국적 가족들이었고, 모두의 공통 언어로 이탈리아어와(4 가족이 커플 중 한 명은 이탈리안 이었으므로 대다수가 이탈리아어를 한다.)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한 친구가 스페인 사람이고, 우리 가족과 독일 친구 또한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했다.)로 얘기하고 통역하며 회의를 이어나갔다. 이탈리안답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들이 이어지는 토론과 통역으로 우리들의 회의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회의를 통해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의 다란 그림이 무엇이며, 무엇을 기대하는지, 개인적, 커뮤니티 적 활동에 대한 생각들,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심과 참여 여부에 대한 대괄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몇몇은 알고 지내온 사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알아온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기에 서로가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 우리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휴머니즘, 사랑,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가 뭉쳐지는 동시에 서로를 너무 얽매지 않는 독립적인 선 안에서 서로가 커뮤니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책임지고 하자는 것이 대략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다. 나의 자유를 위해서만 행동을 할 때에는, 다른 이의 자유를 침범하게 된다는 말도 나왔다. 예를 들어, 자연을 최대한 존중하는 한에서, 물의 사용량 또한, 나 하나만을 생각해서 마구 쓰는 게 아니라, 각자 쓰는 량을 절제하여 모든 커뮤니티를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이렇게 당연한 것인데도, 어쩔 때에는 각자 자신의 기준치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때론 어느 정도 서로가 동의하는 규정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조화롭게 움직여진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고, 많은 인내심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한국에서처럼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온 친구 사이는 아니다. 그렇기에 다른 땅으로 옮기기 전까지 기다리는 몇 달 동안(지금 현재 땅은 우리가 구매한 땅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친구라고 하기에는 모르는 면이 더 많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인사할 때부터 두 팔을 활짝 벌려 가슴과 가슴으로 사람을 안고, 깊이 있게 진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껴안는다. 말이 필요없이 이들과 나누는 가슴 깊은 인사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서로가 껴안는 짧고도 길다고 할 수 있는 그 순간만큼은 오직 나와 그 사람만이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뜨거운 심장으로 다가간다.


회의를 나눈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직은 지붕이 부서져서 폐허처럼 허물어지려고 하는 돌로 만든 공간을 Tomas와 Grant가 보수해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당한 량의 책들을 기증했다. 언어(한국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포르투갈어)와 섹션 별로 나누어서 일단 대충 놔두었다. 다음 번에 올 때면 좀 더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놓을 재료들과 도구들을 마저 가지고 올 생각이다. Daniela는 우연히도, 우리 아이들이 이탈리아에서 다녔던 숲 속 유치원의 교육 세미나를 들었던 멤버 중 하나로 우리 숲 속 유치원의 멤버들과도 알고 지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슷한 책들을 읽었고, 비슷한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런 Daniela는 아이들과 함께 할 프로젝트를 조금씩 조금씩 실행해 가고 있었다. 이런 좋은 동반자를 만난 것은 정말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다국적 언어인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어울려서 놀고 탐구하고 즐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여러 가지 대안들을 고안해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른들이 길게 토론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숲 속에서 뛰어 노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500미터가 더 넘게 먼 곳에 가도 걱정되지 않는 이곳. 아이들이 마음 놓고 나무에 올라가고, 수풀을 헤쳐나가고, 산을 기어 올라가고, 마음껏 언덕에서 굴러 다니며 놀 수 있고, 어른들도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이곳. 말들과 양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으며 돌아다니고,  암탉과 수탉, 병아리들, 거위들이 함께 어우러 지내는 이곳. 이곳은 파라다이스였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는 이곳


회의가 끝나고 남편과 나는 다시 우리의 집시 집으로 돌아왔다. 7미터 X 2.5미터짜리 카라반의 공간을 최대한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 또한, 한 방에서 모두가 같이 잘 수 있도록, (원체 우리 4 가족은 모두가 함께 잠을 잔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었던 양쪽 끝에 붙어있던 2개의 더블 침대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카라반 밖으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고, 다른 새들 소리들이 바람과 함께 우리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아직 전기도 없고(인터넷으로 주문한 태양광 판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가스도 연결되지 않은 집시의 집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보냈다. 비록 전기 불이 없어서 램프 하나에 의지해서 저녁식사를 부탄가스를 이용해 간단히 만들어서 배를 채우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기대어 아이들과 오붓하게 작은 램프 불에 의지해서 책을 읽고 잠을 청하면서도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생각보다도 우리 가족 넷이 다닥다닥 한데 붙어서 자는 카라반의 첫날밤은 따스했다. 한참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량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집시의 집 지붕을 마구 두드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사춘기 때 보았던 발 킬머가 나오던 "사랑이 머무는 풍경 At first sight"에서 시각 장애인인 버질(발 킬머)이 에이미에게 자신의 비밀의 장소인 컨테이너로 천장이 만들어진 곳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면서 들리는 소리를 들려주던 장면이 생각이 났다. 집시의 집에서의 첫날밤, 빗방울 하나하나가 내 가슴속까지 적셔오는 것 같았다.


집시의 집에서의 첫 아침은 언제 세차게 비가 쏟아졌냐는 듯 햇살이 환하게 비쳤다. 설레는 마음과 흥분된 마음, 긴장감과 피곤함이 겹쳐서 깊이 자지는 못했지만, 숲에서 맞이하는 이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과 저 멀리서 들리는 수탉의 울음소리와 신선한 공기는 정신까지 맑게 해 주었다. 첫째 아들 율이는 아침도 건너뛰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더니, 친구들과 놀기 위해 이미 길을 나섰다. 뒤에서 '아침도 안 먹고 그냥 가냐'는 물음에도 아랑곳하지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아들은 멀어져 갔다. 둘째 딸인 가이아가 (역시, 배가 안 채워지면 안 움직이기에)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가이아와 또래 나이의 독일 소녀 Lua가 가이아와 함께 놀기 위해서 우리 집시의 집 문을 두드렸다. 남편과 나는 어제 마저 끝내지 못한 침대 떼기 작업을 시작했고, Lua는 가이아가 다 먹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러고서 얼마 안 되어서 이 두 금발 소녀들도 이내 길을 나섰다. 한참 일을 하다가 망치가 더 필요해서 Tomas에게 망치를 빌렸다가 돌려주러 갔다가, 아이들이 토끼들에게 줄 풀들을 잘라서 손수레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시 집 근처의 커다란 나무에서는 Mailo가 4미터도 훨씬 더 넘는 높이까지 거뜬히 올라가서 나무에 낀 이끼를 눈이라며 밑으로 흩뿌려 떨어뜨리기도 하고, 조금 밑에서 India는 커다란 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말을 타고 가고 있다면서 말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무 밑에서는 우연히 발견한 뿌리째 뽑힌 선인장을 다시 심어주겠다고 나무 조각을 이용해서 딱딱해서 파기도 힘든 땅을 열심히 파고 있는 Federico가 눈에 띄었다.


이 날 해야 할 작업들이 끝나고, 남편과 Jonny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간 사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천천히 거닐어 본다. 작업하느라 미쳐 못 본 토끼들과 병아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우리 속 안에서 가이아와 Pietro가 토끼를 만지기 위해 먹이를 주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30분을 앉아서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다. 맨발의 아이들이 풀밭과 흙 위를 마구 뛰어다닌다. 독일 소녀 Lua가 손에 쥐고 있던 꽃 위에 앉아있던 하얀 거미가 벌을 서서히 잡아먹는 놀라운 광경을 가이아와 Pietro, Lua, Daniela와 함께 관찰한다. 이 숲에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소리 없이 일어나고,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은 이 경이적인 순간들을 목격해 간다. 우리가 자연에게 조심히 말을 건넬 때 자연도 소리 없이 말을 건네준다.


나무 하나가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셀 수 없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시의 집에 들어갈 땐 모든 걸 벗어놓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